주간동아 682

2009.04.21

무서운 ‘어린것’들 … 중고딩 잔혹사

폭행·고문 등 엽기 동영상 잇따라 유포 … ‘범죄’로 스트레스 해소

  • 이수향 일요신문 기자 lsh7@ilyo.co.kr

    입력2009-04-16 13: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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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서운 ‘어린것’들 … 중고딩 잔혹사

    10대 폭력을 다룬 영화와 실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폭력서클’의 장면과 최근 인터넷에 유포된 실제 10대 폭행사건들의 동영상 캡처 화면.

    10대의 잇따른 엽기 폭행사건으로 인터넷이 떠들썩하다. 언론매체에 대서특필될 만큼 ‘굵직한’ 청소년의 또래 폭행사건만도 3~4월 새 5건. 경찰 관계자는 “최근 들어 발생한 10대 폭행사건의 가장 큰 특징은 잔혹한 폭행 장면을 동영상으로 남긴 뒤 인터넷에 유포한다는 것”이라며 “어른들의 범행 수법을 좀더 잔인한 형태로 따라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고문, 자해는 물론 성기 노출 장면까지 적나라하게 담긴 이 동영상 파일들은 ‘말죽거리 잔혹사’보다 심각한 ‘섬뜩 10대’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세게! 더 세게! 너희, 싸우는 기술 몰라?”

    “야, 한 손으로 말고 양손으로 때려!”

    나체 상태의 10대 소녀 2명이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슬리퍼로 서로의 뺨을 때렸다. 그 옆에서 옷을 입은 또래 소녀 2~3명이 욕설을 뱉으며 더 세게 때리라고 다그쳤다. 가해자들은 알몸의 피해자들에게 조직폭력배처럼 ‘배꼽 인사’를 시키기도 하고 면도칼로 허벅지를 그어 피를 내기도 했다. 성기가 그대로 노출되게 앉힌 뒤 자위행위를 강요하는 엽기적인 장면도 목격됐다.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의 지시에 따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원조교제를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복창했다. 수치심과 공포로 가득한 이들의 모습을, 한쪽에 서 있던 또래 남학생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카메라에 담는 장면에선 할 말을 잃게 된다.



    “내 손이 아플 것 같아 서로 때리게 했어요”

    3월9일 오후 P2P(개인 간 파일 공유) 방식을 통해 각종 포털 사이트에 급속히 퍼진 동영상의 일부 내용이다. 2분짜리 파일 10개에 이르는 이 문제의 동영상은 휴대전화로 촬영됐다. 경기도 김포경찰서는 조사 결과 이 동영상이 성매매 협박용으로 촬영됐다고 밝혔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한 피해 소녀들(17)이 같은 또래 가출 청소년들에게 당한 것으로 알려져 세간의 충격은 더욱 컸다. 가해자 A양(17) 등 9명은 경찰조사에서 “인터넷 성매매에 이용하고자 알몸, 폭행 동영상을 찍었다”고 진술했다.

    “왜 피해자끼리 서로 때리게 했느냐”는 질문에 A양은 “직접 때리면 내 손이 아플 것 같아서…”라고 답해 경찰 관계자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가출 여학생 4명을 유인해 서울 수유동의 한 모텔에 감금한 뒤 성매매를 강요해왔다. 이들이 화대로 챙긴 돈만 500만원이 넘는다. 피해자 중 한 여학생(13)은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무려 60차례에 걸쳐 성매매를 한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올해 초 인천 부평의 한적한 주택가에서도 끔찍한 또래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막다른 골목 담벼락 밑에서 한 여학생이 무지막지하게 구타를 당한 것. 가해자는 또래로 보이는 10대 소녀로, 산발을 한 피해자는 이미 한참을 얻어맞은 듯 퉁퉁 부은 얼굴에 코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머리채를 휘어잡고 얼굴을 정면으로 걷어차는 등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이 7분짜리 동영상 역시 올 3월 초 인터넷에 유포됐다. 경찰 조사 결과 문제의 동영상에 등장한 두 여학생은 부평시내 한 중학교에 다니는 동급생으로 동영상은 사건이 실제 발생한 시점인 올 1월, 현장에 함께 있던 가해자의 친구가 휴대전화로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는 “피해자가 나에 대해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다녀 때렸다”고 진술했다.

    “난 걸려도 소년원 안 가는 나이”

    동영상이 유포됨과 동시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개인 신상정보까지 노출됐다. 사건을 맡은 경찰을 포함, 어른들을 놀라게 한 것은 가해 학생의 태도였다. 누리꾼의 비난이 거세지자 가해 학생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욕설이 뒤섞인 거친 해명의 글을 올렸다. 그는 ‘나도 한 성격한다. 왜 자꾸 두 달 전 얘기를 꺼내 함부로 지껄이나. 난 만 13세라 소년원도 안 간다’며 당당한 태도로 일관해 누리꾼들의 ‘폭격’을 맞았다. 이 와중에도 그는 ‘친구 사이의 다툼이었으나 모두 화해했고, 동영상이 어떻게 유포됐는지 수사를 의뢰하겠다’며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에 가해 학생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인터넷 서명운동이 진행되는 등 사태가 확대됐다.

    한편 3월 말, 인천의 한 남자고등학교 교실에서 두 학생이 이른바 ‘맞장’을 뜨는 1분20초짜리 동영상이 유포됐다. 동영상에는 격투기를 방불케 하는 주먹다짐과 의자로 상대의 얼굴을 내리찍는 잔혹한 장면도 담겨 있다. 또 지난해 5월에는 충북 충주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남학생 3명이 여학생 1명을 집단으로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유포돼 물의를 빚었다.

    이처럼 잔인한 동영상이 유포되는 것에 대해 많은 전문가는 “청소년들이 자극적인 동영상을 제작, 유포하는 것을 자기과시로 여기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인성이 성숙하지 못한 일부 청소년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의 행위를 ‘범죄’가 아닌 ‘놀이’로 여긴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당수 가해 학생은 동영상 촬영을 이른바 ‘잘나가는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해 청소년은 “내 주먹과 명령에 쩔쩔매는 또래의 모습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감과 우월감을 느낀다. 그들이 굴욕적인 모습을 보일수록 더욱 그렇다”고 고백했다.

    일부 가해자는 동영상이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는 등 세간에 급속히 유포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거나 즐거워하기도 했다. 한 수사 관계자는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재미 삼아 그랬다, 이 정도는 해둬야 아무도 못 건드린다’는 가해자들의 말을 듣고 아찔했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미성년자인 이들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가능 여부다. 경찰은 피해자의 신고가 없어도 동영상을 증거로 수사에 착수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견해다. 하지만 처벌 수위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만 14세 미만 청소년은 형사미성년자로 분류돼 소년원 입소 등 형사상 처벌이 불가능하다. 부모 등 법적 보호자의 동의 아래 보호관찰소에 일정 기간 출석시켜 대상 청소년의 상태를 점검하는 보호처분만 가능하다. 보호처분에는 가해자 연령에 따라 소년원 송치도 포함되지만, 단순 보호처분으로는 계도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적용한다. 따라서 폭행 동영상 가해자들이 이 처분을 받게 될지는 미지수다. 또 보복이나 ‘왕따’를 당할 것을 두려워한 피해자들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거나 형식적인 합의를 보고 무마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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