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2

2009.04.21

생계 막막하면 일단 110번 누르세요

국민권익위 110콜센터 현대판 신문고 … 서민들 눈물과 한숨 절절한 하소연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9-04-16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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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계 막막하면 일단 110번 누르세요
    (사례 1)긴급생계비 지원 6급 장애인 A씨. 남편은 지난해부터 고혈압과 당뇨로 병석에 누웠고, A씨가 홀로 운영하는 조그만 분식가게는 20만원 월세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형편이 나빠졌다. 생계가 막막해 정부 지원이라도 받고 싶었지만, 분식가게를 폐업해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했다. A씨는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110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전해들은 상담사는 서울 강북구청에 연락했고, 구청 사회복지과 계장이 직접 A씨를 방문했다. 강북구청은 당장 끼니를 잇기 어려운 A씨의 사정을 확인한 뒤 쌀 한 가마니를 긴급 지원하고 실업 상태인 자녀를 공공근로 현장에 취업 알선했다.

    (사례 2)연리 2948% 불법 사금융 경기도 의정부에 거주하는 B씨는 생활정보지 광고를 통해 알게 된 C씨에게서 200만원을 대출받았다. 400만원을 원금으로 정한 뒤 선이자와 수수료 명목으로 290만원을 제한 110만원을 지급받고 매달 80만원(연이자율 2948%)의 이자를 납부하는 터무니없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급전이 필요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대부계약을 체결했다. 한 달 안에 216만원을 변제했음에도 C씨가 협박하며 계속 이자를 요구하자 B씨는 110콜센터에 구제방법을 상담했다. 110센터는 상담을 마친 뒤 관할 경찰서에 신고했다. 수사 결과 무등록 대부업체로 드러난 C씨는 대부업법 및 이자율 제한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았다.

    서울 서대문구에 자리한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 2층. 끊이지 않고 울려대는 전화에 110콜센터 상담사들은 한시도 쉴 틈이 없다. 칸막이가 있는 작은 책상에서 상담사들은 전화를 받는 동시에 상담 내용에 맞는 관련 기관을 찾기 위해 분주히 인터넷을 검색한다.

    “실업급여는 고용지원센터에 문의하시면 됩니다. 연결해드리겠습니다.”

    소외계층 민원 가장 쉽게 접수처리



    상담실 한 귀퉁이에 있는 현황판에는 110콜센터로 걸려온 상담 건수, 처리 현황 등이 실시간으로 기록된다. 상담사 1명이 하루 동안 처리하는 상담전화는 100~120통. 긴급생계비 지원, 사업자 대출, 실업급여 문의에서부터 전화번호 안내까지 다양한 상담전화가 걸려온다. 짧게는 1분 안에 통화가 끝나지만 길게는 30분 넘게 상담이 계속되기도 한다. 110콜센터 이태희 상담사는 “신문과 방송의 보도를 보고 제도 운영에 대해 문의하는 사람도 많다. 실업급여, 일자리 지원 등 정부가 추진하는 제도의 혜택을 자신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등을 많이 물어온다”고 말했다.

    ‘돈이 없어서’ ‘백이 없어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서민들이 권익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권익위 110콜센터는 정부기관을 여전히 높은 벽으로 느끼는 서민들에게 ‘낮은 문턱’을 표방한다. 민원 접수가 되지 않는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110콜센터 김안태 센터장은 “정부 각 부처의 민원 접수가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다 보니 아무래도 노인이나 장애인이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런 점에서 전화는 사각지대의 소외계층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접근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110콜센터의 상담 내용이 단순한 민원 안내에 그쳤다면, 2009년 1/4분기에는 악화된 경기 탓인지 사례 1처럼 생계형 민원(사회안전망) 상담이 많이 늘었다. 전체 상담전화 가운데 10% 이상을 차지할 정도. 이태희 상담사는 “최근에는 소외계층의 어려운 사정에 대한 상담이 많이 들어온다. 조금 전에도 노인 부부가 소득이 없어진 탓에 전기가 끊기는 등 어려움을 겪자, 이웃 주민이 110콜센터에 전화를 걸어왔다. 관련 기관과 함께 이분들을 돕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1/4분기 4만1833건 상담

    올 1/4분기에 110콜센터가 처리한 생계형 민원 관련 상담 건수는 4만1833통. 이 가운데 보이스피싱, 불법 채권추심, 이자율 위반 등 생계침해가 약 40%인 1만6957통으로 가장 많았다(표 참조). 특히 경기침체를 반영하듯 불법 사금융과 관련된 생계침해형 부조리 상담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 눈에 띈다. 뒤이어 근로장려세제(대상자격, 지급명세서 제출방법, 구비서류), 사회복지(기초노령연금, 생계비 지원, 보육료 지원, 국민연금), 금융신용(소상공인대출, 창업자금대출, 개인파산, 신용조회), 노동취업(임금체불, 실업급여, 직업훈련, 육아휴직급여)순으로 상담 건수가 많았다.

    사례 2에서 보듯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의 문턱이 워낙 높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악덕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2008년 한 해 동안 불법 사금융과 관련된 상담 건수는 4032건. 사정이 급박해 사금융을 이용하더라도 되도록 정식으로 등록된 대부업체를 이용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음에도, 소외층에겐 그나마도 그림에 떡이라 무등록 대부업체를 찾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생계 막막하면 일단 110번 누르세요
    언론매체에 자주 보도되는 보이스피싱 관련 피해 역시 계속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남 김해에서 보이스피싱을 당한 여대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한 해 동안 110콜센터에 접수된 보이스피싱 신고 건수는 7만7177건으로, 피해액이 22억여 원(월평균 1억8000만원)에 달했다. 110콜센터에 신고되지 않은 금액까지 고려하면 실제 피해액은 훨씬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우체국 택배에서부터 KT, 검찰, 경찰청에 이르기까지 사칭 유형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노인이 많이 이용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2008년 110콜센터를 이용한 민원인의 연령분포는 30대가 32%, 40대가 34%로 조사돼 30, 40대 장년층의 상담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여성이 55%, 남성이 45%. 김안태 센터장은 “경기침체라는 직격탄을 맞아 실직에 직면한 30, 40대 직장인과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의 문의가 많은 것 같다”고 해석했다.

    경기 전망도 그리 밝지 않은 탓에 당분간 110콜센터로 걸려오는 생계형 민원 상담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바빠지더라도 서민들이 이곳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한 상담사의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기 너머엔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서민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10콜센터는?

    1차 상담 후 331개 기관과 연결 민원처리


    생계 막막하면 일단 110번 누르세요
    110콜센터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정부민원안내 콜센터’다. 2007년 5월10일 전국 서비스를 시작한 뒤 지난 1월 경찰청의 생계침해형 부조리사범 신고전화(1379)와 통합돼 운영되고 있다. 2곳의 민간업체가 국민권익위원회와 도급계약을 맺고 상담업무를 맡고 있으며 115명(110콜센터 106명, 110종로센터 9명)의 상담사들이 근무한다.

    110콜센터를 이용하려면 전국 어디서나 지역번호 없이 110번 또는 1379번을 누르면 된다. 상담사는 1차 상담 후 사안에 따라 관련 기관(노동부, 경찰청 등)과 연계해 상담 내용을 처리한다. 110콜센터는 331개 기관과 전화로 연결된다. 민원인은 수사기관을 직접 방문해 신고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고, 상담사로부터 신고절차 및 구제방법 등에 대한 상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110콜센터(전화번호 110)의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8시~오후 9시/ 토요일 오전 8시~오후 1시, 110종로센터(전화번호 1379)는 평일 오전 9시~오후 7시/ 토요일 오전 9시~오후 1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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