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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100만 달러 광고 이벤트, 레드카펫 (上)

여배우 드레스, 구두, 클러치 비즈니스 현장 … 디트리히-디올, 헵번-지방시 협력 계기로 시작

  • 뉴욕=조 벡 광고기획자 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100만 달러 광고 이벤트, 레드카펫 (上)

100만 달러 광고 이벤트, 레드카펫 (上)

오드리 헵번(왼쪽)은 영화 ‘사브리나’를 위해 파리의 디자이너 지방시를 직접 찾아갔고, 마를렌 디트리히(중간)는 크리스찬 디올(왼쪽)의 의상을 입어 현대적인 레드카펫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영화사 소속 디자이너가 여배우의 옷을 만들었다.

올해도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로 한 해의 영화계가 시작됐다. 지난해는 미국작가협회(WGA, Writer’s Guild of America)의 파업으로 골든글로브 영화제가 무산되고, 제80회 아카데미 영화제도 조촐하게 열렸다. 올해 아카데미 위원회는 지난해의 서운함을 만회하려는 듯, 그동안 코미디언들에게 맡겨왔던 종합 사회를 영화 ‘X맨’ 시리즈의 ‘울버린’ 역으로 유명한 오스트레일리아 배우 휴 잭맨에게 넘기는 등 시상식 구성에서 출연진까지 어느 해보다 많은 신경을 썼다는 평을 받았다.

시상 결과와 함께 관심이 쏠리는 영화제의 또 다른 백미는 ‘레드카펫(Red Carpet)’이다. 레드카펫은 시상식장 앞에 100m 이상 길게 깔린 붉은색 융단을 밟고 지나가는 여배우들의 드레스 향연이다.

올해는 미국 경기침체로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럭셔리한 드레스와 고가의 보석 및 장신구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거나 시상자로 선정된 여배우들이 자신의 글래머러스한 매력을 한껏 뽐낼 수 있는,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기회를 놓칠 리는 없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아카데미의 ‘레드카펫’이야말로 100만 달러의 광고 캠페인이 부럽지 않다고 말한다. 전 세계 5000만명 넘는 시청자 앞에서 여배우가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 뜰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것은 레드카펫 위의 여배우들에게만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 레드카펫은 여배우들이 입고 있는 드레스, 살짝 내비치는 구두, 들고 있는 클러치(clutch), 귀고리와 목걸이, 반지 등 모든 것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패션업계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비즈니스 현장이다. 레드카펫을 ‘알맹이’인 시상식에 버금가는 지상 최대의 이벤트로 만든 최고의 협력자이자 수혜자는 물론 미디어다. 각 방송사는 레드카펫에 리포터를 투입, 참석한 여배우들의 스타일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면서 ‘최고’와 ‘최악’의 드레스를 선정하고 코멘트를 덧붙이는 레드카펫 쇼를 제작한다. 신문이나 잡지 등 지면에서는 그녀들의 스타일을 낱낱이 파헤쳐 특집 기사를 내보낸다. 이처럼 레드카펫이 하나의 산업으로 불리기까지, 과거 대중에게서 ‘여신’으로 추앙받은 몇몇 여배우의 기여가 있었다. 아카데미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할리우드 스타들이 자신의 스타일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살펴보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비비언 리는 1940년 제1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붉은 양귀비꽃이 수놓인 시폰 드레스에 그녀의 연인이자 배우인 로렌스 올리비에에게서 받은 ‘반 클리프 · 아펠’의 아쿠아마린 펜던트를 매치해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 화려한 프린트의 드레스는 로스앤젤레스 윌셔가에 부티크를 열고 있던 디자이너 아이린(Irene)의 작품이었는데, 당시 마를렌 디트리히, 그레타 가르보 그리고 클라크 게이블과 결혼한 여배우 캐럴 롬바르드 등 할리우드에서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이 모두 고객이었다고 한다. 파리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돌아온 아이린이 나타나기 이전까지는 영화사에 소속돼 영화 의상을 제작하는 이른바 ‘코스튬 디자이너(Costume Designer)’에게 시상식 드레스를 의뢰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아이린의 등장으로 여배우들이 영화사 의상부의 드레스가 아닌 고급 부티크의 드레스를 입고 아카데미 시상식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여배우들이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의 드레스를 입고 아카데미에 나타난 것은 마를렌 디트리히와 오드리 헵번에 이르러서다.

스릴러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이 마를렌 디트리히에게 영화 ‘무대공포증(Stage Fright)’출연을 제의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캐릭터인 샬롯이 반드시 디올의 의상을 입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녀는 패션 매거진에서 뉴룩(New Look)의 창시자라 칭송받던 전도유망한 파리의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 등과 자주 술을 마시고 여행을 다닐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처음 그 조건을 들은 히치콕 감독은 전례가 없던 일이라 반대 의사를 내비쳤지만, ‘디올이 아니면 출연은 없다’는 디트리히의 강경한 태도로 결국 받아들였고, 크리스찬 디올은 할리우드 영화에 처음으로 참여한 파리의 쿠튀리에(Couturier)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처음 TV로 중계된 1951년의 제3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디트리히는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의 시상을 맡았다. 디트리히는 조명까지 꼼꼼히 따지며 리허설을 했다. 그날 입을 디올의 새틴 드레스가 어떻게 TV 화면에 나오는지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잘록한 허리와 풍부한 히프를 강조한 검은 실크 벨벳 재킷과 디올의 재능을 보여주는 새틴 소재의 칵테일 드레스는 그해 아카데미 최고의 작품 ‘이브의 모든 것’을 누를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글래머러스한 마를렌이 스포트라이트를 훔치다’ ‘디트리히의 드레스가 아카데미 수상작을 눌렀다’ 등 시상식 다음 날 신문들의 1면 제목은 6개 부문을 휩쓴 ‘이브의 모든 것’이 아니라 디트리히의 레드카펫으로 장식됐다.

지방시 의상 입고 스타일 뽐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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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무성영화 시대부터 현재까지, 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부터 지금까지 여배우들이 레드카펫에서 입은 드레스와 그 드레스를 만들고 입히기 위해 노력해온 패션업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책 ‘레드카펫 : 패션, 아카데미 시상식을 만나다’(브론윈 코스그레이브 지음, 조벡 번역, 동서교류 펴냄, 근간)의 내용에 근거한 것입니다.

영화 ‘사브리나’의 여주인공으로 낙점된 오드리 헵번은 파리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사브리나의 캐릭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영화 의상을 영화사 내 디자이너가 아니라 실제 파리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유명한 코스튬 디자이너인 에디스 헤드는 사브리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헵번은 혼자서 파리로 날아가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를 찾아간다.

당시 오드리 헵번은 파리에서는 아직 유명하지 않았기에 지방시는 그녀를 캐서린 헵번으로 착각한다. 다음 컬렉션 준비로 바빴던 지방시는 애송이 배우 헵번의 의상 제작 제의를 거절한다. 하지만 헵번은 그에게 영화 의상을 애원했고 지방시는 이미 제작돼 숍에 진열된 옷이라도 상관없다면 입으라고 말했다. 헵번은 기쁜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몇 가지 옷을 입어본 뒤 바로 구입했다. 그중 하나로 보트 넥(Boat Neck 혹은 Decollete Bateau)이라고 하는, 목선이 쇄골 부분까지 파인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선원들이 입는 셔츠에서 영감을 받은 상의는 나중에 ‘사브리나 데콜테’라 불리며 지방시를 대표하는 상품의 하나가 된다. 그 후에도 헵번은 영화에서는 물론 사적으로 참석하는 행사에서도 꼭 지방시의 의상을 입어 스타일을 뽐냈다. 이후 오드리 헵번 하면 지방시, 지방시 하면 오드리 헵번이라고 할 정도로 두 사람은 서로의 인생에 둘도 없는 동반자가 됐다. 다음엔 현재 활동하는 여배우들의 레드카펫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1년을 준비해 하루 만에 치르는 전쟁’이라 할 만큼 살벌한 레드카펫에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그리고 그 경제효과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기로 하자.



주간동아 2009.04.14 681호 (p76~77)

뉴욕=조 벡 광고기획자 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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