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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탈모인 서바이벌 01

“세상이 날 가만 두지 않았다”

노블레스 회원 가입 권하던 결혼업체, 탈모 변장하자 “가입비 아깝다”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세상이 날 가만 두지 않았다”

[기자가 직접 뛰어든 ‘탈모인 체험’ 72시간]

“세상이 날 가만 두지 않았다”
단지 머리숱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아들 녀석이 만지는 바람에 휘어진 안경테도, 무뚝뚝한 경상도 억양도, 180cm의 키와 83kg의 몸무게도, 소주 한 병 주량도 어제와 같았다. 그러나 ‘탈모 가발’은 한때 ‘나’였던 존재를 통째로 잡아먹었다. 한 가정의 가장도, 스포츠 마니아도, 귤과 호떡을 좋아하는 30대 중반도 잊어야 했다. 이름은 ‘저기 대머리 아저씨’였고, 나의 존재는 우려와 동정, 눈요기의 대상이었다. 행동해야 할 순간 짐짓 주변 사람의 시선을 살피고, 그들의 입술을 흘깃 쳐다봐야 했다. 탈모는 그렇게 내가 아는 자아(自我)를 가렸다.

“탈모인은 대머리가 아니다”

기자는 3월10일과 11, 14일 사흘간 ‘탈모인’이 됐다.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 빗은 탈모 가발을 썼다. 탈모인들이 우울증 치료를 받고, 때로 자살을 시도하는 대한민국에서 탈모에 대한 편견과 진실은 그들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탈모인에 대한 집단 따돌림’에 알게 모르게 동참한 비탈모인으로서의 반성이기도 했다.

탈모인 변장에는 한국분장 강대영 대표(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가 도움을 줬다. 그는 기자의 두상을 살펴본 뒤 가발 끝부분을 머리로 가릴 수 있는 ‘앞머리 탈모’ 가발이 적당하다고 제안했고, 이틀 만에 가발을 완성했다. 그러고는 머릿기름과 접착제를 이용해 기자의 머리에 가발을 고정했다. 각종 방송 및 오페라 공연에서 전문 분장사로 37년을 일한 강 대표는 “기자를 탈모인으로 분장해주는 것은 처음”이라며 “두상 본을 뜨고 완벽한 분장을 하려면 3주는 걸린다”고 했다.



취재에 앞서 기자는 3월9일 탈모인 3명을 만나 애벌 취재를 했다. 사실 기자는 탈모인과 만난 자리에서 처음 ‘탈모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만큼 탈모와는 무관한 인생이었다. 사춘기 때 머리숱이 많아 부드럽게 머리카락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불만을 가졌던 적은 있지만.

결국 탈모인과의 대화 도중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대머리’라는 말을 남발하는 무례(?)를 범했다. 비탈모인으로서 ‘머리카락이 아주 적거나 없는 상태’를 뜻하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시간여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 탈모인은 고개를 저으며 한마디 했다.

“저는 대머리가 아니라 탈모인입니다. ‘대머리’는 사람을 희화화하는 말이거든요.”

더 이상 이런 설명을 하는 것도 지쳤다는 듯 그는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짐작이나 했으랴. 그 가늘고 긴 한숨이 다음 날 기자의 입에서 새어나올 줄은.

“세상이 날 가만 두지 않았다”

한 과일가게에서 귤을 고르는 기자. 시장에서 물건을 고를 때 기자가 고개를 숙이면 대부분의 상인들은 대머리라며 키득댔다.

탈모인은 ‘외로움’의 다른 말

머리에 신문 한 부를 올려놓은 듯한 느낌뿐 가발은 썼는지 안 썼는지 표시가 나지 않았다. 헤어핀에 클립을 부착한 가발은 단단히 고정됐고, 가발 두피는 스프리트 검(접착제)으로 이마에 안착했다.

서울 신사동 한국분장 사무실을 나오는 순간 ‘앞머리 탈모인’으로 변신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장바구니를 들고 지나가던 아주머니는 흘깃 쳐다보더니 다시 걸음을 멈춰 고개를 돌렸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키득댔다.

서울 성북구의 한 재래시장에서는 동물원 원숭이가 따로 없었다. 과일을 고르려고 고개를 숙이거나 손을 뻗어 물건 값을 물어보는 순간 상인들은 ‘급방’이었다. 한 아주머니는 맞은편 가게 아주머니에게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눈짓으로 기자의 머리를 보라고 신호를 보냈다. 늦은 오후였지만 기자는 ‘여기 있으면 안 될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 느낌은 한 과일가게에서 현실로 다가왔다.

“아주머니, 귤 얼마예요?”

“5개에 1000원요.”

“5000원어치 주세요. 맛 좀 보게 한두 개 더 줘요.”

“%$^%^·@@.”

순간 함께 과일을 팔던 2명의 아주머니는 박장대소했고, 기자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예? 뭐라고요?”

“(공짜 좋아하면) 머리 벗겨진다고요! 벌써 많이 벗겨지셨구먼.(웃음)”

아주머니는 즐거운 듯 귤 3개를 덤으로 주겠다고 말했다.

강남의 한 건물 엘리베이터에선 ‘직접적 표현’이 날아들었다. 20층 건물 5층에서 올라탄 3명의 60대 여성은 번갈아가며 기자를 올려다봤다. ‘모자 클럽’ 회원이라도 되는 듯 챙이 넓은 모자와 그늘 모자를 쓴 그들은 귓속말을 주고받고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음을 참았다. 1평 남짓한 공간에서의 귓속말은 그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차라리 모자라도 쓰지” “그러게. 허우대는 멀쩡한데…. 힘은 센가봐.(일동 웃음)”

“한 제약회사 설문조사 결과 아세요? 조사 대상인 미혼 여성의 82%가 소개팅에서 대머리를 만났을 때, 그냥 나와버리거나 다시는 안 만나겠다고 답했습니다.”

3월9일 만난 미혼의 30대 탈모인 A씨는 30대 탈모인들이 자살 충동을 많이 느끼는 주요 이유는 결혼이라고 했다.

“세상이 날 가만 두지 않았다”
“(가발을) 쓰지 않았을 땐 첫 만남에서 끝입니다. 가발로 ‘변장’하고 10여 차례 만나 서로 마음이 통한 여성들도 (탈모인이라고) 고백하면 안색이 바뀝니다. 소개해준 사람은 ‘대머리나 소개해주냐’는 욕을 듣죠. 죽을 맛입니다.”

“세상이 날 가만 두지 않았다”

한 결혼정보업체에서 회원 가입 상담을 하고 있다.

“술 100만원어치 먹고 버렸다고 생각하세요”

기자는 9일과 10일 이틀간 한 결혼정보업체를 찾아가 상담했다. 전날은 원래 헤어스타일로, 다음 날은 탈모인으로 변장한 채 상담을 했다. A씨의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두 커플매니저의 상반된 반응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첫날 상담한 팀장급 커플매니저는 기자에게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의 10여 년 관록은 30분 상담 시간을 시종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다.

그는 가족 현황, 학력, 종교, 원하는 배우자 직업, 신체 사이즈 등 100개가 넘는 문항이 적힌 양식지를 보여주고는 몇 개 항목을 직접 기입하라고 했다. 기자는 정확하게 신상을 기록했다. 그는 필요한 정보를 묻기도 했다.

“180cm? 키도 좋고 직업도 괜찮고, 누나들도 다 시집갔고…. 그런데 왜 아직 결혼을 안 했나요?”

“그냥 그렇게 됐어요.”

“배우자의 종교는?”

“상관없습니다. 제게 강요만 않는다면요.”

“회원 가입하세요. 많은 여성과 만날 기회가 있을 거예요.”

한창 문답이 오가자, 그는 조금 눈을 높여 전문직 회원이 많은 ‘노블레스’ 회원 가입을 권했다. 나이와 성별에 따라 조금 차이가 나지만, 일반 회원 가입비가 100만원대라면 노블레스 회원 가입비는 200만~300만원대.

“(노블레스 회원 가입) 결격사유는 전혀 없습니다. 다양한 만남 신청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요. 회원 가입하세요.”

다음 날 기자는 같은 자리에 10년 넘게 활동한 또 다른 팀장급 커플매니저와 마주앉았다. 반갑게 인사하며 들어서던 그는 기자를 본 순간 당황스러운 낯빛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전날처럼 양식지를 내밀었고, 기자는 어제와 같은 ‘스펙’을 기록했다. 전날과 다른 점은 커플매니저가 기자의 구체적인 연봉 액수와 결혼 시 주택 구입 능력, 부친의 경제력 등을 추가로 물어본 것. 전날의 대화는 주로 취미생활과 배우자 이상형에 관한 것이었다.

“(탈모는) 본인의 죄도 아닌데… 그렇죠? 그런데 여성은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거절 확률이 상당히 높아요. 아시잖아요. 남성은 비만 여성을, 여성은 대머리를 ‘용서’하지 않거든요.”

에둘러 말하는 그에게 ‘괜찮다’며 솔직히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회원 가입을 하면 상대 사진과 프로필을 보고 OK해야 만남이 이뤄지는데, 탈모인의 경우 경제력 등 다른 조건이 뛰어나야 그나마 ‘만남’이라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전날과 달리 경제력에 대해 캐물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제가 10년 전에 매니저 할 때는 165cm 이하의 키와 머리숱 적은 남성들도 개의치 않고 가입 받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여성들이 도무지 승낙하지 않아요. 키도 최소 168cm 이상 돼야 하고 머리숱도 많아야 해요. (탈모인은) 가입은 받지만, 한 번도 만남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어요.”

그는 상담 동안 ‘가입을 해도 만남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다섯 번 되풀이했다. 전날은 한 번도 듣지 못한 말이었다. 일반인이 100번 만나면 탈모인은 ‘조건’이 좋아야 5~10회, 그나마 ‘조건’도 보통이면 만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기자는 소주를 100만원어치 마셨다고 생각해야 일반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처지가 됐다.

“회원 가입하려면 (가입비) 100만원 술 먹고 던졌다고 생각하세요. 신경 쓰면 상처만 받고… 솔직히 그래요.”

성혼(成婚)이 최대 목표인 커플매니저의 처지도 이해가 돼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김이 샌 표정의 기자가 안쓰러웠을까. 그는 약간의 힌트를 줬다.

“프로필에는 단점을 정확히 써야 해요. 그런데 ‘가발은 쓰지만 겉으로는 잘 표시나지 않는다’고 쓰는 게 좋겠죠?”

그건 그렇고, 전날 제의받은 노블레스 회원 가입도 가능한지 물었다.

“직업, 가정환경, 외모 등 노블레스 회원들의 기대치가 얼마나 높은데요. (괜히 가입했다가 만남을 못 가지면) 상처만 받아요.”

“면접 때는 꼭 가발 쓰시고…”

같은 날 기자는 한 헤드헌트 업체를 방문했다. 미리 업체 대표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응시 원서를 보낸 뒤 헤드헌터와 만났다. 입사원서에는 1년 전 모습이라며 ‘머리숱 많은’ 증명사진을 첨부했다. 입사 목표는 한 중소기업 인사·홍보 파트. 고객과 만나는 영업직의 경우 외모를 어느 정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상식을 감안한 선택이었다. 내실로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자 며칠 전 통화한 헤드헌터가 인사했다. 그는 여러 서류 중 기자의 입사원서를 찾았다.

“요즘은 있는 사람들도 내보내는 판이라 (경력직 입사) 경쟁이 치열해요. 그래도 (지원서를 보니) ‘스펙’도 괜찮고 사회활동도 다양해 (입사가) 가능하겠더라고요. 어디 보자.”

담당자는 기자의 이름을 몇 번 혼잣말로 부르더니 이력서를 찾았다. 그는 허리와 목을 쭉 뻗으며 기자의 헤어스타일을 확인했다. 기자의 키가 커서 머리 상태를 정확하게 보지 못했다는 듯.

“배수강 씨 맞아요?”

“네.”

“….”

플러스펜을 몇 번 돌리던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진이 다르네요.”

“1년 전 사진입니다. 내근직이고, 업무 능력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해서 미리 말씀드리지는 않았어요.”

“그건 그렇지만….”

이후 30분간의 미팅에선 기자의 업무 능력과 경험보다는 외모 얘기가 주를 이뤘다. 대기업 회장 비서직에 응시한 한 여성이 최종 면접에서 ‘포토샵 사진’을 제출한 사실이 드러나 ‘쫑크’를 당했다, 우리나라는 첫인상이 입사의 70% 이상을 결정한다, 내근직이라도 나이가 많아 보이면 상사가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면접 때는 누가 봐도 못 알아챌 만큼 완벽한 가발을 쓸 수 있느냐는 제안까지. 2년 전 명문대를 졸업한 한 여성이 탈모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기자가 지루하다는 듯 손목시계를 쳐다보자 그가 서류뭉치를 정리했다. 통화할 때만 해도 입사가 결정된 듯 말하던 자신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추천 의뢰 자료를 찾아보고 연락드릴게요. 웬만하면 면접에선 가발을 쓰세요.”

기자는 이후 업체 대표를 만났다.

“헤드헌트 업체도 구인 의뢰 업체에 최종 3배수를 추천합니다. 그중 탈모인이 포함돼 있으면 회사 인사담당자는 ‘면접은 딱 한 번만 보고 추천했느냐’는 반응이 돌아와요. 같은 값이면 외모가 괜찮은 사람을 추천하라는 거죠. 서글프지만 업체 처지에선 받아들일 수밖에요.”

‘신언서판’(身言書判·중국 당나라 때 관리등용 시험에서 평가의 기준으로 삼은 외모, 언변, 글씨, 판단력 네 가지를 이르는 말)은 유독 탈모인에게만 엄격했다.

11일 오전 서울 중랑구의 한 나이트클럽. 현란한 조명과 분위기에 잠시 탈모를 잊었다. 스테이지에서 몸을 ‘흔들고’는 착석, 폭탄주 두세 잔이 오가자 웨이터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3명을 안내했다. 같이 간 선배가 기자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내가 웨이터에게 (돈을) 적당히 찔러놨어. 탈모 체험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세상이 날 가만 두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기자는 지인들로부터 우려와 동정, 유머의 대상이었다. 한 종업원은 “저기 대머리 아저씨 테이블에 물 드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이트에선 또 다른 ‘자아’ 발견

탈모 체험한답시고 평소 절친한 대학 선배(그는 40대 중반이다)에게 미리 얘기를 한 터였다. 선배는 부서 후배 4명과의 회식 자리에 기어코 기자를 불러냈고, 같은 또래의 직원들은 ‘부서장’ 모시듯 기자를 깍듯이 대했다.

“(기자를 직원들에게) 대학 후배라고 했는데 안 믿더라고. 회사 전무급 정도로 보더라니까. 머리 없는 게 이쪽에선 유리한 거 같아. 나도 슬슬 (머리가) 빠지는데 말이야.”

화장실에서 사정 설명을 듣고 다시 룸으로 향했다. 이미 4명의 여성과 즉석만남이 이뤄졌고, 분위기는 업. 조용히 자리에 앉는데 대화에 열심이던 한 여성이 엉덩이를 밀착해오며 귓속말을 했다.

“오빠! 머리….”

아뿔싸. 가무와 땀으로 탈모 가발이 들떠 있었고, 젤로 고정한 머리카락도 흐트러져 있었다. 재빨리 머리를 만지자 이번엔 큰 소리로 한마디 했다.

“난 (머리카락) 없는 이 오빠가 좋아.”

자연스레 파트너가 된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음, 솔직히 오빠는 있어 보여. 머리는 없지만… 왠지 셀 거 같아.(웃음)”

한두 명 파트너가 교체되더니 부서 회식은 쌍쌍파티 자리가 됐고, 처음 만난 여성들도 ‘언니’ ‘동생’ 하며 ‘급’친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입장하는 여성마다 기자를 보자 ‘키득’ 웃거나 ‘어머나’ 하는 표정이었고, 누구나 한마디씩 탈모 얘기를 해가며 배꼽을 잡았다.

“오빠, 대머리는 갑자기 비 올 때 어떻게 대처해요?” “정말 대머리는 (정력이) 세요?” “머리는 어떻게 감아요? 머리 빠질 때 슬프겠다” “어머, 얘 좀 봐. 그래도 대머리 오라버니 중엔 거지가 없잖니. 우리 오빠는 (머리카락을) 심으면 돼” “대머리는 공짜를 좋아하니까 돈 쓸 데가 없어 부자가 된 거지”….

기자를 깍듯이 대하던 회사 직원들도 입이 근질거렸던지 장단을 맞춘다. “왜, 그 ·#52059;·#52059; 전무 있잖아요. 요즘 아침마다 머리 두드리잖아요. 머리 난다고 자랑하던데요.” “그러고 보니 ‘슈퍼맨’의 렉스 루더나 ‘양들의 침묵’ 렉터 박사도 대머리네. 악당은 다 대머리인가봐.” “아침저녁으로 시원하겠어요. 그래도 나중에 아이 운동회 갈 땐 (가발) 쓰고 가세요. 아이 상처 받아요”….

탈모 얘기 중 여성들은 주로 잠자리나 돈 관련 유머를, 남성들은 직장 상사와 유전 등을 이야기했다. 한 시간여가 지나자 모른 척하던 선배가 자리를 정리했다.

“내가 계산하려고 했는데 벌써 ‘대머리 후배’가 계산했네. 보통 대머리와 다른가봐.”

파티 멤버들은 존경의 눈빛과 박수를 쏟아냈다. 여느 ‘계산 후 세리머니’ 반응과는 다른, 진심 어린 반응이었다. (기자는 계산을 하지 않았다. 선배가 먼저 계산하고 ‘립서비스’를 했을 뿐이다) 짧은 시간 파트너였던 한 여성이 거든다.

“그러게 우리 오빠는 여느 대머리와 다르다고 했잖아.”

그는 끝까지 ‘대머리=정력가’를 확인하고 싶어했다. 파티 멤버들은 노래방에서 한 곡 뽑자고 했지만, 기자는 ‘머리 손질’을 이유로 어렵사리 자리를 떴다. 새벽 2시. 클럽 앞에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오르자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택시기사의 머리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기사님도 없네요.”

“아, 이거요? 있으면 거추장스럽기만 하지, 아예 없는 게 시원해요. 양심에 털 난 사람보다 머리에 털 없는 사람이 낫죠. 이 나이 되면 신경도 안 써요.”



주간동아 2009.03.31 679호 (p16~21)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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