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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이 만난 영화, 영화인|‘다찌마와 리’의 임원희

정의로운 듯 야비하고 단단한 듯 부드러운 ‘두 얼굴’

정의로운 듯 야비하고 단단한 듯 부드러운 ‘두 얼굴’

정의로운 듯 야비하고 단단한 듯 부드러운 ‘두 얼굴’

독특한 ‘쌈마이 영화’인 ‘다찌마와 리’는 2000년 인터넷 영화로 만들어졌던 작품이기도 하다. 두 편의 ‘다찌마와 리’에서 임원희는 단연 돋보이는 연기를 보여준다.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는 뻔뻔한 영화다. 농담을 하는 사람이 먼저 웃으면, 듣는 사람은 전혀 우습지가 않다. 하지만 거짓말이 뻔한데도 얼굴에 철판 깔고 정색하며 말하면, 듣는 사람의 웃음은 더욱 커진다. 그렇다고 농담이 진담 되는 건 아니다. 그것은 농담하는 사람이 원하는 바도 아니다.

‘다찌마와 리’는 1940년대 만주 벌판을 배경으로 임시정부의 스파이 다찌마와 리가 사라진 정부의 기밀문서를 되찾기 위해 어둠의 세력들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 자체의 튼튼한 서사구조나 치밀한 논리전개는 중요하지가 않다.

‘다찌마와 리’는 ‘쌈마이 영화’를 자청한다. 성산대교 밑이 분명한데도 뻔뻔하게 두만강 혹은 흑룡강(헤이룽강), 압록강 등의 자막을 집어넣는다. 용평스키장인데 자막에는 스위스 알프스라고 적혀 있다.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등장해서 유창한 언어로 지껄이지만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초등학교 교실에서나 들을 수 있는 유치한 말장난이다. 각각의 언어적 특성만 살린 어미를 붙여서 말하는 짝퉁 외국어 흉내다.

이처럼 ‘다찌마와 리’는 유희정신으로 충만하다. 답답한 엄숙주의를 한 방에 날려 보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 농담 좀 하자는데 뭐? “스케일이 큰 뻥을 치는 것이 영화의 콘셉트다”라고 류승완 감독은 말한다. 그러나 대충 장난치며 노는 것이 유희정신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유희정신이 그 의미를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다찌마와 리’의 전략은 좋지만 전술에는 문제점이 있다. 1950, 60년대 한국 활극영화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한 신들이 발목을 잡는다. 다찌마와 리라는 제목 자체가 영화의 짜고 치는 액션신을 뜻하는 일본식 용어인 것을 생각해보면,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복고 코드는 이 영화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왜 복고인가’라는 문제의식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장된 액션과 대사, 몸짓으로 점철된 ‘다찌마와 리’가 디지털 하이테크 시대의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뿌리 깊은 공명을 불러일으키려면 철저한 문제의식에 맥을 대고 있어야 한다. 겉으로는 가볍고 유치한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이면에 세밀한 전략 전술이 있지 않으면 영화는 실패하기 쉽다.

‘다찌마와 리’가 뻔뻔함을 극대화해서 더욱 밀어붙였다면, 그리고 그 이면에 현실 풍자와 조롱으로 가득 찬 유희정신이 있었다면 영화사에 남는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사항이다. ‘다찌마와 리’는 그냥 뻔뻔한 농담 한번 할 테니 웃고 즐기시라고 말한다. 딱 그뿐이다. 그래서 ‘다찌마와 리’의 웃음은 가볍고 휘발성이 강하다. 촌철살인적인 대사로 가득하지만 이것들이 충돌하면서 의미가 확대되지도 않는다. 파편화된 대사와 동작들은 단편적 웃음만 양산한다.

1998년 ‘기막힌 사내들’로 데뷔 … 이후 흥행은 기대 못 미쳐

‘다찌마와 리’의 웃음의 중심에는 임원희가 있다. 단단하고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고 연약하며, 정의로운 듯하면서도 순식간에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 야비함이 임원희 속에 공존한다. 조각 같은 꽃미남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평평한 이마, 넓은 콧구멍,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 연기는 독보적이다.

“솔직히 말하면 배우 하기 딱 좋은 관상이라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내 얼굴이 둥글둥글 속없이 착한 노총각처럼 생겼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치켜 올라간 숱 많은 눈썹과 눈꼬리 덕에 불한당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한다. 닮은 사람 봤다는 사람도 없는 걸로 봐서 개성 있는 얼굴이라 믿는다. 그래서 이제 남은 건 연기뿐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판 ‘다찌마와 리’가 화제를 몰고 다니던 2000년대 초, 그는 정말 뜬 배우였다. 대학로 장진 사단의 일원으로 장진 감독의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1998)로 충무로에 입성해 세 번째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임원희는, 당시 전도유망한 내일의 흥행배우였다. 하지만 그 이후 임원희의 성적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가 대중에게 눈도장을 받은 것은 ‘실미도’ ‘식객’ 정도에 불과하다. ‘간첩 리철진’‘주먹이 운다’ 같은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별로 존재감이 없었다.

장동건 조인성 강동원 등 대한민국 꽃미남 배우 계보에 임원희가 속한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얼굴이 무기인 배우는 얼굴에 핀 꽃이 시들면 무기의 힘도 종말을 고하지만, 연기력이 무기인 배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공력이 쌓이면서 만개해간다. 그렇다고 임원희를 후자의 경우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도 없다. 그는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등 ‘남자 배우 빅3’나 그 뒤를 잇는다고 평가되는 황정민 조승우 류승범 박해일 등과도 거리가 있다.

정의로운 듯 야비하고 단단한 듯 부드러운 ‘두 얼굴’
하지만 만약 당신이 2000년 인터넷 영화로 상영되면서 126만의 조회수를 기록한 전설적인 영화 ‘다찌마와 리’를 본 적이 있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임원희는 적어도 ‘다찌마와 리’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배우다. 그 영화 안에서 그의 얼굴은 장동건보다 빛나고, 연기는 송강호를 추월한다.

2008년 극장판 ‘다찌마와 리’에는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기본 콘셉트는 2000년 인터넷 영화를 그대로 극장판으로 옮겨왔지만, 많은 것이 변했다. 국내를 무대로 활극 액션을 펼치던 다찌마와 리는 이제 세계를 무대로 활동을 벌인다. 할리우드 속편들이 반드시 전편보다 큰 사이즈로 가는 전략을 이어받고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 ‘다찌마와 리’에서 확실히 각인

주요 등장인물에도 변화가 있다. 다찌마와 리를 둘러싼 두 명의 여자, 당대 최고의 스파이 금연자 역으로 공효진이 합류했고, 다찌마와 리와 연정 관계에 있는 첩보원 마리 역으로 박시연이 캐스팅됐다. 또 기억상실증에 걸린 다찌마와 리를 사모하는 이름 모를 소녀 역으로 황보라가 등장한다. ‘다찌마와 리’에 열광했던 9년 전 관객들은 때 묻지 않은 유희정신에, 그리고 엄숙주의를 날려버리는 가벼움의 미학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극장판으로 스케일을 키운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결코 가볍지 않고 순수하지도 않다. 상업적 전략 아래 집행된 제작과 저예산으로 인터넷 개봉영화를 만들 때와의 상황은 다르지만, 기본 정신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어야 했다.

임원희는 1970년 1월1일생, 우리 나이로 39세다. 배우로서 적지 않은 나이다. ‘다찌마와 리’에서 통용되는 그의 과장된 연기가 다른 작품에도 통용되지는 않는다.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서 그것을 바탕으로 탄력성 있는 연기를 키워가지 못하면 그의 입지는 쉽게 구축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임원희만큼 개성 있는 배우도 드물다. 그는 자신의 자산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어떻게 다른 배우들의 연기와 조화를 이루며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완성도를 해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영화는 아주 좋은 성격파 배우 한 사람을 얻는 것이다.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그 증거다.



주간동아 2008.08.19 649호 (p68~70)

  • 하재봉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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