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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비핵·개방 3000 구상 남조선, 헛소리 말라우”

李 정부 ‘당근과 채찍’구상 평양 ‘발끈’ … 김영남 訪南 무산 상처 강경 모드로 전환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비핵·개방 3000 구상 남조선, 헛소리 말라우”

“비핵·개방 3000 구상 남조선, 헛소리 말라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가운데)이 3월4일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해 류샤오밍 중국대사(왼쪽) 부부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남조선 보수 집권세력은 파쇼 통치로 남조선을 참혹한 인권의 불모지로, 민주의 폐허지대로 만들었던 독재정권의 후예들이다.”

한국에 새롭게 들어선 정부를 관망해온 북한이 낯빛을 바꾸고 공세에 나섰다. 평양은 “비싸게 마련한 대응 타격으로 맞받을 것이다” “핵전쟁의 불구름이 몰려온다”고도 했다.

북한은 그간 이명박 정부의 대북(對北) 기조를 탐색해왔다. 비판을 자제하면서 은근한 제스처도 보냈다. 1월 중순엔 “책임 있는 양측 관계자들이 만나자”고도 제안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삼가던 북한이 기(氣)싸움에 나섰다. 왜일까. 평양 사정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 A씨의 분석.

“이명박 정부가 화해 제스처를 무시한 데 대해 평양이 발끈했다. 북한은 3월 초 대남(對南) 전략을 확정했다. 북한은 새 정부와의 첫 대화 때부터 살벌하게 나올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 구상에도 평양은 그 모호성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평양은 ‘테러지원국 해제’ ‘적성국가 교역법 종료’라는 ‘선물’을 쥔 미국에 부드럽게 대응하면서 서울에는 까칠하게 행동하고 있다. 아직 첫 단추도 끼우지 않은 이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이 첫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이명박 정부가 검토해온 ‘비핵·개방 3000’ 구상에 따르면 새 정부의 대북정책은 ‘당근과 채찍’으로 요약된다. 북한의 약점을 건드리면서 남북대화에서 ‘갑(甲)’의 위치에 서겠다는 게 이번 대북정책의 핵심이다. ‘행동 대 행동’으로 북한을 다루겠다는 것이다.

평양은 벌써부터 ‘당근과 채찍’ 전략에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서울이 쌀과 비료 제공을 지렛대 삼아 협상에 나서면 중국으로 방향을 틀겠다는 태도다. 평양의 까칠한 대남 인식엔 이명박 정부에 무시당했다는 불만도 깔려 있다.

평양은 1월 중순 비공개 루트를 통해 이 대통령에게 대화를 제의했다. 일종의 구애(求愛) 제스처였다고 서울은 해석하지만, 평양은 단지 정권 개시 초기에 원만한 진행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에 불만을 나타내는, 과거 연을 맺었던 남측 인사들을 평양이 달래는 모습도 수차례 포착됐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회동의 구체적인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며 거절했다.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진행되던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남(訪南)도 결국 무산됐다.

“비핵·개방 3000 구상 남조선, 헛소리 말라우”

이명박 대통령은 2월1일 동아일보, 아사히신문, 월스트리트저널 공동 인터뷰에서 남북관계 진전 방향에 대한 윤곽을 드러냈다.

甲의 위치에서 ‘행동 대 행동’ 첫 단추 어긋

김 상임위원장은 북한의 명목상 수반이자 2인자다. 이 대통령이 1월17일 외신기자 회견에서 “북한에서 취임식 경축사절단이 온다면 언제나 환영이다”라고 밝혀 김 상임위원장의 방남이 기대됐지만, 서울의 분명한 거절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한나라당 중진 J의원이 그 과정에서 대북특사로 거론됐다고 한다.

‘권력 2인자의 서울 방문 카드’는 평양이 심사숙고 끝에 내놓은 것이다. 북한은 국가정보원과 남측의 북한전문가 B씨를 통해 투(two) 트랙으로 김 상임위원장의 방남을 타진했다. 남녀관계가 그렇듯, 은근한 제스처가 거부당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파쇼’ ‘민주의 폐허지대’ ‘핵전쟁의 불구름’ 등 서울을 향한 평양의 거친 수사법은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B씨는 “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북측과 접촉해 큰 그림을 그렸어야 했는데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명박 정부가 검토 중인 ‘비핵·개방 3000’ 구상의 핵심은 △북한의 정상국가화 △북한문제의 포괄적 해법 △한미동맹 강화 △인센티브와 페널티 △핵 폐기 시 전폭적 지원으로 요약된다. ‘갑’의 위치에서 북한을 주무르며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남북문제는 민족문제이자 국제문제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독트린은 내교(內交)보다 외교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 외교안보 라인의 구심점격인 외교통상부를 중심으로 미국과 호흡을 맞추면서 포괄적으로 남북문제를 다루겠다는 태도다.

이명박 정부가 검토 중인 ‘비핵·개방 3000’ 구상은 1단계 비핵화 → 2단계 북한의 정상국가화 → 3단계 남북경제공동체 건설로 짜여 있다. 한미동맹을 강화해 북한을 비핵화한 뒤 한국이 경제적 지원에 나서 ‘인권유린’ ‘테러지원’ ‘대량살상무기’라는 고깔을 벗기겠다는 것이다. 요컨대 북한이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할 때마다 단계별로 ‘선물’을 준다는 게 이명박 정부의 구상이다. ‘테이크(take) 앤드 기브(give)’의 형태로 북한이 핵 신고를 하면 개성공단을 확장하고 핵을 폐기하면 북미·북일 수교를 돕겠다는 식이다. 한국의 지원이 없으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평양 처지를 충분히 활용하면서 남북대화를 늘려나가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3월11일 외교통상부 업무보고 때 이렇게 밝혔다.

“일본과 셔틀외교를 하는데 북한과는 못할 것이 뭐가 있느냐. 우리는 북한과 대치해 남북한 화해에 손상이 간다든지 그렇게 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어느 때보다 남북이 화해하고 화합하길 바란다. 북한이 좀더 잘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라며, 남의 나라에 손 벌리지 않고도 이른 시간 안에 자립하길 원한다. 그렇게 돼야 남북통일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언제든지 마음의 문을 열고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대화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신(新)보수를 자임한 이 대통령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로 상징되는 구(舊)보수와 달리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이 대통령은 냉온수를 번갈아 평양에 붓고 있다. 대화를 중시하면서도 보수적 색채를 띠는 것은 4·9 총선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에게 남북문제를 조언해온 C씨의 설명이다.

“통일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낙마한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최적임자였다. 보수적인 국민들은 북한에 퍼주는 걸 싫어한다. 대북 강경론자로 알려진 그가 내치용으로 보수세력을 다독이면서 물밑에선 북측과의 대화를 통해 남북문제를 풀어간다는 구상이었다. 4·9 총선에서 보수표가 중요하지 않은가. 총선 뒤엔 정부의 대북기조가 한결 부드러워질 것이다. 물론 북한이 성실하게 나온다는 전제에서 그렇다.”

그런데 북한은 ‘비핵·개방 3000’이 대단히 못마땅한 표정이다. “비현실적이고 북(北)을 모르는 소리”(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라고도 했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실현 가능성이 없는 그들만의 헛소리”라는 반응도 나왔다고 한다.

평양은 남측이 쌀과 비료를 무기로 첫 대화부터 ‘갑’의 위치에 서고자 한다는 걸 꿰뚫고 있다. 또한 ‘비핵·개방 3000’은 개념만 있을 뿐 각론은 빈약하다고 여긴다.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만들 구체적 사업계획도 없으면서 뭘 하자는 거냐”는 투다.

남북문제를 오랫동안 들여다본 서울의 일부 전문가 집단은 “지금까지 드러난 ‘비핵·개방 3000’의 실체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린다. 보수세력이 좌파정권 10년간 북한과 대화를 하지 못하면서 감을 잃은 것 같다고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하는 D씨는 주장한다.

통일부 관계자 “현장용 아닌 탁상공론”

“북한은 남한이 ‘갑’ 위치에 서는 걸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평양은 서울에 의해 일방적으로 옷이 벗겨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6자회담이라는 다자틀로 북미관계에 연동해 남북대화를 하겠다는 태도로, 오히려 남북문제에서 서울이 소외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통일부 관계자도 “‘비핵·개방 3000’은 일종의 이념형(ideal type)이다. 그대로 된다면야 그보다 좋은 구상이 없겠지만, 오랫동안 남북관계를 들여다본 처지에서 볼 때 현장용은 아닌 것 같다”고 주장했다.

“평양은 ‘서울에 의한, 서울이 바라는’ 방향의 개혁개방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평양은 서울로의 종속을 두려워한다”는 게 대북 소식통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게다가 서울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주도적 위치에 서기 어렵다. 각 단계별로 채찍과 당근을 구사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김영삼 정부 때처럼 북한이 미국과는 ‘어깨동무’를 하면서 남측의 요구는 무시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이 그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새 대북라인과 북한의 대남라인은 비료 지원-이산가족 상봉을 엮은 남북대화로 ‘살벌하게’ 첫 대면할 것으로 보인다. 비료 지원은 1~3월 남북 간 협의가 이뤄져 3~4월 배송이 시작되곤 했다. 서울은 이 대화 때부터 ‘갑’의 위치에 서고자 한다.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 브레인으로 알려진 한 인사의 예측이다.

“북한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납북자 문제는 비료 지원과 연계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쌀과 비료 분배의 투명성을 요구할 예정이다. 북한으로서는 서울의 쌀과 비료 지원이 절실하다. 우리가 북한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

북한이 까칠하게 나오면 ‘맞대응’하면서 북한의 태도가 바뀔 때까지 ‘숨을 고른다’는 게 이명박 정부가 검토한 방안 가운데 하나다. 평양이 ‘길들이기’에 나서면 ‘길들이기’로 맞대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남측의 의도대로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평양 사정에 정통한 한 대북 소식통은 이렇게 말했다.

“서울이 비료 지원을 매개로 까다롭게 나올 경우 평양은 ‘필요 없다’면서 판을 깨버릴 것이다. 이는 북미관계의 호전과 무관하게 남북관계가 파국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중국에 종속되길 원하지 않던 북한이 중국과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 북한이 중국에 식량과 에너지 지원을 요구했으며, 이에 중국이 오케이(OK)한 것으로 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에 대한 지원을 ‘착한 행동’에 대한 ‘인센티브’로 본다. △북미·북일 수교 지원 △400억 달러 지원 자금 조성 △포괄적 패키지 지원 등 단계별로 ‘당근’도 준비해놨다. 서울의 도움이 없으면 ‘먹고사는’ 문제가 곤란해진다는 사실을 평양이 잘 아는 만큼 북한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옷을 벗기는 ‘도구’로서의 남북 경제협력을 강조하는 것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든 ‘패’를 낮게 평가했다는 지적이다. 북일 수교협상의 배상금 논의가 100억 달러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미국도 북한이 핵 폐기에 나설 경우 전폭적으로 지원할 태세다. 특히 1월31일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개성공단을 전격 방문한 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성공단을 한국의 손에 놔두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북한을 지원할 때 국민의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막대한 자금을 북한에 투자할 수 있다.”(통일부 한 관계자)

남북관계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중국은 미국의 뜻을 거스르면서 북한에서 모험을 할 뜻은 없지만 “한반도 분단의 연장과 북한의 생존을 어느 정도 바라고 있다.”(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중국은 동북공정, 백두산공정이 암시하듯 북한을 경제적으로 활용하려 한다. 노무현 정부가 평양과 실사구시와는 무관한 ‘정치쇼’를 벌일 때 중국은 당, 군, 국무원, 지방의 성 정부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북측과 연계망을 구축했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 지렛대로 ‘남북’ 고비를 넘는다”는 구상의 실행 각론을 조정하지 않는다면 남북관계는 ‘상호 무시’ ‘대결’의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으며,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따로 흐를 수도 있다. “비료 지원에서 진전이 없을 경우 5∼6월 테러지정국 해제를 무산시키지 않을 정도의 대남 도발을 우려한다”는 정형근 의원의 발언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북한이 한국을 향해 또다시 불장난을 할 수 있다”(대북 소식통 A씨)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에서도 실사구시, 실용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남북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면 형식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회담할 수 있다”고 했다. “형식을 걷어내고 실질적으로 잘 해보자는 것”이라고도 했다. 구태를 반복해온 통일부-통일전선부 채널을 극복하고 해당 부처-기관이 전방위로 대화해보자는 뜻도 밝혔다.

그러나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남북관계는 파국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비핵·개방 3000’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본다. ‘비핵·개방 3000’의 스탠스와 각론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미관계가 해빙되면 ‘북한’이라는 배의 닻이 풀린다. ‘비핵·개방 3000’이 과연 그 배를 남쪽으로 끌어올 수 있을까. 껄끄럽던 북한과 중국의 밀월 모드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다.



주간동아 2008.03.25 628호 (p54~57)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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