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6

2008.03.11

언론인으로 사는 법 알려주마!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8-03-05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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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인으로 사는 법 알려주마!

    <b>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b><br>새뮤얼 프리드먼 지음/ 조우석 옮김/ 미래인 펴냄/ 320쪽/ 1만원

    내어릴 적 꿈은 소설가였다. 정말로 소설가가 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내 인생에 소설가란 타이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일어 마지막 순간 포기하고 말았다.

    또 다른 꿈은 저널리스트였다. 나는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가 되어 정치적 혼란기였던 1980년에 편집장의 임무까지 수행했다. 비상계엄 시절이었기에 신문의 마지막 교정쇄를 가지고 서울시청에서 검열을 받아야 했다.

    한번은 한 주간지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 탤런트 사진을 가지고 와서 검열을 받았다. 그런데 검열관 5명이 원탁에 둘러앉아 그 사진을 보며 한참 회의를 하더니 다리 중간쯤에 선을 긋는 것이 아닌가? 그때 스크린(영화), 스포츠, 섹스의 3S로 대중을 우민화하려는 지배세력의 대중조작 실상의 한 단면을 목격하고는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한 번도 언론사 입사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저널리스트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출판사에 근무할 때는 새벽 5시에 출근해 스포츠지, 경제지를 포함한 모든 신문을 보고 스크랩했으니 나만큼 신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새뮤얼 프리드먼의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를 읽으면서 나는 어쩌면 다른 방식으로 내가 저널리스트의 꿈을 이룩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저자는 현장기자뿐 아니라 논픽션 라이터까지 저널리스트로 보고 있으니, 나처럼 일간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출판전문 잡지를 주관하는 사람도 포함될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저널리스트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입문서다. 저널리즘의 미래, 저널리스트의 자질, 취재하기와 기사 쓰기, 경력 관리하기 등을 짜임새 있게 정리해놓았기에 상당히 꼼꼼한 입문서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내게는 그런 책 이상이었다.

    저자는 이름 없는 지방신문 인턴기자에서 출발해 ‘뉴욕타임스’ 같은 유명지의 기자가 돼 빈부 격차와 가난, 정치부패, 의료사기 등 세상 유행에는 조금 비켜간 주제의 탐사보도로 이름을 떨치다 지금은 컬럼비아대학 저널리즘스쿨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대학으로 적을 옮긴 것은 탐사보도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가 펴낸 6권의 논픽션은 모두 ‘뉴욕타임스’ 올해 최고의 책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또 탁월한 저널리스트에게 주는 헬렌 번스타인 상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은 성공한 저널리스트의 감동적인 자서전으로 읽힐 뿐만 아니라, 요즘 잘나가는 어떤 자기계발서보다도 효과적으로 인생의 참된 가치와 올바른 길을 깨닫게 해준다. 또 글쓰기 방법론도 효과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저널리스트 입문자나 현장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내가 만약 어린 시절에 이런 책을 읽었다면 저널리스트가 되려고 목숨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저자에게 저널리스트란 독립적인 존재요, 생각과 판단의 망명정부다. 그러니 저널리스트는 무엇보다 독립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런 의무를 스스로 부과해야 한다. 독립적 사고란 사회통념이나 대중이 좋아하는 신념체계에 안주하려는 자세를 거부하는 태도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저널리스트가 지녀야 할 결정적인 자질이라고 본다. 그런 자질을 갖춘 사람만이 증언자, 냉철한 관찰자, 스토리텔러 같은 저널리스트의 소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저자는 또한 도덕적 저널리스트는 따뜻한 가슴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의 무차별 네이팜탄 폭격을 받아 불타버린 마을을 도망치듯 뛰쳐나와 울부짖으며 길거리를 질주하는 한 소녀의 사진을 찍은 AP통신 닉 우드 기자는 사진을 찍은 다음 그 소녀를 곧바로 병원으로 데려가 수술실로 들여보내고서야 사진 전송을 마쳤다. 미국에서 베트남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된 이 사진으로 닉 우드 기자는 퓰리처상을 탔을 뿐 아니라 한 소녀의 목숨을 구했는데, 이를 두고 저자는 저널리스트의 영혼까지 구했다고 덧붙인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은 글쓰기의 방법론이다. 오늘날 뉴저널리즘의 기수들은 딱딱한 저널리즘 기사에 소설 창작의 기법을 원용하자고 주장한다. 드라마틱한 긴장감, 인물 전개, 내면 성찰, 화자의 시점 이동, 연대기적 나열의 파괴 등 문학적 기법을 어떻게 신문기사에 도입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름답고 정확한 문장, 문법에 따라 쓴 문장, 미학적으로 균형 잡힌 문장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형용사, 부사가 가득해 겉으로만 매끄러운 문장을 버리고 명사와 동사만으로 간결하게 쓰라고 충고한다.

    이런 일을 제대로 수행하면 시대가 아무리 엄혹해도 저널리즘의 미래는 밝을 뿐 아니라, 저널리스트는 서구문명을 구해낸 아일랜드 수도사 이상의 역할도 수행해낼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에 더해 평범한 사실 속에서 명쾌한 진실을 밝혀내는 저자의 글쓰기가 그런 단언에 확신을 안겨준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성찰을 해보는 망외의 소득 또한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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