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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선군정치? 웰컴 도이모이!

北, 경제실리·먹는 문제 해결 앞세워 … 북한 개혁 로드맵 새 정부 역할 부재 우려 제기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굿바이 선군정치? 웰컴 도이모이!

굿바이 선군정치? 웰컴 도이모이!

함경도 일원엔 벌써부터 춘궁기가 시작됐다.

함경도의 매서운 바람은 3월에도 살을 엔다. 춘궁기는 벌써 시작됐다. 함경도 양강도 자강도 일원에선 식량 걱정이 태산이다. 지난해 8월 대홍수 탓이다. 강성대국을 앞세우고 10년을 노력했음에도 북한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한국과 국제사회가 지원한 쌀은 군(軍) 몫으로 우선 분배된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강원도의 북한군 최전방 부대에서 적십자 마크 또는 ‘대한민국’ 글자가 쓰인 쌀 포대가 북한군 부대에 쌓여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식량 배급엔 우선순위가 있다. 평양의 중심구역 인구와 인민무력부 150만명이 1, 2위 순위다. 나머지는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이다.”(노동당 간부 출신 탈북자 A씨)

“평양에 살 때 비교적 지위도 높고 잘살았으나 남한 쌀은 구경도 못했다. 장마당에서 남조선 쌀이 팔리는데, 그건 군대에 들어간 쌀이 흘러나온 것이다.”(경공업성 간부 출신 탈북자 C씨)

북한민주화위원회가 탈북자를 면접 조사한 내용은 일반의 관점에서는 충격적이다. 고위층 탈북자들에 따르면 한국에서 지원받은 쌀의 대부분이 2호 창고와 북한군에 공급된다. 한국이 제공한 비료가 제2경제위원회(북한에서 군수제품의 계획, 생산, 분배 및 대외무역을 관장하는 기구)로 전용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Tips1

2호 창고는 전쟁용 비축미를 보관하는 곳이다. ‘주간동아’는 2006년 9월 함경남도 단천역에서 북한군 병사들이 ‘대한민국’ 글자가 찍힌 대북 지원용 쌀을 화차에서 군용 트럭으로 옮겨 싣는 장면을 촬영한 한 탈북자의 동영상을 단독 공개한 바 있다(‘주간동아’ 552호 ‘한국 지원 쌀, 왜 북한군이 가져가나’ 제하 기사 참조). 당시 정부는 북한의 쌀 전용에 대해 “그럴 리 없다”면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남측이 지원한 쌀이 북한군 식량으로 쓰인다는 것은 남측 시각으로는 놀라운 일이나 선군정치를 앞세운 북측 시각으론 도덕적으로 거리낄 게 없는 당연한 행위다.


지난해 4월부터 선군정치 기조 변화 감지

북한은 쿠바와 마찬가지로 소련이 붕괴한 1990년 이후 경제가 곤두박질쳤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시장지향적’ 개혁 대신 ‘자력갱생’을 택했다. 90년대 초반 북한은 핵 위기를 불러일으켜 경제난을 해결하고자 했는데, 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뒤 ‘고난의 행군’으로 불려진 초유의 경제위기에 빠져든다.

“최근 평양만 보고 돌아온 남측 인사들은 북한의 식량난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고난의 행군’ 때도 평양만큼은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유지했다. 외부에서 지원받은 쌀을 군으로 먼저 돌리는 것은 ‘북한으로선 당연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주창한 선군정치가 무엇인가. 그것은 군대가 나라의 근간이라는 뜻이다.”(대북소식통 K씨)

북한은 역사의 주역이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군대라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오롯이 결별했다. 그 중심에 선군정치가 있다. 선군정치를 이데올로기로 삼고 핵, 미사일 등 무장을 강화하면서 북한은 쿠바, 베트남처럼 유연한 개혁·개방 정책을 시도하지 못했다.

2002년 네덜란드 출신의 화교(華僑)인 양빈(楊斌) 어우야(歐亞)그룹 회장을 신의주 개발에 끌어들인 것도 중국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양빈이 끌어오려던 유럽 자본은 한국과 미국, 중국의 자본과 달리 ‘김정일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해(害)가 될 가능성이 적었다. 그러나 중국은 양빈을 탈세 혐의로 기소하면서 북한의 의지를 꺾었다.

선군정치 기조에 변화의 흐름이 감지된 때는 지난해 4월.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북-미 해빙이 더뎌지면서 북측의 불안감은 점증됐다. 태양절(4월15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이 지난 뒤 실질적 어려움도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식량난이었다. 평양의 수뇌부는 내치(內治)에서 어려움이 갑절로 늘어나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그렇다면 선군정치를 극복할 새로운 방향은 뭔가? ‘경제실리주의’가 그것이다. 10년 가까이 북한 체제를 이끈 슬로건을 뒤로하고, 경제실리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지난해 4월을 기점으로 경제부흥파가 중용된 데는 남측 민간 전문가들의 설득도 영향을 끼쳤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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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올해 신년사엔 경제실리주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북한은 신년사에서 ‘인민생활 제일주의’와 ‘먹는 문제 우선 해결’을 강조했다. 김일성 주석 출생 100주년인 2012년엔 “기어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겠다”는 게 북한의 의지요, 결심이다. 강성대국은 먹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완성된다’는 게 평양의 생각이다.

북한이 강성대국 구호를 처음 내건 때는 1999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상, 정치, 군사 강국이므로 경제 강국이 될 일만 남았다’는 게 강성대국론(論)의 요지다. 다시 말해 북한이 발표한 올해 신년사의 속뜻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군사 강성대국은 이뤘으니, 먹는 문제를 해결해 강성대국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북한 경제는 외부 지원을 받지 못하면 연명하기 어려울 만큼 좋지 않다. ‘먹는 문제’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위기감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1990년대 쿠바가 그랬듯,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부흥을 꾀하는 개혁·개방에 북한이 관심을 보이는 까닭이다.

1990년대에 첫 단추를 잘못 꿰면서 계획경제의 기반이 붕괴된 북한은 외부 도움 없이는 경제문제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없다. 그래서 평양은 ‘물주’를 찾기 위해 곳곳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7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크리스토퍼 힐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통해 뉴욕 필하모닉을 초청한 것도 일종의 구애다.

Tips2

선군정치(先軍政治)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999년부터 내건 정치사상이다. 북한은 1955년 이전까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았고 이후 주체사상이 도입돼 77년 ‘북조선사회주의헌법’에서 주체사상을 공식 이념으로 선포함으로써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결별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결별했으나 북한사회의 근본이 프롤레타리아에 있다는 점은 바뀌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국제사회에서 제국주의적 패도정치가 만연한 가운데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노동계급이 아닌 군대를 국가의 근간으로 보는 새로운 정치체계를 제안했다. 그것이 바로 선군정치다. 이 통치이념은 역사의 주역이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군대라는 주장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오롯이 결별한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 베트남 or 중국 방문 저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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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제공한 쌀을 가득 실은 화차를 경비하는 북한 군인. 단천시 위연시장에 나온 한국 정부 제공 쌀(사진 아래).

평양 권력집단 일부에선 이명박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선남후미(先南後美) ’도 고려했다. 선남후미는 한국과의 협상을 통해 남북관계를 진전시킨 뒤 미국과의 협의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안이 남북 수뇌부의 테이블에 오른 건 이 같은 흐름에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한미동맹’ ‘선미후북(先美後北)’을 강조하면서 ‘김영남 방남’은 무산됐다.

중국은 동북공정, 백두산공정이 암시하듯 북한을 경제적으로 종속화하려고 한다. 중국은 북한의 조차(租借)식 개발을 원한다. 중국은 한반도의 지하자원에도 군침을 흘린다. 동북4성론의 요지는 ‘중국의,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북한의 개방’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로 지난해 노동당 행정부장으로 컴백함으로써 권력을 회복한 ‘장성택 그룹’이 북한의 친중(親中) 집단이다.

북한 권력구조에서 장 부장의 대척점엔 리제강 조직지도부 1부부장이 있다. ‘리제강 그룹’은 후계자로 주목받는 김 위원장의 차남 김정철의 후견 세력이다. 김 위원장이 중국 쪽으로 기울면 장 부장이, 그렇지 않으면 리 부부장이 힘을 얻는 게 북한 권력구조다. 리 부부장은 ‘미국 쪽 라인’도 갖춘 인사로 2004년 장 부장이 이른바 ‘분파주의’ 사건으로 실각한 뒤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지금’ 김 위원장은 베트남 혹은 중국 방문을 저울질하고 있다. 핵 신고 수준과 그에 따른 대가를 미국과 조율한 뒤 방문지를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의 동선이 베트남으로 향하면 북한의 권력지도에서 ‘친중’이 밀린다는 뜻이다. 미국과의 물밑 대화가 여의치 않을 경우 이 대통령이 4월 미국 일본을 방문하는 것에 맞춰, 즉 한국의 ‘선미후북’에 대응해 김 위원장이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포기하고 중조일치(中朝一致·북한을 중국화한다는 뜻)로 상징되는 ‘신(新)조선 전략’을 세워놓은 중국에 투항하리라는 우려 섞인 관측도 있다.

북한의 개혁·개방에 영향을 끼치려는 강대국들의 움직임은 바야흐로 백화제방이다. 중국은 수년 전부터 북한 경제를 접수하기 위해 치밀한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노무현 정부가 통일부-통일전선부라는 채널에서 실사구시와는 무관한 ‘정치쇼’를 벌일 때 중국은 당, 군, 국무원, 지방의 성 정부 등 다양한 채널로 북측과 접촉했다.

인민생활우선주의를 올해 화두로 내건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간절히’ 원한다. 미국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임기 내 ‘북한 문제’ 해결을 바란다. 그러나 북한은 ‘낮은 수준에서’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는 것으로 넘어가려 하고, 미국은 북한의 핵 포기를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요컨대 북한은 핵무장은 기정사실화한 채 미국과 잘 지내보려는 것이다. 그것이 북한이 말하는 강성대국의 완성이다.

핵무기 기정사실화 미국과 관계 개선이 강성대국

지난해 10월16일 반세기 만에 북한을 방문한 농득마잉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에게 김 위원장은 “도이모이(Doi Moi·개혁)의 성취를 매우 높이 평가한다. 베트남을 거울로 삼고자 한다. 답방 초청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이 도이모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향한다면 △핵 프로그램 신고 △테러지원국 해제 및 적성국가 교역법 종료 △6자회담 진행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북 등과 관련해 북-미 간 이면 합의가 ‘높은 수준’에서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중국은 북한의 경제개발을 도울 ‘실탄’을 갖고 있다. 언제든 대북 경협자금으로 50억 달러가량은 집행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의 지원보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더욱 원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의 지원도 덤으로 딸려온다. 대북 강경론자이던 아베 신조 전 총리 때 7억 달러까지 내려간 북-일 수교 배상금은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취임하면서 100억 달러로 회복돼 북-일 간 수교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요컨대 북한이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는 미국의 북핵 문제 관리에 초점을 두고 ‘낮은 수준의 신고’로 북미 관계를 개선한 뒤, 미국이 내거는 조건에 맞추면서 ‘미국을 뒷배로 두고’ 베트남식 개혁·개방에 나서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실현되면 ‘완전한 핵 포기’를 강조하는 한국과 미국의 기조가 어긋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선미후북’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독트린은 북한 핵 폐기를 전제로 한국이 북한의 자발적 개방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지원책은 ‘비핵·개방 3000’이라고 이름 붙여진 구상이다. 이 독트린의 약점은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북한의 바람대로 미국이 ‘낮은 수준’에서 핵문제를 봉합하면 ‘비핵·개방 3000’은 이론적으론 시작조차 못한다. 게다가 ‘비핵·개방 3000’은 이론적으로 ‘선언’만 있을 뿐 ‘각론’은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선미후북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이는 ‘MB 독트린’ 대로라면 북한이 빗장을 여는 과정에서 한국이 닻줄 풀린 북한이라는 배를 영영 놓칠 수도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남북간 내교(內交)가 실사구시적으로 이뤄져야만 배를 잡아둘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북한은 1990년대 쿠바가 그랬듯 변해야 산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김 위원장이 과연 체제유지의 버팀목이던 선군정치에 ‘굿바이’라는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까? 베트남은 1986년 도이모이 정책을 추진한 후 연평균 7.6%의 고도성장을 달성해왔다. 사회주의 공화국인 베트남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2006년 기준으로 720달러다.



주간동아 2008.03.11 626호 (p52~55)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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