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3

2008.02.19

한승수 총리 인선은 노장 위한 배려?

적임자 없자 원로그룹이 막판 추천 일부 측근 반대 불구 MB가 최종 낙점

  • 심인성 연합뉴스 정치부 기자 sims@yna.co.kr

    입력2008-02-05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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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수 총리 인선은 노장 위한 배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왼쪽)이 1월2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한승수 유엔 기후변화 특사를 새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뒤 활짝 웃고 있다.

    “당사자도 놀랐고, 측근들도 놀랐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월28일 한승수 유엔 기후변화협약 특사를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공식 지명한 직후 한 특사의 측근이 던진 말이다. 예상치 못한 카드였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한 특사가 총리로 결정되기까지는 한 달여 우여곡절의 시간이 있었다. 새해 벽두부터 총리 인선을 둘러싸고 추측성 보도가 난무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사들의 이름이 리스트에 오르내리길 반복했다. 이런 와중에서 한 특사는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다크호스’로 떠올라 막판 스퍼트를 내며 ‘재상’ 자리에 올랐다.

    이 당선인은 당선 직후부터 총리 인선 구상에 착수했다. 10여 명의 비(非)정치인과 정치인 후보군을 놓고 ‘투 트랙’ 검토에 들어갔다.

    초기 검토 단계에선 비정치인보다 정치인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었다는 게 측근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1순위는 단연 경선 라이벌이었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자유선진당(가칭)에 몸담고 있는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는 차순위 검토 대상이었다. 4월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카드였다.

    당초 후보자들 잇따라 고사하거나 다른 중책으로 선회



    특히 ‘박근혜 카드’는 대선 직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됐다. 공천시기를 둘러싼 양 진영의 갈등을 일시에 해소하고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선 박 전 대표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카드였다.

    이 당선인은 소장파 외에도 친형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최시중 고문 등 원로들의 의견까지 수렴한 다음, 지난해 12월29일 박 전 대표와의 당선 후 첫 회동에서 “입각하셔서 함께 일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빌려 총리직을 거부했지만, 이 당선인 측은 여전히 박근혜 카드를 접지 않았다. 오히려 박 전 대표가 이 당선인의 중국 특사를 수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박근혜 카드는 점점 힘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수차례의 비공식 의사 타진에도 박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총리직 거부의사를 밝히자, 이 당선인도 1월 중순쯤 박근혜 카드를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로그룹과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 삼고초려를 건의하고, 박 전 대표와 대척점에 서 있던 이재오 의원마저 “박 전 대표가 총리로 추천돼도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이 당선인은 “이제 그만하자”며 역설득을 했다는 후문이다.

    충청권 공략 차원에서 검토하던 ‘심대평 카드’도 여의치 않자, 이 당선인은 이때부터 비정치인 카드를 본격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1월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정치적 고려를 배제한 채 일 중심 총리, 자원외교형 총리를 뽑겠다며 새로운 인선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기준에 따라 손병두 서강대 총장,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이원종 전 충북지사가 언론에 오르내렸다. 인사팀에서도 이와 비슷한 명단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승수라는 이름은 크게 거론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선순위로 검토하던 손 총장이 개인적 이유로 총리직을 고사한 데다 이 위원장에겐 다른 중책을 맡기기로 결심한 상황에서 적임자가 없자, 원로급 인사들은 1월18, 19일쯤 한 특사를 ‘와일드 카드’로 뽑아든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원로그룹 내부에서도 찬반양론이 적지 않았다. 한 원로급 인사는 노골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당선인이 ‘한승수 카드’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여러 장점을 발견하고는 마음을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들은 계속해서 한승수 카드에 반대의사를 내비쳤지만, 이 당선인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참여 논란, 철새 정치인 비판에 대해서도 “그만한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일축했다고 한다.

    상황을 돌이키는 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듯 “한승수는 아니다”라고 했던 측근들도 최종 인선이 임박해오자 “이 당선인이 한 특사를 꽤 좋아하는 것 같다”는 식으로 내부 기류를 전달했다. 그러다 1월20일 이 당선인 측이 한 특사의 연락처를 수배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승수 총리 내정’이 기정사실화되기 시작했다.

    이 당선인은 사흘 후인 1월24일 낮 서울 시내 모처에서 한 특사와 1시간30분 동안 오찬을 겸한 심층면접을 치른 뒤 결심을 굳히고 총리 지명 통보를 했다. 한 특사도 기자들과 만나 “1월24일 통보를 받았다”고 확인해줬다.

    이어 1월27일 완료된 정밀검증에서 ‘이상 없음’이라는 최종 판정이 나오자, 이 당선인은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을 통해 1월28일 총리 후보를 지명하는 기자회견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한 측근은 “예상치도 못했던 한승수 카드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원로들의 적극적인 조언과 이 당선인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 1시간30분 동안 심층면접한 뒤 결심

    한편 이 당선인은 이번 총리 인선에서 새로운 인사 스타일도 선보였다. 먼저 정부의 인사자료나 정보기관의 존안자료를 토대로 총리 후보를 확정한 뒤 추후 통지하는 방식과는 달리, 본인이 직접 심층면접을 통해 인물의 됨됨이와 ‘그릇’의 크기를 판단한 점이 신선하다는 평가다.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인사 스타일을 정치에 그대로 적용한 셈이다.

    철저한 보안을 위해 교차검증을 시도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여러 팀에 인사안 작성을 맡기되 서로 비밀을 철저히 지키도록 해, A팀에서 하는 일을 B팀과 C팀이 알지 못하게 했다.

    이 당선인은 원로와 소장파 그룹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뒤 정두언 의원 등 실무팀을 통해 1차 후보군을 선별하고, 그 다음 정책참모인 유우익 서울대 교수 등과 최종 압축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검증 실무는 이 당선인의 복심(腹心)인 박영준 전 서울시 정무국장이 도맡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당선인은 이번 총리 인선 때도 그동안 단골로 이용해온 롯데호텔을 적극 활용했다는 후문이다. 총리 인선 발표를 하루 앞둔 1월27일에도 롯데호텔에 머물면서 마지막 인선 구상을 가다듬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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