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3

2008.02.19

MB(명박)에 줄 대려 한 MB(만복) 회심의 카드 있었나

北 김영남 방남 관련설 제기 … 대선 전날 평양행은 그 때문?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8-02-05 1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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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명박)에 줄 대려 한 MB(만복) 회심의 카드 있었나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오른쪽).

    “남북관계는 제2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잘 진행되고 있으므로, 남측의 정권이 바뀌더라도 잘 유지되리라 봅니다. 내일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지만 한나라당의 대북정책도 화해, 협력 기조에서 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남한 내 보수층을 잘 설득할 수 있어 현 정부보다 더욱 과감한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김만복 국가정보원장)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한 언론사 간부와 전직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직원 14명에게 건넨 대화록의 일부다. 김 원장은 대선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18일 북한을 방문해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을 만났다. 김 원장이 그런 묘한 시점에 방북을 한 까닭과 대화록을 외부로 유출한 이유는 뭘까?

    여기서 잠시, ‘세계일보’ 1월30일자 기사를 보자.

    “국정원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측근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집권 준비에 따른 각종 현안 관련 정보와 보고서를 제공하는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이 보고서가 새 정부 ‘코드’에 맞는 내용 위주로 가공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보고서는 ‘명랑보고서’로 불리며, 국내외 정국 상황에 대한 낙관적 정보와 이 당선인의 선호에 맞춘 사안을 취합한 것으로, 김만복 원장이 최종 작성, 전달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국정원, 새 정부 입맛 맞는 정보만 골라 보고’ 제하 기사 참조)

    국정원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파견 직원을 통해 자료 요청이 오면 정보를 파악한 뒤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지만 정보를 걸러서 보고하는 일은 없다”고 부인했음에도, 김 원장이 유출한 대화록은 이른바 ‘명랑보고서’ 범위에 든다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 문제에서 상호주의를 내세운 이 당선인의 입맛에 맞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김 원장이 대선 전날 평양을 방문한 것은 대선이 끝난 뒤 이 당선인을 만나기 위해 그랬던 것으로 안다. 친서라도 한 장 받아왔더라면 그림이 되지 않았겠는가.”(인수위 한 관계자)

    북풍 기획설은 정황상 근거 부족

    김 원장은 대선 이후 줄기차게 이 당선인 및 측근 그룹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그는 왜 이 당선인을 만나려 했을까?

    김 원장의 방북 배경부터 살펴보자. 먼저 “대선 국면에서 북풍(北風)을 일으키기 위해 방북했다”는 일각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중국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투표가 한창 진행되던 지난해 12월19일 낮, 북측의 한 분석팀이 선거 전망을 내놓았다. 그들의 분석은 이랬다. ‘이명박(MB) 47%, 정동영 27%’(실제 투표 결과는 이명박 당선인 48.67%, 정동영 전 후보 26.14%). 평양이 대선 결과를 거의 정확하게 맞힌 것은 서울의 대선에 그만큼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평양의 한 그룹은 대선 직전 이명박 후보가 50% 넘는 득표율로 승리할 가능성이 40% 이상이라고 관측했다고 한다.

    평양 통일전선부와 서울 국정원이 이 후보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했다는 점에서 ‘북풍 기획’과 관련한 의구심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

    백종천 대통령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의 방미 때(지난해 12월3일)로 돌아가보자. 백 실장 일행은 미국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서울 방문 문제를 조율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미국은 종전선언에 대해 원론적으로 대응하면서 이를 사실상 거부했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말까지도 종전선언 이슈에 매달렸다.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이 주체가 되는 종전선언이 물 건너가자 변형된 형태를 들고 나왔다. 종전선언 추진의 ‘마지막 카드’ 격으로 노 대통령과 김 상임위원장이 주체가 되는 ‘종전선언’, 즉 남북간 종전합의, 그리고 미국(또는 미국과 중국)의 ‘지지선언’이라는 ‘2+1(2) 방안’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1월 김 상임위원장을 서울로 초청해 남북간 종전(‘신사선언’으로의 남북간 종전합의)에 서명하고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는 방안이었다. 평양은 노 대통령-김 상임위원장이 주체가 되는 ‘종전선언’에 대해 “추진해봅시다” “…”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추진해봅시다” “…”은 12월19일 대선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최근 이 당선인 측의 테이블에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 때 김 상임위원장을 초청하는 방안이 올라왔다. ‘국정원 라인’이 아닌 ‘다른 곳’을 통해 논의가 진행됐다고 한다. 그런데 국정원도 기존의 김 상임위원장 초청 공작을 계속 진행했다는 것이다. 물론 회담 주역은 노 대통령에서 이 당선인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북한이 대통령선거 전후로 이 당선인을 자극하는 발언을 삼가고 있는 것은 ‘투 트랙’으로 타진된 김 상임위원장 초청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김 원장이 이 당선인을 만나려 한 것은 김 상임위원장의 방남과 관련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김 원장의 방북은 노 대통령이 기념 식수한 소나무의 표지석을 설치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 김 상임위원장의 방남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국정원 라인’이 아닌 ‘다른 곳’을 통해 이 당선인 측 테이블에 올라온 김 상임위원장 초청건은 진행하지 않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었다는 후문이다.

    “통일 문제는 통일부와 북한 통일전선부가 수군수군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는 이 당선인의 최근 발언은 기존의 ‘통-통 체제’(통일부-통일전선부 라인으로 국정원이 배후다)를 꼬집어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은 “국정원의 대북 담당 부서가 가진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이 당선인 측의 한 핵심 인사는 “인수위를 구성할 때 제일 줄을 세게 댄 곳이 국정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대화록 유출 등을 차기 정부에 대한 로비 차원으로 해석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기존 남북대화 인프라 보존이냐 변화냐

    국정원은 북한의 공작기구에 휘둘릴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로 공식 라인을 제외한 남북한 대화루트가 생기는 걸 꺼려 했다. 대외연락부 같은 기구와 통일전선부는 다르다는 식으로도 설명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통-통 체제의 문제점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인수위는 통-통 체제를 해체하고 각 부처가 제각기 평양과 교류해나가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물론 총체적 조율은 있어야 할 것이다.

    차기 정부가 통-통 체제로 상징되는 기존 남북대화 ‘인프라’를 극복할지, 아니면 끌어안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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