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4

2007.12.11

쉴새없이 사고팔고 시장 물 흐리는 딜렉터들

  • 이호숙 아트마켓 애널리스트

    입력2007-12-05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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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쉴새없이 사고팔고 시장 물 흐리는 딜렉터들

    김형근 씨의 ‘행연’. 5000만~8000만원대로 추정되던 이 작품은 올해 9월 1억1000만원에 낙찰됐다.

    2005년부터 미술시장이 급격한 상승세를 타면서 단기간 고수익을 노린 신규 투자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딜렉터’(컬렉터와 딜러의 합성어)라 불리는 이들은 지난 2년간 쉴새없이 그림을 사고팔면서 큰 이익을 챙겼다. 이들은 그림을 감상하지 않는다. 작가 이름만으로 구매를 결정하고, 적절한 시기를 기다렸다 그림을 팔 뿐이다.

    미술계 관계자들은 컬렉터도 아니고 딜러도 아닌 이들의 행동에 난색을 표한다. 인사동 갤러리를 돌아다니면서 그림 사고팔기를 반복해 그림 가격만 올려놓거나 블루칩으로 떠오르는 작가를 찾아가 사정사정해 그림을 받아와서는 경매에 올리는 행동을 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스스로 뛰어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한 번이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이해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반복된다면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크다. 누가 이들에게 그림을 주려 하겠는가? 돈이 있으면 무엇을 못하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돈이 있어도 사지 못할 수 있음을 이제부터 경험하게 될 것이다.

    미술시장은 작은 동네다. 화랑가나 옥션에 새로운 컬렉터가 나타나면, 즉시 인사동 골목골목의 갤러리에까지 파다하게 알려진다. 그가 어떤 그림을 얼마에 샀고 언제 그것을 얼마에 팔았는지도 다 알려진다. 이미 시장에서 악명을 떨치는 몇몇 딜렉터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들은 아무리 뛰어다녀도 좋은 그림을 얻기 힘들다. 일부 딜렉터들은 순수하게 그림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들의 명성에도 해를 입힌다.

    그림은 매력적이다. 그런데 그림을 사서 포장지도 뜯지 않은 채 팔아넘긴다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그림을 오랫동안 소장하고 향유할 준비가 된 컬렉터들은 시장 흐름에 큰 동요가 없다. 하지만 차익 챙기기에 바빴던 딜렉터들은 미술시장이 조정기에 접어들자 피해라도 보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딜렉터들이여, 진정한 컬렉터가 되고 싶다면 꽁꽁 매놓은 포장지를 풀어라. 그리고 그림을 보라. 앞으로는 그림을 볼 줄 알아야 돈을 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제부터는 장기전이 될 것이고 안목이 승패를 좌우하는 진정한 미술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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