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5

2007.10.09

시대 앞서간 ‘보디숍의 전설’

영국 친환경 기업가 아니타 로딕 추모 열기 … 지구 보호와 윤리경영 선구자 역할

  • 성기영 영국 통신원

    입력2007-10-04 1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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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앞서간 ‘보디숍의 전설’

    동물실험 반대와 인권보호를 강조하는 보디숍의 포스터들.

    ‘웰빙’과 ‘삶의 질’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센터에 빠지지 않고 들어서는 매장 가운데 하나가 바로 뷰티 전문점 ‘보디숍(THE BODY SHOP)’이다. 그런데 ‘보디숍’에서 샤워젤을 사거나 보디 스크럽을 고르는 소비자는 많아도, 정작 이 글로벌 기업의 내력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불과 30년 전 영국의 남부 해안도시 브라이튼에서 ‘보디숍’을 창업한 평범한 주부의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보디숍’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이 글로벌 기업의 창업주 아니타 로딕의 위상은 남다르다. 최근 64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숨진 로딕을 놓고 영국 전체가 추모 열기에 휩싸였던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고든 브라운 총리가 직접 나서 “영국을 대표하는 진정한 선각자 가운데 한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고 추모했고, 공영방송 BBC는 한 기업인의 죽음을 10시 메인뉴스에서 두 번째 꼭지로 보도했다.

    2200개 뷰티 전문점 운영 입지전적 기업인

    버진그룹이나 막스 앤 스펜서 같은 영국 굴지의 기업 총수들이 TV에 나와 그를 애도했는가 하면, 국제적 환경운동단체인 그린피스 사무총장은 “사업이란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보여준 인물”이라며 로딕을 치켜세웠다.

    로딕은 손바닥만한 화장품 가게를 30년 만에 전 세계 55개국에서 2200개의 뷰티 전문점을 운영하는 영국 대표기업으로 키워낸 입지전적 기업인이다. 그러나 로딕에 대한 추모 열기가 그의 기업적 성취에 대한 의례적 ‘추도사’라고 보면 큰 오산이다.



    로딕은 환경파괴형 기업경영에 반대하면서 친환경과 기업의 이윤 창출을 어떻게 이상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기업인이자 사회운동가였다.

    로딕이 처음부터 지구환경 보호와 윤리경영 확산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설정해놓고 사업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이것저것 소규모 사업을 벌였지만 어느 것 하나 재미를 못 본 그가 단돈 4000파운드(약 760만원)를 들고 ‘보디숍’이라는 뷰티 전문점을 연 것은 1976년이었다.

    지금은 뷰티 전문점의 대명사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보디숍’은 동네 한구석을 차지한 영세 자영업체에 불과했다. 해외여행에서 접했거나 이탈리아 출신 부모를 통해 알게 된 색다른 화장용품 10여 가지를 늘어놓은 게 판매물품의 전부였다. 그러나 처음 문을 연 소규모 매장에서도 로딕은 화장품 용기나 포장용품 등 환경 파괴를 일으키는 유해물질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재활용 비율을 최대한 높여 ‘친환경’ 경영을 내세웠다.

    로딕의 ‘친환경’ 행보는 화장품의 성능 테스트를 위해 동물에게 유해물질 실험을 벌이는 데 반대하는 캠페인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이내 그의 사회운동 영역은 국가 단위를 넘어 전 지구적 차원의 빈곤 퇴치 및 친환경 제품 개발로 이어졌다. 주요 타깃은 아프리카의 저개발국이었다.

    시대 앞서간 ‘보디숍의 전설’

    1976년 문을 연 보디숍의 첫 번째 스토어.

    ‘보디숍’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킬수록 최고경영자인 로딕의 사회운동 행보는 더욱 과감해졌다.

    대표적인 사례로, 다국적 석유업체에 맞선 저개발국 환경보존 운동과 빈곤지역 자활지원 사업은 ‘보디숍’과 로딕에 의해 글로벌 이슈로 떠올랐다. 로딕은 1990년대 초 다국적 석유업체 ‘셸(shell)’의 석유 탐사로 인한 영토 파괴에 맞서 환경보존 캠페인을 벌이고 있던 나이지리아의 오고니족과 연대했다. 이는 결국 세계적 석유재벌인 ‘셸’이 이들의 저항운동에 손들고 ‘인권존중과 지속가능한 개발’을 포함한 새로운 기업윤리강령을 만드는 데 기폭제 구실을 했다.

    아프리카 최대 빈곤국 가운데 하나인 가나 타밀 지역에는 로딕이 설립한 ‘보디숍 재단’을 중심으로 제분소 등의 제조업 공장이 세워졌다. 이러한 현지화 사업은 가나의 극빈층 여성들에게 스스로 일해 돈을 버는 사상 초유의 경험을 안겨줬다. 당시 후진국 지원사업을 벌이며 로딕이 내세운 모토는 ‘원조가 아니라 교역(Trade-Not Aid)’이었다.

    로딕과 ‘보디숍’은 그린피스 등 국제환경단체와 연대해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재생가능 연료의 활용기반을 넓히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또 로딕은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인터내셔널의 주요 리더로 여러 해 동안 활동했고, 세상을 등지기 얼마 전에는 영국 내 사형폐지운동단체의 대표를 맡기로 수락한 바 있다.

    로딕의 거침없는 행보가 늘 비즈니스 영역에서 순풍을 탄 것만은 아니다. 1990년대 초 로딕이 걸프전 반대운동에 나섰을 때는 ‘보디숍’ 경영진 내부에서도 그의 행동으로 인한 갈등이 노출되기도 했다. 당시 주식시장 상장을 앞둔 상황에서 최고경영자의 반전 캠페인은 거래은행 시티뱅크와 미묘한 갈등관계를 부추기기도 했다.

    환경보호 기업성장 촉진 기폭제 처음으로 보여줘

    또 2006년 로딕이 ‘보디숍’을 프랑스의 로레알에 매각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의 지지자들은 창업정신을 배신했다며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딕은 로레알 측으로부터 독립경영을 약속받았다며 이를 반박했다.

    정작 기업가로서의 로딕이 돋보이는 대목은 사회운동을 바탕으로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모델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환경보호가 기업이윤 창출과 상충하는 생색내기용 캠페인이 아니라 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가 이미 30년 전부터 주장했던 동물실험 반대, 친환경 제품 개발, 저개발국 지역사회와의 공존 모델 같은 이슈들은 현재 영국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큰 논쟁거리다. 전통적으로 친기업적 성향을 보여온 보수당조차 환경세 도입을 주장하고 나설 정도로, 지금 영국에서는 ‘그린 열풍’이 핵심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다음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접전의 최대 포인트 역시 환경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영국인들이 로딕의 죽음을 더더욱 아쉬워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기업인 가운데 누구도 이런 ‘한가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 평범한 주부 출신 사장이 홀로 걸었던 길이 30년이 지난 지금 세계화 물결에 떠밀린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광장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영국인이 로딕을 ‘시대를 앞서간 기업인’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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