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3

2007.09.18

가장 오래 사는 직업 ‘지휘자’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7-09-12 17: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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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오래 사는 직업 ‘지휘자’

    ‘판타지아’

    록 기타리스트 지미 핸드릭스가 ‘전설’이 된 데는 그의 요절도 하나의 이유가 됐다. 약물중독으로 갑자기 사망했을 당시 그는 겨우 27세. 그와 마찬가지로, 팬들의 비탄을 자아낸 록 가수 짐 모리슨이나 재니스 조플린이 세상을 떠난 나이 역시 공교롭게도 27세였다. 사람들이 흔히 갖는 ‘록 스타들은 빨리 죽는다’라는 생각에 이들의 요절이 상당 부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직업과 평균수명 간의 상관관계는 없을까. 몇몇 조사를 통해 나온 공통된 결과에 따르면, 장수하는 대표적 직업으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있다.

    클래식 음악과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영화 ‘판타지아(Fantasia)’. 첫 장편 ‘백설공주’의 성공으로 한껏 고무된 월트 디즈니사가 1940년에 내놓은 이 야심작은 클래식 명곡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실험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가 걸작이 된 데는 당대 최고 지휘자의 출연도 큰 몫을 차지했다. 첫 장면에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호리호리한 뒷모습이 실루엣으로 등장하는데, 이 실루엣의 모델이 바로 당시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였던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였다.

    여기서 수명 얘기로 돌아가면, 그는 95세라는 ‘판타스틱’한 천수를 누렸다. 그런데 지휘자의 세계에서는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판타스틱’이 드물지 않다. 80세를 훌쩍 넘긴 사람만 해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89세), 칼 뵘(86세), 유진 올만디(86세), 아서 피들러(83세) 등이 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81세에 죽은 것은 오히려 명이 짧은 축에 속한다.

    지휘자들의 장수에는 몇 가지 과학적인 설명도 따라붙는다. 바른 자세와 많은 운동이 그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음악을 해석하고 단원들을 지배한다는 것. 그야말로 자기 삶을 지휘하는 것이니 스트레스 받을 일이 적고,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지휘자의 처지와 대조되는 일로 비서 업무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비서의 일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명문대를 졸업한 사회 초년병이 유명 패션잡지 편집장의 비서가 되는데, 영화 속 비서 일은 자신의 삶을 통째로 내주는 일이다. 극단화된 설정으로 보이지만, 비서 업무의 속성이 어느 면에선 그럴 것이다. 비서의 평균수명에 관한 조사 결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휘자와는 상반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오늘날 과연 이것이 비서만의 상황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여느 직장인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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