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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미학 교실 ①

유채꽃을 남들과 똑같이 찍으렵니까?

사진은 찍는 이의 생각이 담긴 이미지 … 기술 배우고 상상력 키우면 누구나 프로

  • 정주하 백제예술대학 교수·사진과

유채꽃을 남들과 똑같이 찍으렵니까?

유채꽃을 남들과 똑같이 찍으렵니까?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손영애 작 ‘어섬’(왼쪽). ‘결정적 순간’으로 잘 알려진 사진예술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작 ‘생 라자르 역 뒤에서’.

사진은 이제 우리에게 친숙한 매체다. 과거처럼 특정 부류만 비밀스럽게 향유하는 게 아니라 셔터를 누를 힘만 있으면 누구나 사진(또는 사진적 이미지)을 만들고 소비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80년대 거의 모든 가정에 카메라가 보급됐고, 최근에는 대다수 국민이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폰 카메라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언어와 마찬가지로 사진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거친 욕’이 되기도, ‘아름다운 시어(詩語)’가 되기도 한다. 사진 한 장은 ‘이미지’로 기능하기보다 의미를 주고받는 ‘언어’로 작동한다. 이미지를 넘어 의도를 담지(擔持)한 기호인 것이다. 때문에 사진기호를 읽고 쓰기 위한 학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한 교육기관은 매우 미비하다. 미술시간은 있지만 사진 이미지를 읽고 쓰는 일에 대한 교육은 전무하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은 그저 세상을 떠돌며 온갖 말을 주워담듯 사진을 배울 뿐이다. 사진적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 사진은 널리 알려진 것과 그 인기에 비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분야다. 잘 모르기 때문에 오해도 많다. 그중 가장 큰 오해는 사진이란 본 대로 찍힌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질문에 제대로 답하자면 먼저 ‘본다’는 게 무엇인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과연 사물을 볼 수 있을까?’ 늘 사물을 보아오고, 또 그에 의지해 사실을 ‘증명’해왔지만, 엄밀히 말하면 인간은 빛 없이는 사물을 볼 수 없다. 같은 사물도 빛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 빛은 반사되는 사물의 표면에 의해 색으로 인식된다. 그 반사된 빛이 동공을 지나 망막에 상을 맺으면 망막 뒤의 시(視)신경이 그 도치(倒置), 축소(縮小)된 이미지를 끌고 뇌 속에 상을 만들어 투영함으로써 우리는 사물을 인식하게 된다.

유채꽃을 남들과 똑같이 찍으렵니까?

좋은 사진에 대한 기준은 없다.
카메라의 기능을 이해하고, 특정 대상을 자신만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이렇듯 사물인식이란 단지 본 것의 형상적인 확인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과 관련돼 있다. 나아가 그 앎은 보는 것을 통제한다. 즉 본 대로 찍히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또는 아는 대로) 찍히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그 녀석이 꽤 괜찮은 놈이라고 봐”라는 말에서 ‘봐’는 ‘본다’는 시각적 의미보다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우리의 시각(視覺)과 카메라의 시(視, 당연히 카메라에는 각이 없다) 사이에는 엄정한 차이가 있다. 즉 우리는 ‘본 대로(인간적인 시각)’ 카메라로 ‘찍을(카메라의 시)’ 수 없다(다소 모호하게 들릴지 모르나 경험 많은 분들은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생각한다).

사진 한 장, ‘이미지’ 기능보다 주고받는 언어



물론 사진이 우리의 시각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카메라의 광학적, 기계적 조건을 가지고 렌즈를 통해 찍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카메라 메커니즘의 속성과 이를 통한 사진만의 ‘내적인 문법체계’가 있다. 카메라에는 셔터와 조리개라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 사진은 셔터를 누르는 속도에 따라 시간을 담아내고, 또 흐르는 시간을 정지시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찍는 순간 카메라에 움직임을 주면 찍히는 대상이 사라지거나 왜곡되기도 한다. 이는 마치 우리의 언어가 단지 그 문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통해 의미를 차별화하거나, 단어와 단어 사이를 붙이거나 떼어내 전혀 다른 의미의 단어와 문장으로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 순간포착으로 인지 밖의 모습을 잡아내거나 긴 시간 필름을 노출시켜 촬영함으로써 대상을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는 일도 가능하게 하는 것. 이것이 셔터의 기능이자 표현 방식이다.

유채꽃을 남들과 똑같이 찍으렵니까?

카메라가 널리 보급되면서 사진동호회도 늘고 있다.

또 하나는 조리개다. 보통 렌즈 사이에 붙어 있는 조리개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장치로 구멍의 크기가 척도가 된다. 렌즈를 통과한 빛이 필름에 상을 맺을 때 조리개를 열어놓는 정도는 그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친다. 큰 구멍을 통과한 빛은 얕고, 작은 구멍을 통과한 빛은 깊다. 이를 ‘피사계심도’라고 하는데, 이에 따라 사진 이미지가 매우 달라진다. 따라서 총명한 사진가는 이렇게 간단하지만 효과가 큰 ‘사진 문법’을 이용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한다. 이처럼 카메라 자체의 메커니즘도 단지 보이는 것을 찍는 구실뿐 아니라, 작가의 의도에 따라 사물을 왜곡하거나 변용시켜 다른 모습을 만들어버린다.

따라서 카메라 혹은 사진이 보이는 대로 찍어내는 도구라는 말은 오해다. 카메라는 화가의 붓이나 소설가의 펜처럼 언제든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충분히 감정과 상상력을 부여할 수 있는 도구인 것이다.

일부를 제외하면 사진을 만들고 소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진을 통해 특정 순간을 ‘기억으로 간직’하거나 그 순간을 ‘증명’하려 한다. 이때 그 시간을 간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사진의 ‘사적인 사용자’들이며, 증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공적인 지향점’을 가진 이들이다. 또한 간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미적 욕구’를 동반하지만, 증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드러냄’을 목표로 한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공히 자신들의 사진이 예술과는 거리가 멀다고 믿으며, 예술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애써 외면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예술에 대한 오해가 있다.

카메라는 감정과 상상력 부여할 수 있는 도구

예술은 사실 가늠이 불가능한 인간의 활동이다. 규정하기도 어렵지만 규정할 필요도 없다. 보통 예술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샀다. 그리고 그 ‘특정 부류’란 일반인과 달리 비정상적인 생활태도를 가진 ‘또라이’거나 타고난 능력이 있는 ‘천재’라고 여겨지곤 한다. 물론 이런 생각이 일부 맞기는 하다. 천성적으로 감성적인 사람이 당연히 사물을 더 예민하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타고남에 대한 문제는 예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술 역시 스포츠나 외모와 마찬가지로 조금 더 타고난 사람이 덜 타고난 사람보다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사진과 예술에 대한 오해가 일반인이 사진에 접근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하는 것이다.

앞에 설명한 (사진과 예술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난다면 사진은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매체다. 누구나 쉽게 작동원리를 익힐 수 있으며, 전문 인력의 도움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작업과 마찬가지로 ‘목적’을 설정하는 일이다. 과연 이것(사진)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사진이 ‘본 대로’가 아닌 ‘생각한 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그곳에 가기 전 상상하는 ‘즐거움/고통’을 만끽하면 좋을 듯싶다. 그리고 그 상상을 토대로 주어진 것을 그대로 보기보다는 ‘그렇게 보고자’ 하는 나름의 시선을 통해 접근하길 바란다. 예컨대 제주도에 유채꽃을 촬영하러 간다면, 현장에 가기 전 유채꽃을 어떤 모습으로 찍을지 생각하는 것이다. 유채꽃밭에 간 뒤에야 촬영할 것을 계획하면 이미 누군가 찍어 보여준 유채꽃 사진이 떠올라 그것을 복제하게 된다. 보는 것이 생각하는 것과 관련 있다면, 미리 생각하고 상상한 것을 보이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남이 덜 알아주더라도 최소한 누구의 것과 닮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게 더 기쁜 일 아닌가.

마지막으로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사진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돼야 한다. 사진은 예술일 뿐 아니라 기술이 반이다. 카메라의 기능적 측면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만 중요하다. 카메라를 신체 일부처럼 사용할 수 있을 때 사진 역시 자유로워진다. 카메라에 셀프타이머를 걸어놓고 셔터를 누른 뒤 타이머가 반쯤 돌아왔을 때 공중에 던져보는 건 어떨까. 카메라가 떨어지면서 의도하지 않은 앵글과 화면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뷰 파인더에 눈을 밀착하고 숨을 멈춘 후 조심스레 찍는 것만이 아닌, 카메라 자체가 우연히 만들어낸 것도 사진이다.

좋은 사진에 대한 기준은 없다. 다만 좋은 사진을 만들려면 특정 대상을 자신만의 것으로 바꾸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술을 습득하고 상상력을 기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주간동아 600호 (p106~108)

정주하 백제예술대학 교수·사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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