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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사자성어 전성시대

  • 이충민 웹카투니스트

짝퉁 사자성어 전성시대

짝퉁 사자성어 전성시대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중 차 핸들이 빠진 경우, 이틀 동안 굶다가 겨우 찾은 컵라면에 찬물을 부어버린 경우, 감기몸살로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동생이 사준 약을 먹었는데 그것이 설사약인 경우, 양다리 걸치다가 이름을 헷갈려 문자메시지를 바꿔 보낸 경우….

이럴 때 당신이라면 어떤 표현을 쓸까? 그냥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할까?

신세대들은 이럴 때 ‘대략난감’ ‘대략낭패’로 표현한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시트콤에서 등장인물들의 애칭으로 쓰인 ‘야동순재’ ‘OK해미’ ‘식신준하’ 같은 네 글자의 미학도 마찬가지다. 10대들에게 최고 지지를 받는 가수 동방신기 멤버들의 네 글자 이름은 또 어떤가! 게다가 요즘 광고 카피마다 빠지지 않는 정체 모를 사자성어, 각종 버라이어티 방송의 자막에서 난발되는 사자성어를 보라.

얼마 전 방영됐던 드라마 ‘궁’의 한 장면을 보자.

“네 편한 대로 이야기하여라.”



“물론 아직 열공해야 할 학생이라 대략난감이지만요~.”

“열공이라… 대략난감? 무슨 뜻의 사자성어인가?”

짝퉁 사자성어 전성시대
인터넷 시대의 또 다른 문화 코드

신세대 왕자비 채경과 기성세대 황후마마의 첫 대면을 그린 이 장면은 신세대와 구세대 간 소통의 단절을 여지없이 보여줘 화제가 됐다.

최근 몇 년 사이 ‘신조어’ ‘사이버 리플(댓글) 문화’가 빠르게 자리잡아가는 현상에 대해 사회 각계에서는 한글파괴, 언어파괴라며 우려를 표한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신세대의 말장난, 누리꾼(네티즌)들의 사이버 용어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이제 각종 신조어와 채팅용어는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신조어 중에서도 네 글자로 이뤄진 사자성어가 조명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이처럼 새롭게 등장한 사자성어를 쉽게 ‘짝퉁 사자성어’라 통칭하자. 마치 중국에서 넘어온 듯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 사자성어들은 신세대 문화를 대변하는 한 축이다.

고사성어에 익숙한 부모들인 기성세대와 신조어에 익숙한 신세대의 공감대 형성이 어려운 현시점에서 온 가족이 모여 시청할 수 있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신세대의 말과 어른들 말에 대한 공감이라는 컨셉트로 짜여진 세대공감 ‘올드 앤 뉴’다. 이 프로그램이 사랑받는 이유도 필자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맥락 때문일 것이다. 신세대와 기성세대의 공감 코드 중 하나가 바로 ‘짝퉁 사자성어’인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온 나라에 메아리쳤던 ‘대한민국’이라는 네 글자의 편안함과 익숙함도 이에 한몫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진화해가는 네 글자의 미학 ‘짝퉁 사자성어’의 인기는 어느덧 트렌드를 넘어 문화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필자도 그 문화를 연구하면서 ‘짝퉁 사자성어’를 만화로 풀어내려 세대공감과 세대간 허물없는 개그를 컨셉트로 한 ‘크림이의 대한민국 성공법칙88, 신(新)사자성어’를 출간하기도 했다.

필자는 웹에서 만화를 그리는 웹카투니스트다.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까닭에 ‘짝퉁 사자성어’ 문화를 두고 많은 연구를 해보았다. ‘웹툰’이라는 인터넷 만화에도 ‘짝퉁 사자성어’는 잇따라 등장한다. 예전에 화제가 됐던 ‘조삼모사 패러디’ 시리즈도 이런 틀에 놓여 높은 인기를 누렸다. ‘짝퉁 사자성어’는 단어만으로도 웃음을 주는 면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사자성어 풀이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다음 경우를 보자.

고진감래 = 고생을 진탕 하고 나면 감기몸살 온다

발본색원 = 발기는 본래 섹스의 근원이다

이심전심 = 이순자 마음이 전두환 마음

침소봉대 = 잠자리에서는 봉이 대접을 받는다

전라남도 = 홀딱 벗은 남자의 그림

요조숙녀 = 요강에 조용히 앉아서 잠이 든 여자

죽마고우 = 죽치고 마주 앉아 고스톱 치는 친구

삼고초려 = 쓰리고를 할 때는 초단을 조심하라

개인지도 = 개가 사람을 가르친다

조족지혈 = 조기축구회에 나가 족구하고 지랄하다 피 본다

임전무퇴 = 임금 앞에서는 침을 뱉어선 안 된다

군계일학 = 군대에서는 계급이 일단 학력보다 우선이다


인터넷 유머로 떠도는 이런 사자성어 풀이를 보면,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생활 속 단어로 정착하고 있는 ‘짝퉁 사자성어’ 영역이 앞으로는 훨씬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짝퉁 사자성어’를 바라보는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단순한 말장난과 신세대의 공감을 사려는 상업적 요소가 아니라,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또 다른 문화를 대변하는 코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그것이다. 아울러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 통로와 허브 구실을 하는 좋은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한다.

 
발본색원 삼고초려 전라남도
발기는 본래 섹스의 근원 쓰리고 할 때는 초단 조심 홀딱 벗은 남자의 그림


짝퉁 사자성어 전성시대




주간동아 600호 (p92~93)

이충민 웹카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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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94호

2021.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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