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0

2007.08.28

“인파이터 노무현, 아웃복서 김정일의 잽을 조심하라”

남북 정상 인물 비교 &정상회담 예상 관전평

  • 대담 : 손광주 북한전문 인터넷사이트 ‘데일리NK’ 편집인/ 최진 고려대 연구교수(행정학)·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 정리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7-08-20 18: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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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28~30일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방문으로 7년 만에 이뤄지는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초미의 관심사다. 6·15 남북 공동선언 정신을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것인가도 그렇거니와, 노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로 닮거나 지극히 상반된 인간적 특질이 정상회담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도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 ‘주간동아’는 두 전문가의 대담 형식을 빌려 남북한 통치 리더의 맞대면이 불러올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 편집자 -
    “인파이터 노무현, 아웃복서 김정일의 잽을 조심하라”

    최진 교수(왼쪽), 손광주 편집인.

    최= 먼저 두 정상의 출신과 성장 배경에서 변수가 도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노 대통령은 극빈환경에서 성장해 가난에 대한 탈출심리가 아주 강하다. 당연히 신분상승 욕구도 강해 험난한 정치판 생활을 거쳐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자신이 박대받아왔다는 피해의식이 있다. 반면 김 위원장은 줄곧 권력 최상층부에서 자라 지배우월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또한 노 대통령의 경우 성장과정에서 어머니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아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면이 강하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절대적 영향을 받은 김 위원장은 권위적인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때론 부러워해 점점 닮아가는 영웅동일시 현상을 보인다. 그는 또 6, 7세 때 남동생이 연못에 빠져 죽고 어머니가 병사(病死)한 경험에서 비롯된 트라우마(trauma)가 있다. 따라서 절대권력의 그늘에 가려진 채 계모 밑에서 자라난 과정에서 생긴 심리적 상처와 우울증이 그의 리더십을 연구하는 데 핵심 포인트다.

    손= 김 위원장이 북한사회에서 갖는 지위에 대해 정확히 규정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현재 ‘장군님’으로 불리고, 그것을 즐긴다. 전체주의 사회인 북한에선 개인이 전체의 이익을 대표한다. 그게 바로 수령이다. 김 위원장은 수령의 대리인이자 북한 사회·역사 발전의 유일한 동력이다. 이처럼 공산사회에서 수령은 전체 이익을 대표해 사회를 이끌어가는 존재라는 게 김 위원장의 리더십을 이해하는 데 핵심 포인트다.

    합의서 보면 봉건왕조 시대에 군주 알현하러 가는 모양새

    따라서 이번 회담의 의제가 사전에 정해지지 못한 것도 노 대통령이 아니라 김 위원장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당과 국가, 인민의 대표를 겸한 명실상부한 유일 통치자다. 이러니 그가 나중에 어떻게 바꿀지도 모르는데 회담 의제를 참모들이 먼저 만들어둘 수 없다. 성격적 면에서도 김 위원장은 ‘팔색조’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즉흥적이고 급하다.



    어쨌든 이번에 발표된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관한 남북합의서’만 봐도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찾아가 상봉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정상 대 정상은 동일한 지위에서 만나야 하는데, 이 합의서를 보면 마치 옛 봉건왕조 시대에 군주를 알현하러 가는 모양새가 됐다. 하지만 북한사회를 혼자 힘으로 이끄는 수령 대리인의 자격으로, 그것도 남한 대통령을 형식적으로 불러올려 회담을 갖는 만큼 그가 회담과정에서 어떤 실수를 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

    최= 김 위원장의 심리유형은 어린 시절의 정신적 충격,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 영웅심리, 엘리트주의, 우울증 등이 복합적으로 형성한 이른바 ‘외향적 사고형’이다. 칼 융의 심리유형 분류에 따르면 외향적 사고형의 특징은 매사에 단순명쾌하고 피아(彼我)가 분명하며, 호전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카리스마적이다. 리더십 면에선 선동가형 특질이 나타난다. 한마디로 자기현시성이 강한 극화적 성격이다. 즉 극과 극을 넘나들며 반전을 즐긴다. 선동가형은 합리성보다는 정치지향성, 창조성 등이 강하다. 이와 반대되는 리더십 유형이 행정가형인데, 꼼꼼하고 차분한 스타일인 김대중 전 대통령(DJ)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에 속한다.

    또한 김 위원장에겐 가부장적 카리스마가 있다. 권력을 아버지에게서 오래 대물림받으면서 북한 인민에게 자신이 아버지라는 의식을 심어줬다. 그가 강조하는 인덕정치도 지도자가 인민을 가족처럼 대하면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에게 인민은 자식인 셈이다.

    반권위주의 노 대통령 vs 가부장적 카리스마 김 위원장

    “인파이터 노무현, 아웃복서 김정일의 잽을 조심하라”
    반면 노 대통령은 반(反)권위주의적이다. 탈권위를 넘어 권위 그 자체를 전면 거부한다. 권위주의 해체론을 신봉하고 반카리스마적 태도를 취한다. 이런 두 정상의 극한 차이가 과연 이번 회담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가 관심거리다.

    두 정상에겐 비슷한 점도 있다. 둘 다 공격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다만 권투선수에 비유한다면 노 대통령은 집요하게 주먹을 휘두르는 인파이터지만, 김 위원장은 링을 빙빙 돌며 카운터펀치 한 방을 노리는 아웃복서다. 그가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한동안 잠적했다 갑자기 나타나곤 하는 행태만 봐도 그렇다. 인파이터 노 대통령에겐 이번 회담에서 자신과 공격 스타일이 전혀 다른 김 위원장과의 사이에서 어떤 조화를 이끌어낼 것인지가 또 다른 과제다.

    손= 김 위원장이 북한을 통치하면서 가장 중시하는 두 가지가 프로파간다와 정보다. 공산사회는 당 조직에서 출발했으므로 조직 자체가 서방사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김 위원장이 1964년 대학 졸업 직후 맡았던 분야도 문화예술 부문인 만큼, 그는 젊은 시절부터 40년 이상 프로파간다 측면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DJ는 이를 잘 몰라 헷갈렸던 적이 있다. DJ가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내렸을 당시 북한 인민들이 김 위원장에 대한 ‘결사옹위’를 부르짖자 DJ는 손님을 불러놓고 자기네 통치자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북한사회에서 장군님을 결사옹위하자는 것 자체가 바로 그 사회의 통치원리 중 하나인 프로파간다다.

    김 위원장은 또한 모든 정보를 장악한다. 그의 통치방식은 회의체 같은 시스템을 중시하지 않는다. 공산사회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공산당 정치국인데, 지금은 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다 죽고 없어 김 위원장 혼자뿐이다. 게다가 1980년 이후 지금까지 당대회 한번 연 적이 없다. 이는 김 위원장의 리더십 스타일이 은밀한 밀실정치를 좋아하고, 그것을 위해 정보를 완전히 장악함을 방증한다. 그는 이미 노 대통령에 관한 모든 정보를 파악했을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그는 그 정보들을 적절히 활용할 공산이 크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최= 김 위원장 리더십의 두 가지 큰 특징은 의외성과 대담성이다. 이번 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조심해야 할 점도 이것들이다. 변칙적인 아웃복서 스타일인 김 위원장은 권투선수보다는 이종격투기 선수에 가깝다.

    “속마음 떠보기·벼랑끝 전략 휘말리면 양극단 결과 우려”

    그의 이런 리더십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발현된다. 하나는 ‘의표 찌르기’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일정을 하루 연기했다가 갑자기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공항으로 DJ 영접을 나간 게 좋은 예다. 이번에도 아마 남한정부가 마련한 시나리오를 깨뜨리기 위한 의표 찌르기를 시도할 것이다.

    둘째는 ‘속마음 떠보기’다. 2000년 회담 때 김 위원장이 DJ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가면서 혁명열사묘를 참배하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이번에도 분명 노 대통령의 의중을 떠보는 질문을 불쑥불쑥 던질 것이다.

    셋째는 ‘벼랑끝 전략’인데, 이에 대한 대응이 상대로선 참으로 곤혹스러울 수 있다. 즉 큰 건을 하나 툭 던지면서 받아들일 것이냐 말 것이냐 묻는 건데, 노 대통령의 경우 치밀하고 용의주도하지 못한 스타일이어서 자칫 양극단의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좋다, 그러자’며 대범하게 선의의 결과물을 낳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두 정상 모두 감성적인 면이 강해 아주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번 회담에서 노 대통령은 용의주도한 행정가형으로 변신해야 한다.

    “인파이터 노무현, 아웃복서 김정일의 잽을 조심하라”
    손= 김 위원장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에서 물러설 줄 모른다. 그 점을 감안하면, 이번 회담의 의전 면에서는 노 대통령이 2000년의 DJ보다는 한 단계 높은 영접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미 김 위원장은 과거 10년간 민족공조 노선을 유지하면서 남한을 지렛대 삼아 대미관계 등에서 많은 이득을 누렸다. 그의 입장에서 DJ는 이미 용도폐기된 인물이다. 지난해 경의선 열차로 방북하고 싶다고 한 DJ의 청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보라. 그에겐 지금 노 대통령이 더 중요하다.

    최= 이번 회담에서 돌발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지 따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김 위원장도 이번 회담의 전략을 짜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스트레스 해소법도 리더십 유형에 따라 차이가 있다. 김 위원장은 자동차 운전, 모터보트 조종, 사격, 승마 등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따라서 그가 회담 중 보이는 사인 하나하나에 대한 사전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활짝 웃는다거나 느닷없이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면, 그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도록 그의 사소한 습관, 스트레스 시의 반응 등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손= 돌발상황이 국가적 손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번 회담의 의제는 6·15 공동선언의 틀에 기초해 정하도록 돼 있다. 6·15 공동선언 제4항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경협)인데, 사실 이는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서 돌발상황이 생길 여지가 없지 않다. 다시 말하면 두 정상이 서로의 말을 각기 달리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실례가 있다. 김 위원장이 2001년 24일간 러시아를 방문했는데, 당시 자신을 수행한 러시아 측 전권대사에게 “난 DJ의 말을 80%도 채 못 알아들었다”고 했다. 그런 사태가 이번 회담에서도 생기지 말란 법이 없다. 남북간에 하나의 단어가 서로 다른 의미를 내포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6·15 공동선언에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명시했지만, 노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앞두고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을 강조했다. 여기에서도 남북간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북한 입장에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은 남한의 부(富)를 북한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남한 입장에서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은 북한경제의 개방을 의미하는 면이 강하다. 때문에 경협 부분은 반드시 상호간에 오해가 없도록 부칙을 만들어 명문화해야 한다고 본다.

    “뒷거래나 정치적 빅딜은 훗날 부메랑 될 수도”

    “인파이터 노무현, 아웃복서 김정일의 잽을 조심하라”
    최= 두 정상의 화법 차이에서도 돌발상황이 생길 수 있다. 김 위원장은 20여 년간 후계자 수업을 받으며 최고 통치자에 준하는 전략과 전술을 익혔다. 한마디로 치고 빠지는 데 능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정치지향적이고 노 대통령 또한 그렇다. 그래서 둘 다 단문 위주의 화법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럴 경우 서로 해석 차이가 크게 날 수 있으므로 정치적 발언엔 신중해야 할 것이다.

    손= 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과 전략적·전술적 게임을 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처음부터 노 대통령 스스로 자신 있는 주제를 올리라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예컨대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북한도 지켜라, 북한을 중국처럼 개혁·개방하면 북한정권도 안정되고 인민도 살고 국제사회도 지원한다, 국군포로·납북자·납치자 문제는 국제사회가 인정하지 않으니 빨리 해결하라’는 식의 정공법이 김 위원장에겐 먹힌다. 왜냐하면 자신은 수령의 대리인이므로 대내외적으로 속 좁은 인간으로 비쳐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최=이번 회담에 앞서 노 대통령에게 세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첫째, 정도(正道)를 가라는 것이다. 뒷거래나 정치적 빅딜이 이뤄질 경우 훗날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둘째, 실용주의 논리에 입각해 회담에 임하라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이 가장 바라는 건 편안하게 잘 사는 것이다. 획기적인 경협 프로젝트 등이 나온다면 국민의 지지도 높아질 것이다. 셋째, 노 대통령 본인의 리더십을 잘 연구해두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리더십을 아무리 파악해둔다 해도 막상 현장 분위기에 휩쓸리면 자칫 감정적이거나 즉흥적인 대응을 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꼼꼼하고 치밀한 DJ도 ‘김정일 파일’을 충분히 숙지하고 갔지만 현장에서의 수많은 변화로 인해 협상 주도권을 놓쳤다는 해석이 있다.

    손= 마지막으로 김 위원장이 왜 이번 회담을 역제의했는지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한 5가지 이유를 말할까 한다. 첫째는 북핵문제다. 이번 회담에서 이 부분이 거론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김 위원장은 핵문제를 거론함으로써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국제사회에서 재확인받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미국의 부시 대통령에게까지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있을 것이다.

    둘째는 북한 내부에서 김 위원장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다. 남한 대통령이 자기를 만나러 온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내부 결속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 셋째, 국제사회에서 김 위원장 자신의 몸값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실패한 나라’인 북한에 ‘성공한 나라’의 대통령이 찾아간다는 컨셉트인 셈이다. 넷째는 남한의 경제지원이다. 지난 10년간의 햇볕정책에서 남한의 용도는 언제나 경제지원용이었다.

    다섯째, 남한 대선을 맞아 ‘평화의 거품’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으로선 설사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그에 대한 대처전략을 미리부터 강구하고 있을 터이므로 어느 쪽이 집권하든 큰 영향은 받지 않겠지만, 평화 분위기 조성에 대한 평가는 그에게 분명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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