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김윤규 깜짝카드로 복귀 임박?

퇴진 2년 만에 대북사업 물밑 움직임 … 3월엔 평양 방문 ‘亞太’ 부회장과 회동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김윤규 깜짝카드로 복귀 임박?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이 성사 단계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은 북한을 방문해 2005년 8월 시범관광 이후 제자리걸음인 개성 관광을 비롯해 대북사업을 논의할 예정이다. 현 회장이 이번에 방북하게 된다면 2005년 7월 김윤규 당시 현대아산 부회장과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백두산, 개성 관광에 합의한 지 2년 만의 일이다. 북한과 현대의 관계는 최근 2년 동안 껄끄러웠다. 김 전 부회장의 퇴진이 그 계기였다.

현정은 회장 訪北 성사 단계

2005년 8월19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적선동 현대빌딩. 김 전 부회장의 사직서는 벌써부터 도착해 있었다. 김 전 부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배제한다는 결정을 내린 이날 이사회는 20여 분 만에 끝났다. 고(故) 정몽헌 회장이 “누구보다 진실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자식”이라고 표현한 김 전 부회장이 현대에서 쫓겨난 것이다. 대북사업과 관련한 개인 비리 혐의, 현 회장과의 갈등, 현대 내 헤게모니 다툼 등이 낙마 이유였다.

그로부터 10일 뒤 평양골프장(평남 강서군 태성리)에서 평양여자오픈골프대회(8월27~29일)가 열렸다. ‘에스코트’에 나선 이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 부위원장의 ‘남측 손님’에 대한 ‘골프장 접대’는 극진했다. 이 부위원장이 현대를 배제하고 김기병 롯데관광 회장에게 개성 관광을 제의한 것은 이날 평양골프장에서다. 이 부위원장의 제안을 현장에서 들은 C 의원은 “이 부위원장이 롯데관광에 개성뿐 아니라 평양 관광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어긋난 북한과 현대의 관계는 지금까지 정상화되지 않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높이 평가하는 김윤규 부회장을 어떻게 내칠 수 있느냐”는 얘기가 현대 측에 전달됐고, 북측은 “김 부회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며 현대를 압박했다. 그 이후 현대의 개성 관광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북측은 “현대 상층부가 내부의 야심가와 음모가들의 모략에 놀아나 우리의 특전 특혜에 배은망덕하고, 선임자들이 우리와 맺은 오랜 믿음과 우의를 저버렸다”며 현대를 공박하기도 했다.



김 전 부회장이 누구던가. 1989년 고 정주영 회장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이후 16년 동안 대북사업을 맡은 남북경협의 ‘전설’이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위원장과도 친분이 닿는다는 자타 공인 한국 최고의 ‘북한통’이다. 그는 “김윤규가 입을 열면 아태 인사들마저 다친다”는 말이 나돌 만큼 영향력이 컸다. 그는 확인된 것만도 다섯 차례나 김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북한은 김 전 부회장을 크게 신뢰했으며 또 의존했다고 전해진다. 김 국방위원장과 현 회장의 면담도 김 전 부회장이 없었다면 이뤄지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김 전 부회장이 다시 움직이는 모습이다. 정중동(靜中動)이다. 현대아산에서 불명예 퇴진한 지 3년 만이다. 그는 한동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서울지역 부의장으로만 활동했다. 기지개를 켠 김 전 부회장의 베이스캠프는 지난해 8월 설립한 ㈜아천글로벌코퍼레이션. 이 회사는 무역, 건설, 여행, 관광개발, 골프장, 여객, 물류, 공원묘지, 석유·가스 판매, 부동산 개발, 광고 대행을 사업 목적으로 등록했다. 육재희 전 현대아산 상무가 대표이사다. 그는 김 전 부회장과 함께 현대아산을 나왔다.

“김 전 부회장과 육 전 상무는 직장 상사와 아랫사람의 관계라기보다 일종의 ‘동지적 관계’였다.”(현대아산 한 관계자)

김 전 부회장의 아들 진오(36) 씨도 등기이사로 참여한 이 회사의 주소지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S오피스텔 1313호. 김 전 부회장과 육 전 상무는 이 사무실로 6월 중순까지 출근했다. 사무실은 별다른 간판조차 없는 30평짜리 평범한 오피스텔. 이 건물의 한 관계자는 “김 전 부회장이 매일 출근한 적도 있다. 직원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최근 사무실을 옮겼다”고 전했다. 몇몇 기자들이 찾아오자 사무실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5월29일 김 전 부회장은 아내와 함께 떡을 사들고 자신의 팬클럽인 ‘김윤규를 사랑하는 모임’ 청소년 배움터를 찾았다. 이날 그의 모습은 매우 밝았다. 그는 학생들에게 “배움터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자”면서 ‘김사모 청소년 배움터 장학금’도 설립했다. 최근 김 전 부회장의 분위기가 이날처럼 무척 밝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일각에선 북한과 조율된 ‘깜짝 카드’를 들고 화려하게 재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는 3월20~24일 ㈜아천글로벌코퍼레이션 대표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최승철 아태 부위원장을 만났다. 그때 이 회사의 평양 및 개성사무소 개설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부위원장은 이해찬 전 총리, 손학규 전 경기지사, 김혁규 의원 등 범여권 대선주자를 잇따라 평양으로 불러들인 인물로, 남북관계에서 현재 북한 내 최고실력자로 통한다. 그가 대선 국면에서 정치적 거래 가능성을 탐색하거나 신북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평양 및 개성사무소 개설 논의

북한으로 가는 길은 ‘아태’로 통한다. 인도적 지원이든 경협이든 아태를 거쳐야 한다. 김 전 부회장이 이런 아태의 실세와 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최 부위원장은 김 전 부회장이 활발하게 일할 때 카운터파트이던 고(故) 김용순 당 중앙위 대남담당비서, 고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고 임동옥 통전부 부부장의 ‘아랫사람’이었다. 김 전 부회장은 특히 임 전 부부장과 가까웠는데, 그의 역할을 지금 최 부위원장이 하고 있는 것이다.

“공적 업무를 통해 취득한 자산을 김 전 부회장은 북쪽 인맥을 쌓는 데 많이 썼다. 그 사람들이 ‘나 몰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국책연구기관 한 관계자)

그러나 김 전 부회장이 추진 중인 것으로 드러난 사업은 그의 커리어를 감안하면 보잘것없다. ㈜아천글로벌코퍼레이션은 육 전 상무가 북한을 방문해 협의를 벌인 뒤 6월21일 북측으로부터 동해선 육로를 통해 철갑상어 531kg을 반입했다. 김 전 부회장의 복귀 첫 사업이라는 점에서 의미는 있지만, 북한의 수산물 반입은 중소 무역업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천글로벌코퍼레이션은 개성공단 대지 1400㎡(4억1500만원)도 낙찰받았는데, 쓰임새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김 전 부회장의 움직임 중 가장 큰 것은 북한 노동자의 해외 인력송출 사업이다. 두바이 등으로의 북한 인력 송출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력 송출을 위해 북측과 공동투자를 통한 합영회사 설립을 준비 중이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그러나 이들 사업은 김 전 부회장이 주도적으로 ‘일을 한다’기보다 북한에서 ‘일을 받아 온다’는 표현이 정확하다는 지적이다.

육 전 상무도 “우리 회사가 지금 밖으로 말할 만큼 큰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아직 작은 회사다. 현재까지는 언론에 드러내놓고 발표할 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사업과 관련한 구체적인 질문엔 “확인해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북측 인맥 회의적 평가도

일각에선 김 전 부회장의 북측 인맥과 관련해 회의적인 평가도 나온다. 정주영-정몽헌 회장과 일할 때 친분을 터놓은 사람 가운데 최 부위원장 정도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한 대북소식통은 “최 부위원장과 북한 모래 반입 사업도 논의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최 부위원장이 김 전 부회장에게 이런저런 사업을 주는 것은 현대와의 협상에서 실리를 챙기기 위한 레버리지(지렛대)로 그를 활용하려는 측면도 있는 듯하다”고 주장했다.

대북전문가들은 대체로 ㈜아천글로벌코퍼레이션이 단·중기적으로 현대의 경쟁 상대가 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남북경협이 활성화할 경우 자문과 중개 업무에선 경험을 바탕으로 일할 수 있겠지만, ‘큰 사업’을 맡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 주요 대북사업의 주체는 여전히 현대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김 전 부회장과 현장에서 충돌할 일은 없으리라 본다”면서 “중동으로 북한 노동자를 보내는 일을 주로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아태는 경협에 ‘목말라’하면서도 김 전 부회장 퇴진 이후 ‘경협의 동지’인 현대를 차갑게 대했다. 그러나 현 회장의 방북이 조만간 이뤄지고 가시적인 성과가 나온다면 김 전 부회장과 아태의 협력은 옛 의리를 지키는 수준에서만 이뤄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물론 현대에 대한 북측의 관심이 뚝 떨어졌다는 관측도 있다.

김 전 부회장은 현대가(家)의 마지막 가신(家臣)이다. 그는 ‘근면’이 최고의 덕목이던 ‘정주영의 현대’에서 특히 근면했다. ‘워크홀릭 김윤규’가 다시 남북경협의 주역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을까.



주간동아 2007.07.24 595호 (p26~28)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