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9

2007.06.12

호주 미혼모 학교 눈에 띄네

파라왜스트 학교 남다른 배려 … 학비 면제, 무료 기술교육으로 삶 의욕 키워

  • 애들레이드=최용진 jin0070428@hanmail.net

    입력2007-06-07 13: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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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미혼모 학교 눈에 띄네

    파라왜스트 성인학교 졸업생인 미혼모 보니와 그녀의 아이들.

    “열다섯 살 생일파티를 한 뒤 제가 임신한 걸 알았어요. 당시 전 중학생이었고, 사귀던 애는 같은 학교 3학년이었어죠.”(보니)

    “중학교 들어가자마자 마약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남자들을 여러 명 사귀었죠. 전 정말 세상 무서운 줄 몰랐어요. 그리고 열일곱 살 때 처음 임신했어요.”(나오미)

    최근 만난 보니(26)와 나오미(32)는 10대에 첫아이를 낳은 미혼모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호주에서도 미혼모에 대한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이들은 친구들의 ‘특별한 시선’이 부담스러워 학교 공부를 포기하고, 아이를 데리고 슈퍼마켓에 갈 때마다 “애엄마가 너무 어린 거 아냐?”라는 수군거림에 시달린다. 한창 공부하는 친구들과 달리 아이를 키워야 했던 보니와 나오미는 처지를 비관하다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고, 심지어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교내 보육원도 운영 공부 도와

    하지만 ‘파라왜스트 성인학교’를 만난 이후 보니와 나오미의 인생은 달라졌다. 1992년 설립된 이 학교는 임신과 출산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 미혼모를 무료로 공부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 유용한 각종 기술교육-미용, 요리, 마사지, 재단 등-까지 무료로 제공해 10대 미혼모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파라왜스트의 교육프로그램은 매우 체계적이어서 미혼모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보고 배울 점이 많다. 먼저 이 학교는 열다섯 살 미만 미혼모들에게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나서 육아와 요리 등 생활지식을 가르친다. 필요에 따라서는 산후보조사가 미혼모 집에 직접 가서 미혼모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아기를 돌봐준다.

    호주 미혼모들은 상당수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 점을 고려해 파라왜스트는 학비를 전액 면제해준다. 또한 세상의 변화에 처지지 않도록 집에서 인터넷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파라왜스트는 캠퍼스에 보육원까지 갖추고 있다. 교내 보육원은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미혼모 자녀를 맡아준다.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는 비용은 하루에 800원꼴. 파라왜스트 관계자는 “미혼모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최소한의 이용료를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라왜스트의 서비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경제형편이 어려운 미혼모들은 대체로 시내 외곽에 사는데, 이들에게는 시내 학교까지 타고 다닐 자동차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처지의 미혼모들을 위해 파라왜스트는 스쿨버스를 운행한다. 미혼모 학생들이 교대로 운전하는 스쿨버스는 파라왜스트 학생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다른 주에서도 ‘벤치마킹’

    호주 미혼모 학교 눈에 띄네

    학교 내 보육원에 모인 교사와 미혼모 학생들.

    현재 파라왜스트에는 70여 명의 미혼모와 미혼부들-최근 아기를 혼자 키우는 10대 소년들이 증가하는 추세다-이 공부하고 있다. 이들의 학업성취 욕구는 매우 높다. 입학생의 90% 이상이 정규 교육과정을 모두 이수할 정도다. 파라왜스트는 좀더 전문적인 교과과정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 기술전문대나 일반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입시반도 따로 운영한다. 지난해 졸업생 중 5명이 전문대에, 2명이 일반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사회적 소외를 경험하는 미혼모들에게 이처럼 세심하고 자상한 맞춤 교육을 제공하는 파라왜스트. 이 학교의 책임자 앤 토머스(53) 씨는 “미혼모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교육이 가장 필요하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나오미는 파라왜스트 학교에서 정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뒤 애들레이드대학에서 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파라왜스트에서 미혼모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열일곱 살 때 출산한 뒤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파라왜스트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삶의 의욕을 찾았고, 못다 한 공부까지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역시 파라왜스트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모교의 교사가 된 스테이시(26)도 “어린 나이에 임신했을 때 친구들이 모두 떠나 외로웠지만 파라왜스트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려움을 나누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파라왜스트의 성공은 호주에서도 귀감이 된다. 호주 정부는 다른 주에도 이와 같은 시스템을 갖춘 미혼모 학교를 세울 계획이다. 호주는 현재 연방정부 차원에서 미혼모 교육비를 전액 지원하고 매달 100만원의 생활비까지 지원해주고 있다. 파라왜스트의 성공에 한국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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