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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헤매는 BDA(방코델타 아시아) 북한자금 해법

北 “금융제재 끝장내라” vs 美 “우선 BDA 해결하고”… 송금 방법 지루한 줄다리기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팀 기자 shamora@donga.com

미궁 속 헤매는 BDA(방코델타 아시아) 북한자금 해법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난관.’ 장밋빛 찬사 속에서 시작된 2·13 합의의 발목을 잡고 있는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를 정의하는 한마디다. 언론과 당국자들은 이 문제를 두고 “곧 해결된다. 마지막 고비를 넘었다”는 분석을 쏟아냈지만, 지난 석 달 동안 엉킨 상황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복잡해지는 양상을 보였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실타래는 어디부터 꼬였을까. 국제정치와 국제금융, 각국의 행정 관할권 문제와 국가적 자존심, 외환거래의 시스템 문제가 얽혀 있는 이번 문제의 본질을 해석하는 일은 사뭇 복잡해 보인다. 지겹도록 이어진 기사와 분석으로 독자들은 물론 기자들조차도 진력이 날 지경이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돌아보면 도대체 BDA의 문제가 무엇이고, 여기에 관련된 각국의 속내는 무엇이며,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를 꿰뚫어볼 수 있는 맥락이 의외로 쉽게 눈에 들어온다.

미궁 속 헤매는 BDA(방코델타 아시아) 북한자금 해법

1_ 3월19일 BDA 문제 해결방안에 대해 북한 조선무역은행 측과 협상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갖는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부차관보(왼쪽)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 2_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건물.

일단 알고 있는 사실부터 정리해보자. BDA 문제는 2005년 9월 미국 재무부가 관보를 통해 BDA를 ‘돈세탁 우려 은행’으로 고시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연방수사국(FBI)과 법무부가 4년여 동안 진행한 ‘로열 참 앤드 스모킹 드래건(Royal Charm and Smoking Dragon)’ 작전의 결과다. 엄밀히 말하면 BDA는 중국 마카오 특별행정구역에 속한 은행이므로, 미국은 ‘남의 나라’다. BDA에 행정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기관은 마카오 행정청이고, 간접적으로는 한 단계 위에 있는 중국 정부뿐이다. 공식적으로 미국 정부는 BDA 측에 보유 중인 북한 계좌를 동결하라 마라 할 권한이 없는 것이다.

2005년 당시 미 재무부가 고시한 내용은 자국의 금융기관들에게 “이 은행은 북한에 의해 위조지폐를 제작·유통시키는 불법거래 및 돈세탁에 이용된 혐의가 있으므로 함부로 거래하지 말라”는 공고 조치였다. 그러나 세계 국제금융을 지배하는 미국의 이러한 조치는 곧 BDA의 신용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고, 미국뿐 아니라 서방권 은행 전체가 북한이나 BDA와의 금융거래에 난색을 표하기 시작했다. 초기만 해도 미국의 움직임을 과소평가했던 마카오 행정청은 결국 BDA에 북한 관련 계좌를 동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곧바로 BDA의 경영관리와 구조조정에 나섰다.

북미 양측 합의 관련 당사자들 순진한 기대



이후 오랫동안 북한이 6자회담을 통한 핵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이 문제의 해결을 내걸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성렬 유엔주재 차석대사 등 북한 측 관계자들은 여러 차례 ‘비명’을 질러댔고, 미국 내 강경파는 “드디어 북한의 ‘약한 고리’를 찾았다”며 환호성을 올렸다. 속이 탄 한국 정부 역시 정상회담에서부터 실무자급 대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채널을 통해 미국 측에 “(돈세탁에 이용됐다는) 비합법 계좌의 자금은 놔두더라도 합법자금은 풀어주자”는 제안을 거듭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불법자금 거래 문제는 법무부와 재무부 소관이므로 국무부가 담당하는 6자회담과는 별개”라며 타협할 수 없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국제범죄에 대처하는 미국의 원칙에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궁 속 헤매는 BDA(방코델타 아시아) 북한자금 해법

3월16일 미 재무부의 돈세탁 금융기관 지정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BDA 최고경영자 스탠리 아우 회장.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패배 이후 백악관의 대북정책은 급선회했고, 이후 1월 베를린에서 열린 북미 양자회동, 2월 열린 6자회담 등을 통해 미국 측은 BDA 문제를 적극 해결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6자회담에서 결론이 나온 지 한 달 안에 미국은 BDA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그로부터 한 달 안에 북한은 영변 원자로의 국제원자력기구 사찰 등 이른바 ‘초기 조치’를 취한다고 합의했다. 관련 당사자들은 이 합의로 모든 것이 곧 풀리리라 기대했지만, 얼마 뒤 이는 순진한 기대였음이 확인됐다.

애초 미국이 취한 ‘불법거래 연루 혐의 고시’가 출발점이었음을 돌이켜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미국이 이를 철회하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해결 방안이 논의된 이후 이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 재무부가 다시 관보를 통해 “심증은 있으되 물증이 없다”는 형식으로 2005년 고시를 철회하면 BDA는 정상화되고 북한 계좌도 풀리므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행정 조치로 자국 은행 하나가 풍비박산나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중국이 입어야 했던 ‘자존심의 상처’가 깔려 있다. 기분이 나쁘다는 뜻이다.

반면 이것은 미국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해결 방식이었다. 애초 위폐 거래에 연루된 불법자금 문제를 이용해 북한을 압박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미 중앙정보국(CIA)과 국무부 군축국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실제 ‘총대’를 메고 이를 조사한 것은 법무부였고, 관보를 통해 고시한 것은 재무부였다. 이제 와서 상황이 달라졌으니 2005년 조치를 뒤집으라는 것은 재무부와 법무부로서는 모욕에 가까운 처사다. 객관적인 사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단순히 북한과 중국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법 집행 조치를 철회한다면 두고두고 비웃음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월 베를린 회동이나 2월 6자회담에서 “BDA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할 무렵만 해도, 미 국무부는 이러한 어려움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알았다면 그리 쉽게 약속해줄 리 없었다는 것. 따라서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중심으로 한 국무부 실무진과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이때부터 ‘근본 조치 철회 없이 BDA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짜내는 데 골몰한다. 그렇게 해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는 과정, 그리고 북한이나 중국이 그 하나하나에 대해 ‘불충분한 조치’라며 거부하는 일의 반복이 석 달간 진행된 일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국제금융망 문제’

미국 측이 제시한 첫 번째 아이디어는 3월19일 북한과 미국이 이 문제를 두고 개최한 실무자 회의에서 구체화됐다. BDA에 동결된 자금 2500만 달러를 베이징의 중국은행(Bank of China) 내 북한 계좌로 송금하고, 북한은 이 자금을 인도적 목적에 사용하기로 약속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가뜩이나 상해 있던 중국의 자존심을 더욱 자극했다. 이미 뉴욕 증시에 상장된 중국은행은 자신의 국제적 신용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자금 중개에 관여할 수 없다면서 난색을 표했고, 합의 과정에서 배제됐던 중국 정부는 중국은행에 이를 강요할 수 없다며 버텼다.

더욱이 3월21일 북한이 BDA에 제출한 52개 계좌송금 신청서는 한 사람이 작성한 한 장짜리였다. BDA는 계좌 명의자나 합법적 권리 승계자 명의의 신청서 없이는 송금이 불가능하다고 거절했다. 이는 ‘52개 계좌 2500만 달러’라는 자금명세 가운데 평양 당국이 사전에 알지 못했던 계좌가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파악하고 있던 공식 계좌 외에 13개에 달했던 이른바 ‘비자금 계좌’에 놀란 조선노동당 39호실은 계좌를 관리하고 있던 마카오 조광무역 책임자들을 소환하는 등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이 무렵 조사과정에서 박자병 당시 조광무역 총지배인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북한이 신청서 한 장으로 52개 계좌 송금을 요구하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을 시도한 이유는 ‘조사 시간 벌기’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첫 번째 아이디어가 수포로 돌아간 후 미국 측이 제시한 두 번째 아이디어는 4월10일 미 재무부와 마카오 행정청이 선언한 ‘동결 완전 해제’다. 이로써 북한은 어느 때나 예금을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게 됐고, 이것으로 자신은 할 일을 다했다는 게 미국 측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는 ‘현금 인출’만을 가능케 할 뿐 송금을 중개할 은행을 섭외하지는 않은 조치였다.

이러한 미국의 조치는 BDA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 2500만 달러가 묶여 있다는 그간의 인식과 맥이 닿아 있다. 이 자금은 김 위원장이 측근들의 충성 관리 차원에서 나눠주는 벤츠 승용차나 양주 등 선물을 구입할 돈이었고, 2005년 이후 계좌가 동결됨에 따라 김 위원장이 체제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미국 측 정보 당국자들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그러므로 이 돈만 꺼내가게 해주면 북한은 만족하고 초기 조치에 임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BDA에 대한 북한의 실질적인 이해관계는 전혀 달랐다. 단순히 2500만 달러라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각국 은행이 북한과의 국제금융 거래를 꺼리면서 대외결제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게 국제금융 파트에 종사했던 탈북 인사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즉 2500만 달러를 현찰로 인출하는 것은, 북한 입장에서 보면 이 돈을 다시 국제금융망을 통해 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바뀌지 않고서는 큰 의미가 없다(물론 4월 초까지만 해도 이를 명확하게 인식한 사람은 한국과 미국 어디에도 없었다).

이 때문에 북한은 현금 인출을 거부하며 ‘미국 내 은행’을 통한 송금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제금융망을 이용한 달러화 대외결제가 가능하려면, 근본적으로 그 연계망의 연쇄고리 어딘가에 미국 은행이 있어야 하는 것이 국제금융망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라리 미국 은행이 자금 중개를 담당하면 2500만 달러의 돈이 안정적으로 대외결제에 사용할 수 있는 ‘전신환’이 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4월10일 조치 당시 미국이 북한의 이런 속내를 몰랐는지에 대해서는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리지만, ‘혹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반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국제금융망이 문제’라는 북한의 판단 역시 2·13 합의 당시부터 명확했다기보다 이후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진화’해왔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분석이다. 한국 정부의 경우, BDA 문제가 국제금융망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한 것은 4월 이후다. 청와대 안보실의 관련 태스크포스(Task Force, TF)에 재정경제부 관계자가 참석하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부터다.

결국 5월 중순 미 국무부는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국 내 대형 은행인 와코비아를 섭외하기에 이른다. 와코비아 은행은 그 대가로 ‘문제삼지 않겠다’는 재무부의 면책각서와 함께 자신의 ‘장래’를 위한 ‘정책적 배려’까지 요구했다는 후문. 그러나 국무부의 이런 움직임에 재무부와 법무부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와코비아 은행을 통한 송금이 애국법 311조에 규정된 대북 금융제재의 제한을 뛰어넘는 ‘초법적 조치’라는 것이다.

국무부 주도 해법 잇따라 좌초

결국 논의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부담을 느낀 와코비아 은행은 5월 하순 최종 거절의사를 국무부에 통보했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한국과 중국에 관련 사실을 통보한 뒤 협조를 요청했다. “수일 안에 풀릴 것”이라던 5월14일 힐 차관보의 발언과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는 5월26일 송민순 외교장관 발언의 간극은 이 때문에 생긴 것이다. 다 된 것처럼 보이던 국무부 주도의 해결 방안이 다시 한 번 좌초한 과정이다.

이렇듯 지난 석 달간 BDA 문제는 ‘진화’했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는 방향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 자체가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처음에는 ‘2500만 달러만 꺼낼 수 있게 해주면 된다’던 관련국들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고, 특히 미 국무부는 이 과정에서 큰 상처를 입었다. 모든 당사국들이 ‘국제금융망을 통한 송금’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결론에 동의하게 된 이후부터는 ‘총대’를 멜 누군가를 찾는 작업이 난항에 부딪혔다.

더욱이 이 ‘진화’의 끝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2500만 달러가 어떤 식으로든 대외결제가 가능한 전신환 으로 송금된다 해도 북한의 다른 대외결제가 2005년 미국 고시에 의해 제한받는 현 상황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 ‘국제금융망의 복귀를 통한 대외결제의 제한 철폐’ 또는 이를 통한 ‘금융제재의 사실상 종료’를 최종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평양이 2500만 달러가 해결된다고 해서 만족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물론 1월 베를린 회동이나 2·13 합의에서의 타협안이 ‘BDA 문제의 해결’이었으므로, 2500만 달러의 송금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으로 미국 측의 의무는 끝났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지난 석 달간 벌어진 줄다리기는 북한 측의 요구에 미국 입장이 끊임없이 뒤로 밀리는 형국이다. 2·13 합의 이전에는 미국이 버티고 북한이 매달리는 식이었지만, 이후에는 북한이 버티고 미국이 매달리는 모양새가 이어지고 있다. 갑과 을이 뒤바뀐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2005년 조치의 실질적 무효화를 통한 자유로운 국제금융망 활용 보장’을 내걸 경우 코너에 몰려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는 미 국무부가 이를 단호히 거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5월 말 현재 테이블 에 올려진 해결 방안은 크게 세 갈래다. 먼저 BDA를 다른 은행과 합병함으로써 BDA 자체를 ‘세탁’해 2005년 미국 조치를 사실상 무효화하는 방안이 있고, 한국의 수출입 은행 등 자금을 중개할 별도 은행을 물색하는 방안, 마지막으로 2005년 9월 재무부 고시와 그 연장선상에 있는 3월 ‘돈세탁 금융기관 지정’ 고시를 철회하는 방안이 있다.

BDA는 꼬마 악마에 불과

전자는 금융기관이 합병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을 뿐 아니라, 자국 금융기관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미국의 조치가 달갑지 않은 중국의 거부감이 문제로 남는다. 당초 거론되다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은 바 있는 수출입 은행 중개 방안은 와코비아 건이 좌절하면서 다시 테이블 위로 올라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는 ‘미국 은행의 중개가 있어야 국제금융망을 통한 송금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북한 측 요구와 거리가 있을뿐더러, 한국 국내 여론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힐 차관보는 5월28일 “BDA 해결에 시간이 걸리니 일단 우리 약속을 믿고 초기 조치를 진행해달라”는 제안을 북한 측에 던졌지만, 평양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5월30일 베이징을 방문한 힐 차관보가 아예 미 재무부의 조치를 철회하는 세 번째 방안을 들고 왔다는 소식은 이전의 방안과는 사뭇 격이 다르다. 이를 위해 미 국무부 측은 BDA 경영진 교체를 위해 중국 정부가 적극적인 구실을 해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 방안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미 법무부와 재무부의 반발을 중국과의 논의를 통해 다듬어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될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또한 재무부 고시를 철회하는 방안은 앞서 설명한 BDA 문제의 ‘진화의 끝’에 대한 미국 측 고민과 맥이 닿는다. 실제로 근본 조치 철회가 이뤄진다면 북한이 내건 금융제재가 종료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먼 길을 돌았던 미국이, 거듭 진화한 북한의 요구 수위에 밀려 끝내 피하고 싶었던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셈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라이스 국무장관으로 대표되는 협상파가 ‘원칙에의 타협’을 거부하는 미 행정부 내부의 반발을 뚫고 이를 현실화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BDA 문제가 이렇게 오랜 기간 2·13 합의의 발목을 잡고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모두들 아주 가뿐히 넘을 수 있는 문지방이라 생각했다. 역설적으로 BDA 문제의 장기화는, 장밋빛으로만 비쳤던 2·13 합의가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무수한 장애물을 만나게 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외교가의 격언처럼 ‘악마는 디테일(detail)’에 있고, 2·13 합의는 아직 그 첫 번째 악마도 넘어서지 못했다. 북핵 사찰과 검증, 평화체제 논의와 북미·북일 관계 개선 등에 비하면 BDA 문제는 꼬마 악마에 불과하다는 것이야말로 현 상황에 대한 가장 냉정한 평가다.



주간동아 2007.06.12 589호 (p34~38)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팀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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