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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정은커녕 손님 그림자도 안 보여”

집창촌 미아리 텍사스 재개발로 썰렁… 한창때 500여 업소 성업, 매춘여성도 하나 둘 떠나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흥정은커녕 손님 그림자도 안 보여”

“흥정은커녕 손님 그림자도 안 보여”

철거를 앞둔 집창촌.

3월 중순 어느 날 저녁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속칭 ‘미아리 텍사스’로 알려진 국내 최대의 집창촌엔 예전과 같은 흥청거림이 없었다. 음울한 분위기의 좁고 캄캄한 골목을 지키는 것은 우악스럽게 쳐놓은 사창가 외벽 너머의 가로등과 포장마차 백열등뿐. 이따금 ‘이모’(포주)들이 “장사해요. 아가씨들 구경만 하고 가요”라며 호객행위를 하긴 했다. 그러나 손님 한 사람에 서너 명씩 달라붙어 흥정하던 예전 풍경을 더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곳 포주들은 너나없이 ‘9·23테러’(2004년 9월23일 시행된 성매매특별법을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이후 아가씨 수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한 포주는 취재진을 붙잡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게가 한 200개 남았나. 한창때는 500개가 넘었는데…. 아가씨들도 많이 떠났어요. 가게마다 아가씨가 없어 난리예요. 많아 봐야 5, 6명 될까.”

1987년 미아리 텍사스에 들어와 올해로 꼭 20년째 포장마차를 하고 있다는 이순영(가명·58) 씨는 “당시 미아리 근처 단독주택 한 채가 1500만원 정도였는데, 이곳 포장마차를 시작하면서 권리금만 2000만원 내고 들어왔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곳에서 장사해 자식 4명을 모두 공부시키고 결혼시켰다고 했다.

물론 미아리다운 ‘문화’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맥주 한잔 부어주는 이곳만의 ‘특징’도 변치 않았고, 신고식(일명 ‘쇼’)도 여전하다고 한다. 그러나 아가씨들의 표정은 어둡고 피곤해 보였다. 손님이 줄어 고민이고 미래가 없어 불안한 그들은 “여기 철거되면 어디로 가느냐” 라는 질문에 하나같이 입을 닫았다.



6년 새 무려 4~5배 땅값 폭등

미아리 텍사스의 역사는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중반까지 흔히 ‘종삼’이라 불리며 호황을 이뤘던 종로3가 뒷골목 사창가가 철거되면서 이곳에 ‘자연스럽게’ 집창촌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일부는 강동구 천호동의 ‘천호동 텍사스’로 흘러갔다고 전해진다.

국내 최대 집창촌으로 ‘명성’을 유지하던 미아리 텍사스도 이제 철거됐거나 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9·23테러’의 직격탄을 맞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이 지역이 재개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03년 11월 이 일대를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한 데 이어 지난해 3월9일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을 확정, 이곳에 개발의 칼을 들이댔다.

“흥정은커녕 손님 그림자도 안 보여”
현재 미아리 텍사스 2만여 평은 월곡1구역(1만6626평)과 월곡2구역(5362평)으로 나뉘어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2구역은 이미 철거가 끝난 상태. 30, 40개 업소가 사라진 자리에는 높이 100m가 넘는 대규모 주상복합아파트를 세우기 위한 기반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집창촌 대부분이 포함된 월곡1구역도 ‘재개발추진위원회’가 설립돼 개발이 착착 진행 중이다. 시공사인 롯데건설은 월곡1구역에 38층 높이의 아파트 8개 동을 지을 계획이다. 서울 성북구청 뉴타운 사업과 균형발전팀 관계자는 “현재 구역지정 절차가 진행 중인데 2, 3년이면 개발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녹지와 공원이 전체의 15~20%에 달하니 주거환경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개발이 구체화되면서 이 지역 땅값도 폭등했다. 서울 강북에서는 용산 다음으로 높다는 게 주변 부동산중개업자들의 얘기. 월곡2구역을 개발 중인 부동산 개발업체 유니버스하우징의 토지매입 단가는 평당 30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입지 조건을 보면 땅값 폭등을 이해할 만도 하다. 미아리 텍사스 앞쪽으로는 길음 뉴타운이 펼쳐져 있고, 뒤쪽으로는 월곡 뉴타운이 개발을 기다린다. 한 블록 건너 미아삼거리 쪽에는 신세계, 현대백화점이 들어섰고, 롯데백화점도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자들은 “2000년 무렵만 해도 평당 500만원 선이던 월곡1구역의 땅값이 최근 평당 2000만~2500만원 선으로 올랐고, 지금도 계속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6년 새 무려 4~5배가 뛴 셈이다.

업주들 “재개발 쉽게 되겠어?”

그러나 집창촌 업주들은 재개발이 늦춰질 것으로 믿고 있었다. “10여 년 전부터 재개발 얘기가 나왔지만 진행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하는 업주도 있었다. 전국 11개 집창촌 업주 대표들로 구성된 한터전국연합 강현준 대표도 “아직 미아리는 재개발이 이뤄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업주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시행사가 땅을 매입해 개발을 시작하기까지는 장애물이 많다는 설명이다.

강 대표는 또 “특별법 이후 전국에 2000여 개이던 집창촌 성매매 업소가 1400여 개로 줄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스포츠 마사지 업소는 2~3배 늘었고, 안마시술소도 전국적으로 1000개가 넘을 정도로 증가하지 않았나. 재개발도 문제투성이지만 성매매특별법도 실패로 끝났다”고 꼬집었다.

어찌 됐건 미아리 텍사스는 이제 곧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에 따라 이곳 여성들의 어두운 과거도 함께 묻힐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2007.04.24 582호 (p50~51)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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