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2

2007.04.24

한국인 최초 佛 오브제아트 감정사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7-04-18 19: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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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최초 佛 오브제아트 감정사
    재수하기 싫어서 턱걸이로 들어간 대학, 4년 내내 후회 없이 놀았다. 대학 4학년 때 꿈은 만화방 주인. 학교 앞 만화방 주인아저씨랑 동업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사업계획서까지 짰다. 만약 그때 아버지의 권유로 유럽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만화방 주인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더군요. ‘좀더 큰 세계가 있고, 내가 보지 못하고 느껴보지 못한 것이 기다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파리 드골공항에서 먹었던 크루아상이 참 맛있었는데, 꼭 다시 프랑스에 와서 먹을 것이라고 다짐했죠.”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인 최초의 ‘오브제아트 감정사’로 활동 중인 이지은(30) 씨는 그렇게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대학(이화여대 가정관리학과)을 졸업하던 1999년, 이씨는 곧바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내린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2년간 프랑스어를 공부한 뒤 2002년 비로소 3년제 전문대학인 ‘크리스티 프랑스’에 들어가 프랑스 미술사 석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곧바로 미술감정사 전문양성학교인 IESA에 입학해 ‘미술시장-오브제아트 감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우리나라에선 이름부터 매우 낯선 오브제아트 감정사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이씨의 설명이다.

    “유리와 가구, 청동, 은 등으로 만들어진 오래된 공예품의 진위를 판별하고 가격을 산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감정사도 종류가 여럿이다. 이씨는 물건의 역사를 추적해 문서화하고 객관화해 물건의 가치를 높이는 다큐멘털리스트다. “하나의 오브제를 둘러싼 역사와 사회, 문화사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선택한 일이다. 그 궁금증을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이씨는 요즘 파리1대학에서 문화재 역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었다. “언제나 지금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만약 이 순간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 이유, 공부를 하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나를 붙잡아두는 어떤 것이 사라진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짐을 쌀 거예요.”

    그동안 이씨를 파리에 붙잡아뒀던 것은 많았다. 오브제아트라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때, 절판된 책을 찾아다니다 그 책 모두를 도서관에서 복사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몇 개월간 미친 듯이 복사만 했던 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이 너무 많아서 행복했던 기억, 새벽 골동품시장에서 상인들과 경쟁하며 물건을 사나르던 순간….

    이씨가 최근 발간한 ‘유럽장인들의 아틀리에’는 바로 이 과정에서 탄생한 부산물이다. 이씨가 크리스티 프랑스에서 수업을 받으면서 만난 장인들과 그들을 통해 알게 된 유럽 최고 장인 15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한국인 최초 佛 오브제아트 감정사
    이 책은 이씨가 올해 목표한 것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아마존 탐험을 위해 돈도 모아야 하고, 구상 중인 책을 구체화하기 위해 자료도 모아야 해요. 쓰고 싶은 책에 대한 기획이 한 다스나 남았어요. 박사 연구논문도 끝내야 하고요.”

    이씨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목표도 세워놓았다. 30대 중반엔 프랑스 국가문화연구원, 40대에는 한국에 오브제아트 전문 갤러리를 여는 것, 그리고 50대 후반까지는 인생의 최종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 생각이다.

    그러나 이씨가 꿈꾸는 삶은 너무도 평범하다. “시골에 농장을 차리고 오리와 개, 고양이를 왕창 기르면서 주변 사람을 불러다 부침개를 해먹이면서 살고 싶어요. 그리고 친구들과 동물보호소에 봉사하러 다니면서 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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