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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안의 창의력을 깨워라

사물과 현상에 대한 편견 버려라

  • 이도희 경기 송탄여고 국어교사·얼쑤 논술구술연구소 http://cafe.daum.net/hurrah2

사물과 현상에 대한 편견 버려라

사물과 현상에 대한 편견 버려라

호랑이에게서 귀여움을 찾아낼 때 창의력이 자란다.

우리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볼 때 선입관에 사로잡힌다. 예컨대 호랑이는 무서운 동물이고 강아지는 귀여운 동물이라고 여긴다. 거기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이 스며들 여지는 없다. 선입관은 일종의 편견이다. 편견은 시각과 청각 등 본능에 근거해 만들어진 상식적 사고일 뿐이다. 대상이나 현상을 바라볼 때 감각적인 측면을 거부해야 자신만의 관점을 형성할 수 있고 창의성을 기를 수 있다.

모든 사물이나 현상에는 본질이 있다. 본질은 추상적이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의 감각이 판단 기준이 될 때는 본질을 파악하는 데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TV, 홈쇼핑 광고 등을 들 수 있다. 광고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되도록 모든 감각을 동원해 시청자를 현혹한다. 대부분 광고에서는 상품이 가지고 있는 본질은 감춰진다. 다음 글을 보자.

강을 건너는 위험이 이와 같은데도 강물 소리는 듣지 못했다. 일행은 모두 요동의 벌판이 평평하고 드넓기 때문에 강물이 성난 듯 울어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강을 잘 알지 못하고 한 말이다. 요동의 강이라고 해서 울어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만 밤중에 건너지 않아서 그런 것일 뿐이다. 낮에는 물을 볼 수 있으므로 눈이 오로지 위험한 광경(光景)을 보는 데만 쏠려, 바야흐로 벌벌 떨면서 눈이 있는 것을 오히려 근심해야 할 판에 도대체 무슨 소리가 귀에 들릴 것인가. 그런데 지금 나는 밤중에 강을 건너기에 눈으로 위험한 광경을 보지 못하니 위험하다는 느낌이 오로지 청각(聽覺)으로만 쏠려, 귀로 듣는 것이 너무 무시무시해서 근심을 견딜 수가 없다. 아, 나는 이제야 도(道)를 깨달았다.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는 사람은 귀와 눈이 그에게 장애(障碍)가 되지 않으나, 귀와 눈만을 믿는 사람은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하면 할수록 더욱 병이 되는 것이다.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

여기서 사물과 현상을 대하는 박지원의 세계관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물이나 현상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그의 주장은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에게 사물이나 현상을 새롭게 보는 태도와 인간이 보고 듣는 행위는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박지원의 관점은 독특하다. 즉, 듣는 이의 마음 상태에 따라 동일한 사물이라도 다르게 인식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싼 외제차와 싼 국산차는 박지원에게 무엇으로 인식될까? 우리 눈에는 고급의 큰 자동차가 좋은 차로 보인다. 누가 봐도 객관적인 판단이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박지원은 다를 것이다. 그는 시동을 걸어놓은 자동차를 본 뒤 먼저 눈을 감고 귀를 막을 것이다. 현상을 보고 듣지 않으려는 시도다. 오로지 마음으로 자동차를 바라볼 것이다. 그 결과 박지원에게는 비싼 차든 싼 차든 사람을 실어 나르는 기능의 본질만 보일 뿐이다. 시각과 청각을 걷어치우고 마음으로 생각한 창의적 사고의 결과다.

논술 수험생에게도 ‘박지원표 사고’가 필요하다. 그의 창의적 사고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으로 심화, 확대할 수 있다. 부자와 빈자가 외형적으로는 삶의 차이를 보이지만, 절대로 부자의 삶만이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박지원의 잣대를 들이대면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 문명인, 야만인 등의 명칭도 잘못됐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자신만의 주관적 관점이 성립된다. 그 결과 어느 나라든 보편적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창의적 사고에 이를 수 있다.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자가 간 뒤로 선학동엔 다시 학이 날기 시작했거든요. 여자가 이 선학동에 다시 학을 날게 했어요. 포구물이 막혀버린 선학동에 아직도 학이 날고 있는 것을 본 사람이 그 눈먼 여자였으니 말이오”란 내용이 그것이다. 눈이 있는 사람들은 비상하는 학을 보지 못하는데 눈먼 여자는 비상학을 본다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시각이 마음의 기능을 마비시켜 비상학이라는 실체를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마음의 눈이 현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 실체까지도 보게 한다.

따라서 마음의 잣대를 들이대보면 현상에서 느끼는 우리의 상식은 사라지고 마음에서 느끼는 삶의 진리가 펼쳐질 것이다. 무생물이라고 여겼던 돌에서 생명을 발견할 수 있고, 찬미했던 황금에서 무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또 무서운 호랑이에게서 귀여움을, 강아지에게서 무서움을 찾아낼 수도 있다. 창의력은 바로 이렇게 나타난다.



주간동아 2007.04.24 582호 (p97~97)

이도희 경기 송탄여고 국어교사·얼쑤 논술구술연구소 http://cafe.daum.net/hurra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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