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7

2007.03.20

눈물과 웃음 동시 선사 일본인의 마음 흔들다

‘훌라걸스’로 일본 아카데미 5개 부문 수상한 재일교포 감독 이상일

  • 입력2007-03-14 16: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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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과 웃음 동시 선사 일본인의 마음 흔들다
    재일교포 감독이라는 수식어는 이상일 감독에게 불필요한 많은 족쇄를 채워놓는 것 같다. 영화 ‘훌라걸스’ 이전에는 일본 내에서도 이 감독의 지명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의 일본 관객들은 ‘훌라걸스’ 자막이나 포스터에서 감독 이름을 보고 그를 한국 감독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보더라인’(2003년)으로 데뷔한 이 감독은 ‘69’(2004년)와 ‘스크랩 헤븐’(2005년) ‘훌라걸스’(2006년) 등 4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었지만, ‘훌라걸스’가 15억 엔이 넘는 흥행수익을 거두면서 비로소 일본 주류 영화에 안착했다.

    1974년 일본에서 태어난 이상일 감독은 재일교포 3세다. 조총련계 고등학교를 나와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재일교포인 시네콰논 영화사의 이봉우 대표를 만나면서 영화 일을 시작했다. 일본 영화학교 졸업작품인 단편영화 ‘청’은 2000년 피아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포함해 4개 부문의 상을 받았다.

    경제학도에서 영화인 변신 …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강해

    젊은 감성이 살아 있는 상업 영화 데뷔작 ‘보더라인’으로 주목받은 이 감독은 이후 매년 한 편씩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 특히 그는 일본 영화계의 젊은 스타들과 지속적으로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데, ‘훌라걸스’에서도 아오이 유우라는 매력적인 배우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스크랩 헤븐’에서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오다기리 조가 주인공을 맡았고, ‘69’에서는 안도 마사노부와 쓰마부키 사토시가 출연했다. 모두 일본 최고의 아이돌 스타들이다.

    ‘훌라걸스’에서 아오이 유우는 처음엔 조금 뻣뻣한 몸으로 훌라댄스를 추지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전문 하와이안 댄서에도 크게 뒤지지 않는 매력적인 춤 실력을 선보인다.



    그는 “일본의 젊은 배우들은 한국 배우들보다 출연료가 높지 않기 때문에 인디 영화에 젊은 스타들을 어렵지 않게 캐스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한국 감독 중 가장 좋아하는 이는 봉준호. 특히 ‘살인의 추억’은 그가 꼽는 최고의 한국 영화다.

    그는 재일교포 출신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들, 딸을 두고 있다. ‘훌라걸스’ 이후 다음 작품으로 준비하고 있는 시나리오 중에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이야기를 다룬 시대극도 있다.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일본에서 한국 이름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이상일 감독은 한국인으로서의 강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눈물과 웃음 동시 선사 일본인의 마음 흔들다

    ‘훌라걸스’

    하와이의 민속춤인 훌라댄스는 한국인에게 아리랑 같은 춤이다. 미국이 처음 하와이를 점령했을 때 원주민들의 훌라댄스를 금지했다고 한다. 그만큼 민족적 색채를 강하게 띤 춤이기에 정치적으로 문제가 됐던 것이다.

    ‘훌라걸스’는 1965년이 배경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탄광촌이 스파 리조트로 거듭나는 과정을 소재로 한다. 일본의 탄광마을은 석탄에서 석유로 에너지 자원이 교체되면서 경기가 시들해지자 온천 리조트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몰락 위기의 탄광촌 재기 과정 흥미롭게 그려

    ‘하와이안 파라다이스’는 지금도 일본 내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 리조트 중 하나다. 스파 리조트의 컨셉트를 하와이로 정하면서 자연스럽게 훌라댄스가 필요했다. 도쿄에서 훌라댄스 강사를 초청하고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훌라댄스 단원을 모집하지만 신청한 사람은 겨우 4명. 배꼽을 내놓고 허리를 심하게 흔들어야 하는 춤이라는 말에 모두들 기피한 것이다.

    신청자인 기미코(아오이 유우 분)는 부모가 반대하자 집을 나와 합숙하면서 춤을 춘다. “손톱 밑에 때가 끼는 탄광촌을 벗어나는 길은 훌라댄스를 추는 것뿐”이라며 단원 모집에 참가한 사나에는 가족이 홋카이도로 이사를 가는 탓에 팀에서 빠지게 된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사나에가 가슴에 걸렸다. 감독은 왜 사나에를 버렸을까?

    “사나에가 다시 돌아와서 훌라걸이 된다면 이야기가 너무 대중적이 된다. 이 이야기는 젊은 소녀들이 노력해서 정말 잘됐다라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나에의 식구가 홋카이도라는 먼 지역으로 이사갔는데, 그 시절에 그런 식으로 이사갔다면 아마도 이승에서의 마지막 헤어짐일 수 있다. 당시는 휴대전화와 신칸센이 있던 때가 아니다. 그 시대의 리얼함을 표현하려면, 사나에는 다시는 훌라걸이 될 수 없어야 한다.”

    이 감독은 “‘훌라걸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중 하나는 집을 나간 기미코를 찾아 그녀의 어머니가 합숙소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혼자 춤을 추는 기미코의 모습을 보게 된 장면”이라고 했다. 기미코는 어머니가 자신의 춤을 지켜본다는 사실을 알면서,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춤을 춘다. 기미코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미코는 독립적인 자아로 자신이 여기까지 왔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기미코와 어머니의 충돌은 가족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미코를 비롯한 훌라걸들은 단순히 개인적 성공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하와이안 센터가 성공해야 한다는 집단적 부채까지 짊어지고 있었다. 그런 압박감이 17세에 불과한 그의 의식에 작용하고 있었다.”

    현재 일본에는 탄광이 몇 개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1965년이라는 시대 배경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훌라걸스’에 등장하는 석탄으로 만들어진 산은 컴퓨터그래픽으로 제작한 것이다. 배경은 합성했고, 탄광 주택지는 남아 있는 당시 사택을 해체해서 촬영하는 지역에 다시 세운 뒤 찍었다.

    개인 성공 아닌 집단을 위한 도전과 희생 ‘부각’

    ‘훌라걸스’는 분명히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이다. ‘셸 위 댄스’나 ‘스윙걸스’에서 발견할 수 있듯, 어떤 전문적인 영역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그것에 도전해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은 일본인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소재다. ‘훌라걸스’가 그런 소재와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단지 개인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서도 그 도전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훌라걸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부모와 자신이 속한 사회가 이 세계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춘다. 바로 이 부분이 일본인들을 자극했을 것이다. ‘훌라걸스’가 일본 아카데미상을 휩쓸고 기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블루리본상을 비롯해 지금까지 일본 내에서만 20여 개가 넘는 상을 받은 이유도 일본인들의 무의식 속에 잠재한 집단적 정서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소재를 완벽하게 장악해 그것을 숙련된 장인의 솜씨로 주무르며 관객들에게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안겨주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앞으로 그가 ‘훌라걸스’의 대중적 성공을 이어나갈지, 아니면 초기에 보여준 감성적이며 체제 도전적인 날카로움을 살려 또 다른 걸작들을 만들지,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조총련계 학생 신분으로 이미 많은 저항을 겪으며 자라났다. 그의 탁월한 현실인식은 그 과정에서 길러진 것이다. 나는 그가 무모하게 사건을 확대시키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어리석게 자신의 작은 성공에 도취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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