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7

2007.03.20

伊 부모들 광적 축구교육 못 말려!

아들 일류 축구선수로 키우는 게 꿈 …경기장 쫓아다니며 격렬한 응원·욕설

  • 로마=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입력2007-03-14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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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초, 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 리그인 세리에A 경기에서 훌리건 폭력이 발생해 경찰관이 목숨을 잃었다. 훌리건 축구팬도 심각한 문제지만, ‘훌리건 부모’들 또한 이에 못지않는 골칫거리라고 이탈리아 축구인들은 입을 모은다. 축구감독이자 로마에서 축구학교를 운영하는 주세페 잔니니(44) 씨의 하소연을 들어보자.

    “이탈리아 부모들은 한결같이 자기 아들이 미래의 프란체스코 토티나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가 되길 원합니다.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아들이 세리에A에서 뛰길 갈망하는 거죠. 일요일 친선경기에서 아들에게 ‘때려!’ ‘밀어!’ ‘태클 걸어!’ 하며 고함지르는 것은 물론, 심판한테 욕설 퍼붓는 것도 예사입니다.”

    훌리건들의 ‘축구폭력’은 세리에A와 같은 빅게임에 한정되지 않는다. 격렬한 응원과 욕설이 가장 많이 들리는 곳은 도리어 어린이나 청소년 팀들의 아마추어 경기다. 잔니니 씨는 “현재 이탈리아의 많은 부모가 13~15세짜리 아들이 스타가 되어 큰돈을 벌어올 것이라는 허황된 기대를 하며 자녀의 장래를 망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AS 로마 팀의 ‘프린스’로 불리던 잔니니 씨는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국가대표로 뛴 왕년의 대스타.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AS 로마 청소년 팀의 스카우트 담당자였다.

    “제가 열서너 살 때 아마추어 경기에서 두 골을 넣고 옐로카드를 하나 받은 날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버지에게 심한 호통을 들었습니다.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았다는 꾸지람이었죠. 골을 넣었다는 칭찬은 절대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요즘 이탈리아 부모들은 참 다릅니다.”



    어린 선수들에게 페어플레이 정신을 역설하고 스포츠인으로서 가져야 할 바른 행동지침을 항상 가르치지만, 아이들은 일요일만 되면 ‘훌리건 부모들’ 앞에서 이러한 것들을 모두 잊어버리기 예사라고 한다. 심판에게 오판이라며 윽박지르고 상대팀 선수들을 각종 욕설로 비난하는 부모들이 관중석을 꽉 채우기 때문이다.

    청소년 친선 축구경기의 심판으로 활약하는 안드레아 페라라 씨는 호루라기를 불 때마다 날아오는 훌리건 부모들의 항의와 비방을 견디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이마에는 상처가 하나 있는데, 지난해 옐로카드를 받은 선수가 박치기를 해서 난 것이다. 그는 “부모들은 상대팀 선수들이 자기 아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라는 건 생각지도 않는다”고 꼬집었다.

    아마추어 경기 심판들 훌리건 부모들에 곤욕

    일요일이던 2월25일 이탈리아에서는 청소년 아마추어 축구경기 중 발생한 폭력 사태가 주요 뉴스거리가 됐다. 이보다 닷새 앞선 2월20일에도 각 일간지 사회면은 축구장 폭력사고로 채워졌다. 로마 교외에서 벌어진 만 16세 청소년들의 아마추어 경기에서 상대팀의 승리에 분을 이기지 못한 홈팀 선수들이 집단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부모들까지 합세해 축구장은 순식간에 격투기장으로 변했고, 구타당한 상대팀 선수 한 명은 턱뼈가 깨져 응급실에 실려갔다. 그 선수는 앞으로 선수생활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한다.

    이탈리아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순위는 프로 축구선수. 부모들의 희망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에는 영어유치원도 없고 조기유학이란 말도 없지만 축구교실만큼은 부지기수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매주 서너 번씩 축구수업을 받는 것은 흔한 일이다. 전국적으로 이탈리아 아마추어축구연맹에 정식 등록된 어린이 및 청소년 팀은 3만6609개, 선수는 40만명에 달한다. 이러다 보니 이탈리아에서는 ‘축구 하는 아이들을 세기보다는 축구 안 하는 아이들을 세는 것이 더 빠르다’는 말이 나돈다.

    아마추어 세계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이탈리아 부모들은 ‘축구감독 신드롬’을 앓는다. 혹시라도 자기 아들을 벤치에 앉혀놓거나 경기 중 교체하면 감독에게 거친 항의를 한다. 아버지들만 나서는 게 아니다. 어머니들이 경기장 울타리에 주먹 불끈 쥐고 서서 상대팀 어린 선수들에게 고래고래 고함지르는 모습은 일요일 친선경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경기가 끝났다고 해서 이성을 되찾는 것도 아니다. 관전 중 쌓인 스트레스를 아들에게 퍼붓는다. 어시스트를 잘못하거나 패널티 킥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너, 집에 가서 두고 보자!’라며 아들을 주눅들게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린 선수들에게 우승을 위한 폭력을 가르치는 장본인은 바로 부모다. 남의 아들이 부상해도 내 아이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자세다.

    그러나 많은 청소년 선수들이 부모들이 부추기는 경쟁과 심리적 부담을 헤쳐나가지 못하고 좌절하고 있다. 12세 전후는 가장 예민한 시기로 이때 많은 아이들이 축구에 더는 재미를 못 느끼고 그만둬버린다. 부모의 강요에 축구를 계속하다 알코올이나 대마초 중독, 심지어 마약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 축구지도자들은 이에 대해 패배를 통해 성장하고, 벤치에 앉아서도 많은 것을 배우는 축구가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파비오 브레스 토스카나 지방축구협회장은 “일부 아마추어 구단에서 재능 있는 어린 선수를 미리 영입하기 위해 컴퓨터나 스쿠터 등의 선물공세를 하는데, 이런 마케팅 작전은 훌리건 부모의 허황된 꿈을 더 부추긴다”고 질책했다. 신나고 재미있게 축구를 즐기는 이탈리아 청소년들을 보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 같다.

    토스카나 지방의 훌리건 부모 위한 교육

    “부모들은 축구감독 역할 하지 마라”


    1월 말, 토스카나 지방에서 훌리건 부모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응원 테러피’가 시범 실시되어 이탈리아 언론의 큰 관심을 모았다. 스포츠심리학 전문의인 클라우디아 코르티 씨가 이 이색적인 테러피의 강사를 맡았으며, 양팀 부모 40여 명이 참가했다. 코르티 씨의 말을 들어보자.

    “여러분은 부모 역할만 해야 합니다. 축구감독은 각 팀에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자녀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지 마십시오. 축구는 부모의 꿈이 아니라 아이의 꿈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강연 내용이 훌리건 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날만큼은 욕설도, 과격한 제스처도 없이 신사 숙녀답게 관전했다. 청소년 축구의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되살리자는 의도에서 이탈리아 축구계는 앞으로 훌리건 부모의 언행을 교육하는 테러피를 전국적으로 확산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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