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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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요절, 사회적 타살

  • 노만수 학림논술연구실장·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초빙교수 gawuli@naver.com

    입력2007-03-05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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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의 요절, 사회적 타살
    가수 유니와 탤런트 정다빈(사진). 대중의 환호를 먹고 사는 스타의 화려함 뒤엔 ‘대중 속 고독(우울증)’이 독버섯처럼 뿌리 내려 찰나의 자살 충동을 부채질하는 걸까. 일각에선 몇 해 전 여배우 이은주의 자살 뒤 자살률이 하루 평균 0.84명에서 2.13명으로 늘어났다는 통계로 ‘베르테르 현상(자살연쇄 반응)’을 우려하기도 한다. ‘만약 이효리가 자살했다면 베르테르의 권총을 더 많이 당길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가능한 세태다.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켐은 ‘자살론’(1897)에서 ‘자살의 유형’을 몇 가지로 나눴다. 첫 번째, 한 개인의 강한 자아가 사회규범과 충돌하면 결국 그 개인은 자아 속으로 도피한다. ‘이기적 자살’이다. 자베르 경감(레미제라블)은 죄인 장 발장을 체포해야 하지만 양심에 따라 실정법을 어기고 자살함으로써 개인의 자아 속으로 잠수하고 만다. 장자에게 수절을 맹세하던 ‘아내 전씨’는 남편이 죽자마자 젊은 귀공자와 재혼했고, 한술 더 떠 젊은 남편의 병에 특효라는 사람의 머릿골을 구하기 위해 전남편의 무덤까지 파헤친다. 관 뚜껑을 열자 전남편 장자는 살아 있었고, 그녀는 자신의 솔직한 욕구와 고리타분한 규범 사이에서 치이다 삶이 지겨워 ‘이기적’으로 죽고 만다.

    연예인 화려함 뒤엔 ‘우울증’ 독버섯 기생

    두 번째, 개인이 사회에 너무 깊숙이 통합돼 죽는 ‘이타적(의무적) 자살’이 있다. 자신을 음해하는 왕비의 전모를 밝히면 의붓어머니의 잘못을 드러내 아버지에게 근심을 끼친다며 자살한 호동왕자, 한일병합의 비보가 날아들자 “선비노릇 하기 힘들구나”라는 ‘절명시’를 쓰고 순국한 매천 황현, 마치 벚꽃처럼 ‘집단적 산화(散花)’를 하는 가미카제 특공대 등이다.

    세 번째, 경제 위기나 공동체 규칙이 무너진 무규범 상황에서 벌어지는 ‘아노미 자살’이 있다.



    정리하면 뒤르켐 이후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란 해석이 가능해졌고, ‘뒤르켐 전(前)’은 유전적 결함이나 우울증으로 인한 개인문제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유니와 정다빈의 자살도 사회학적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원래 인간은 ‘호모루덴스(유희적 인간)’다. 특히 예술은 노동이자 놀이였다. 그러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예술은 ‘특정인’의 노동으로 전문화된다. 봉건시대엔 도화원의 김홍도나 궁정화가 고야처럼, 왕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든지 귀족이라는 패트런(patron·후원자)을 위해 예술을 한다. 근대엔 ‘시민적 개인’ 부르주아가 예술 소비자로 나서면서 예술가는 서점이나 화랑을 통해 상품을 직접 판다. 먹고살기 위한 지겨운 노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이후 대중예술은 문화산업이 된다. ‘맨땅에 헤딩하기 벅찬’ 대중예술가들은 상품유통을 흥행사, 기획사, 미디어 등 스타시스템에 맡기고 계약직 노동자로 고용된다. 여기서 비극은 싹튼다. 스타시스템은 스타를 기획, 요리, 가공, 편집해 만들어낸다.

    유니의 컨셉트는 ‘섹시 미모’였고, 정다빈은 ‘청순가련, 발랄’이었다. 태어난 게 아니라 만들어졌다. 자신의 개성과는 동떨어진 ‘기획 컨셉트’ 이미지로 포장된 채 혹사당하며 창조자이자 호모루덴스로서의 환희는 무대 위에서만 잠깐, 하물며 땀의 열매조차 스스로 분배하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우울증은 ‘상품으로서의 자신’과 ‘진짜 자기’ 사이의 분열이 낳은 일종의 ‘정신병리’다. 거기다 악성 댓글이라는 사회적 원인(누리꾼 문화의 부정성)이 자살이라는 ‘울화병’에 기름을 붓는다.

    “뜰에 있는 나무가 보기 싫게/ 구부러진 까닭은 나쁜 토양 때문이다”(브레히트, ‘서정시가 쓰기 힘든 시대’). 사실 김광석도, 이은주도, 유니도, 정다빈도 그리고 대한민국 고3에게도 일순간 비딱하게 일상을 ‘구부리고’ 싶은 멜랑콜리아(melancholia·우울증)는 있다. 하지만 ‘구부러진(자살한) 나무’는 토양이라는 ‘객관적 환경’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스타의 요절은 ‘스타시스템’과 개인의 ‘순간적 나약’이 공모한 ‘기획살인이자 사회적 타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사회적 자살(타살)’에 대한 뒤르켐의 대안은? 직업집단이다. 노동자 연대의식으로 뭉친 연예인 노동조합 같은 거 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에서 자살은 ‘뜨겁고도 슬픈’ 사회문제다. 이렇게 논술은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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