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0

2017.01.04

집중 추적

희망퇴직의 절규 “안은 전쟁터, 밖은 지옥”

금융·대기업에 부는 구조조정 바람…한 해 실업자 2만여 명, 新빈곤층 양산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12-30 16: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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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년 새해가 시작됐지만 사회 곳곳에 희망보다 불황의 그림자가 더욱 짙다. 특히 지난 연말부터 금융·대기업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구조조정 바람은 연초까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금융권은 핀테크(금융+기술) 확산과 인터넷은행 출범 등에 따라 대규모 인력 감축을 단행하고 있으며, 대기업 역시 장기화된 경기불황 속에서 구조조정을 최선의 선택으로 내세우고 있다.   

    먼저 KB국민은행은 2016년 12월 19~22일 2800명으로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은행 측은 신청자를 대상으로 심사를 거친 뒤 조만간 최종 퇴직자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희망퇴직 직원은 올해 1월 20일까지 근무한다. 희망퇴직 대상자는 근속 10년 차 이상 전 직원으로, 사실상 대리급 이상이 이에 해당한다. 만 55세 이상 임금피크제 대상자에 한해 희망퇴직을 실시한 2015년보다 대상 연령이 낮아진 만큼 이번에는 희망퇴직 인원수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더욱이 지원자가 2800여 명이나 돼 2010년 3244명 이래 최대 규모일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2016년 희망퇴직 조건은 장기근속 직원의 경우 월 임금 최대 36개월 치, 임금피크 제 직원의 경우 최대 27개월 치를 지급한다. 이에 대해 은행 측은 “희망퇴직은 제2의 인생설계를 준비하는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임금피크제 직원과 장기근속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순순한 희망퇴직”이라고 밝혔다.



    은행업 종사자 5000명 퇴사

    KEB하나은행은 2016년 12월 22~26일 ‘준정년특별퇴직’ 신청을 받았다. 이 역시 희망퇴직의 다른 말로 옛 외환은행이 상시적으로 운영하던 제도인데, 2016년부터는 옛 하나은행 직원까지로 대상을 확대했다. 이 때문에 2015년(700여 명)에 비해 희망퇴직 신청자가 늘어날 전망이다. 만 39세 이상으로 근속기간이 14년 이상인 직원, 만 38세 이상으로 근속기간이 10년 이상인 직원이 신청 대상이다. 희망퇴직자에게는 직급에 따라 22~27개월 치 월 임금이 특별퇴직금으로 지급되며, 직원 인당 자녀학자금은 최대 2000만 원, 건강관리 지원금은 최대 1000만 원, 재취업 및 창업 지원금은 500만 원이 나온다.



    2016년 12월 30일까지 ‘전직 지원 프로그램’ 신청자를 받은 우리은행도 직원 400여 명이 회사를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 측은 전직 지원 프로그램을 “주로 임금피크제를 앞둔 직원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을 진행해 은퇴 후를 지원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하지만, 이 역시 희망퇴직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우리은행은 2009년부터 전직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해 매년 3월 무렵 실시했으나 이번에는 그 시기를 앞당겼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전직 지원과 관련된 교육기간이 2개월에 불과했는데, 그 기간을 5개월로 늘리다 보니 신청 시기를 앞당기게 됐다”고 밝혔다.

    대상자는 10년 이상 재직자로 행원급은 16호봉 이상 또는 만 35세 이상, 책임자급은 승진 후 만 4년 경과 또는 만 38세 이상, 그 밖에도 관리자급, 소속장급 전원이다. 퇴직금으로 월 임금 9~30개월 치가 지급되며, 자녀학자금은 퇴직 시 고등학교 재학 이상 자녀를 둔 경우에는 2명까지 인당 1000만 원 한도에서 지원해준다.

    NH농협은행은 2016년 11월 말 실시한 희망퇴직에 411명이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344명)보다 20% 가까이 늘어난 규모로, 10년 이상 근무한 만 40세 이상 직원 전체가 대상자였다. 퇴직금으로 월 임금 20~26개월 치가 지급된다. SC제일은행도 직원 66명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그만둘 예정이다. 지원 가능한 연령대를 2015년 40세 이상에서 이번에는 49세로 올렸지만 적잖은 인원이 몰렸다. 퇴직금으로 월 임금 최대 30~50개월 치가 지급된다. 광주은행은 2016년 11월 말 40세 이상 15년 이상 근속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2015년(88명)보다 많은 102명이 퇴직했다.

    이로써 올해 초까지 은행권에서는 총 5000명이 회사를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2016년 가계대출 증가 등으로 깜짝 실적을 올린 은행들이 여유자금이 있을 때 퇴직금을 풀어 대대적인 인력 감축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터넷과 모바일 등 비대면 채널이 확대되면서 은행들은 직원과 영업점 줄이기에 혈안이 돼 있다. 또 올해부터 임금피크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60세 정년 연장에 해당하는 인력의 인사적체가 가중될 것이기 때문에 그 부담을 덜고자 회사가 희망퇴직 조건을 더욱 완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래 잃은 30대도 희망퇴직

    또한 성과연봉제가 시작되기 전 회사를 떠나려는 은행원들의 셈법도 희망퇴직을 선택한 원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10~15년 차 젊은 직원의 희망퇴직 신청이 평년에 비해 대폭 늘었다.

    12년 차 은행원인 워킹맘 A씨는 “최근 회사에 난 희망퇴직 공고를 보고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이참에 목돈을 받고 나와 육아에 매진하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좀 더 버텨보기로 했다. 하지만 은행원은 대부분 이 직업을 더는 안정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라도 먼저 은행을 떠나는 사람이 승자’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당수 은행업 종사자는 더는 은행을 꿈의 직장으로 생각지 않는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관계자는 “현재 금융계 인력구조를 보면 전형적인 ‘항아리 형태’로 고연령, 고임금자가 상당히 많이 포진해 있다. 이들에 대한 구조조정은 기업의 선순환 차원에서 어느 정도 의미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문제는 젊은 직원들의 이탈이다. 업무 특성상 은행업을 그만둔 뒤에는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나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강한 듯하다”고 말했다.

    젊은 은행원들이 은행에서 미래를 찾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숨 막힐 정도로 옥좨오는 회사의 실적경쟁 탓이 크다. 은행별로 신상품이 출시될 때마다 직원에게 할당되는 배당이 도를 넘어서는 등 업무 외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들어 노동·금융·공공기관 개혁을 앞세워 각 기업에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잣대를 들이댔고, 회사 역시 직원들에게 점점 더 강도 높은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금융권 구조조정이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지만 최근 들어 그 방향성이 더 비뚤어져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기업에 부는 구조조정 바람도 매우 거세다. 인터넷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 조사에 따르면 30대 그룹 직원 수가 9개월 사이 1만4000여 명이나 줄어들었다. 그중 삼성그룹이 9000명 넘는 인력을 구조조정 및 계열사 합병을 통해 감축, 재배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12월 16일 기준 삼성그룹 22개 계열사 직원 수는 21만2496명으로 2015년보다 9515명(4.3%) 줄었다. 특히 2016년 명시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삼성물산 등 5개 계열사에서 상반기 감소한 직원 수는 5729명에 달한다.

    최악의 경영 악화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 중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3사에서도 600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2015년 말 직원 3만7807명에서 2016년 9월 말 3만3697명으로 4110명(10.9%)이 감소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할 뿐, 최근 정부가 발표한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따르면 2018년까지 조선·해운업 종사자 2만여 명이 구조조정될 예정이다.

    이 틈을 타 금융업계는 조선·해운업 희망·명예퇴직자들의 자금(퇴직금) 유치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은행업 관계자는 “요즘 전국 각지 은행원과 증권맨은 대형 조선·해운사가 몰린 경남 울산·거제 등에 가려고 부산행 기차에 올라타기 바쁘다. 어려운 사정에 놓인 이들을 상대로 영업한다는 게 조심스럽지만, 중요한 노후자금을 잘못된 투자로 날리지 않도록 안정적인 재무설계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희망퇴직은 우회적 불법해고”

    문제는 우리나라 대기업이 구조조정에 점점 더 무감각해져 간다는 점이다. 경영악화 책임을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풍토가 너무 당연시되는 탓이다. 더욱이 희망퇴직, 명예퇴직 등은 정리해고와 달리 법적 규제도 존재하지 않아 기업이 구조조정을 목적으로 가장 쉽게 꺼내 드는 카드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명예퇴직치고 불명예스럽지 않은 퇴직이 없으며, 희망퇴직의 또 다른 말은 강요퇴직이다. 정리해고를 진행할 때는 회사가 해고 회피 노력을 다했는지, 경영상 얼마나 긴박한지 등을 소명한 뒤 근로자를 퇴사시킬 수 있는데, 희망·명예퇴직은 근로자가 자진해 퇴사를 선택했다는 점을 들어 어떤 제재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분명 우회적 불법해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역시 구조조정은 기업 경영 자구책 가운데 가장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연구위원은 “무조건 사람을 자르고 보는 방식은 우리나라이기에 가능하다. 유럽은 노동시간 단축 등 근로기준 조정을 통해 기업 경영 활성화를 모색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독일 자동차기업 폴크스바겐은 1994년 경영악화에 시달릴 때 ‘주 4일 근무’를 혁신적으로 추진한 결과 직원 감원을 피하면서도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희망퇴직의 더 큰 그림자는 퇴사 후 이들이 맞닥뜨릴 혹독한 현실이다. 희망퇴직자 대부분이 ‘인생 플랜B’를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회사 밖으로 나올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몇억 원에 해당하는 거액의 퇴직금을 챙겨 나온다 해도 새롭게 경제활동을 하지 않을 경우 노후생활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40, 50대 직장인은 중고교생 자녀학자금 등 고정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재취업이 어려운 경우 대부분 자영업으로 눈을 돌리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본전을 찾기도 어렵다. 직장인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번지는 “안이 전쟁터면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요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다.

    안진걸 사무처장은 “일부 기업은 희망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인생설계를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는 미지수다. 결국 퇴직자 대부분이 자영업을 선택하지만 사업에 성공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본전도 찾지 못한 채 신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이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재계에서는 노동시장 개혁을 통한 고용 유연성 제고, 사회안전망 확충, 재취업 활성화를  주장하지만 이 역시 모두 원론에 그치고 있어 구직자, 실업자 모두 답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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