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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소통 부재 사생아 ‘석궁 테러’

  • 윤용규 강원대 법대 교수·형법학

소통 부재 사생아 ‘석궁 테러’

소통 부재 사생아 ‘석궁 테러’
이른바 ‘석궁 테러사건’을 접하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다. 모름지기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으므로 일정한 절차를 거쳐 가해자에게 처벌이 내려질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사건이 해결된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해자에게 일말의 동정론을 펼치는 데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여느 폭력사건과 무엇이 다르기에 우리 마음을 이토록 무겁게 하는가. 사람의 생명을 위태롭게 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행위의 극단성과 예외성 때문인가. 아니면 가해자가 전직 교수이고 피해자가 부장판사이기 때문인가.

물론 이런 사유들은 어느 하나만으로도 우리를 안타깝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사유들은 어느 사건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문제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사건의 흐름에 있다. 어느 한 평범한 시민이 두 차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결국 가해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답답한 것은 이 사건이 대법원까지 간다고 해도 결과가 달라지리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건의 발단에서 지금까지 결코 짧지 않은 기간에 가해자의 주장과 행동, 관련 판결문과 사건 후 주심 판사가 공개한 글을 보면 수많은 말과 주장은 있었으나 진정한 대화는 없었다.

가해자는 분명한 이유 없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다.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반대심문권을 행사하지 않았으며, 법정에서 권리 주장과 자기방어를 해야 할 시점에 출석하지 않았다. 그는 변호인의 조력조차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한 1인 시위를 했다. 사법부에 호소하면서도 정작 사법제도를 불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의사소통을 원하면서도 자의든 타의든 소통을 거부했다. 이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고립의 길을 가게 했는지, 그것이 그가 몸담았던 학교재단인지 사법제도인지, 아니면 그 자신인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에 ‘막힌 사회구조’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대화를 통한 의사소통은 사회를 유지하는 근본 요소라는 점에서 가정과 직장은 물론 재판에서도 대화는 핵심이다. 사회 일각의 소통 단절은 누구도 원치 않는 병리현상이며, 이 사건은 그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막힌 사회 출구 못 찾으면 사건은 반복

그러므로 이 사건을 ‘사법부에 대한 정면 도전’ ‘사법부의 권위 훼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피상적인 진단이다. 사건 직후 사법기관은 이러한 시각에서 단호하게 반응했다. 대법원은 법관경호대책을 논의했고, 법무부 장관은 법질서 확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검찰총장은 범행 동기와 사건발생 경위 등 사건 전말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물론 다 필요한 사항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사태의 책임을 은근히 국민에게 돌리고 말았다.

판사가 테러를 당했다는 사실은 분명 놀라운 일이며, 말 그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없다. 그리고 사법부는 이미 오랫동안 도전받아 왔다. 구속영장 발부에 대한 형평성에서부터 요즘 매체에 오르내리는 사건들의 처리에 이르기까지 사법기관은 내부로부터 도전받았으며, 그만큼 권위와 신뢰가 실추된 상태다. 거대한 도전은 애써 외면하다가, 단편적이고 이례적인 이 사건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은 마치 이 사건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의도로 비치기까지 한다.

‘석궁 테러사건’은 ‘소통 단절’이라는 사회병리 현상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화 부재의 원인은 무수히 많으므로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 회복 노력은 지극히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총체적으로 연대해 ‘막힌 사회구조’의 출구를 찾지 않으면 이러한 사건은 반복, 확산될 것이다.



주간동아 571호 (p104~104)

윤용규 강원대 법대 교수·형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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