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1

2007.01.30

라이스 총연출, 힐 주연, 친한파 조연

네오콘 퇴조 이후 부시행정부 한반도정책 실세들

  • 최형두 문화일보 워싱턴 특파원

    입력2007-01-24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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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스 총연출, 힐 주연, 친한파 조연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1월16일 독일 베를린에서 전격적으로 만나 6자회담 재개 방안을 논의할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중동을 방문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회담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같은 시간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해 탈레반 세력의 재기 등을 막기 위한 미군의 추가투입 방안을 모색 중이었다.

    같은 날 워싱턴에서는 딕 체니 부통령의 최측근이던 루이스 리비 전 비서실장에 대한 ‘중앙정보국(CIA) 직원 신분노출사건(리크 게이트)’ 관련 재판이 열렸다. 미 언론은 이날 판사와 검찰, 변호인단이 배심원단 선정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체니 부통령의 증인 채택 가능성에 대해서도 크게 다뤘다. 왜냐하면 루이스 전 비서실장은 체니 부통령이 대북정책을 비롯해 모든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상의할 만큼 최측근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이뤄진 위의 네 가지 일은 현재 부시 행정부 내의 대북정책 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들이다. 먼저, 북핵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가 북한 측 수석대표와 단둘이 만나는 것은 지금까지 금기사항이었다. 미국 측은 그동안 6자회담의 틀을 고집하면서 회담장 주변에서 북측과 만나거나, 6자회담 직전에 베이징에서 중국의 초청 형식으로 북한과 만났다. 베를린 회동은 형식만으로도 미국 측의 대화 의지가 돋보이는 것이었다. 16일에 이어 17일에도 열린 북미 간 회동 뒤에는 김계관 부상이 미국 측 대표를 북한 대사관건물 밖까지 배웅해 눈길을 끌었다. 베를린은 90년대 이후 미국과 북한이 협상 돌파구를 열었던 장소였다는 점도 양측의 신뢰 구축 과정에서 긍정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퇴조하는 대북강경 분위기

    라이스 국무장관과 게이츠 국방장관의 분주한 움직임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수렁에 빠진 미 행정부의 처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라이스 장관은 지난 연말 국무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협상을 ‘예술’이라고 표현하면서 외교적 해법을 강조한 뒤, 중동 평화문제와 이란 핵문제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게이츠 장관도 지난해 중간선거 이후 전격 경질된 도널드 럼즈펠드 전 장관의 자리를 이어받은 뒤 부시 대통령의 새로운 이라크 전략 추진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사태악화에 따른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북미 제네바합의를 이끌어냈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월시 외교대학원장은 최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는 집권 이후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부시 2기 행정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라이스 장관은 이전(콜린 파월 국무장관 당시)과 달리 국방부 등의 엄청난 적대적 (대북정책) 분위기에서도 벗어나 있다”면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낙관할 수는 없어도 희망이 있다고 믿을 만한 여러 이유가 있다”고 내다봤다.

    라이스 장관은 1월11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곧 재개될 6자회담(six-party talks about to begin again)’이라는 뜻밖의 표현을 써 주목을 받았다. 결과를 놓고 미뤄보면, 베를린 북미회동 계획 등 수면 아래의 움직임을 근거로 자신 있게 한 말이었다. 그는 이미 지난해 12월19일 미 국무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북핵 협상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 적이 있다. 전임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이 부시 행정부 초기에 “새 행정부의 대북정책도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을 이어간다”고 말했다가 부시 대통령의 진노를 사서 곧바로 말을 바꿔야 했던 궁색한 처지와는 대조적이었다.

    라이스 총연출, 힐 주연, 친한파 조연
    그는 기자간담회 며칠 전 북핵 협상을 부시 행정부 임기 전에 매듭짓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북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해결해보라’는 부시 대통령의 위임이 없다면 쉽게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실제 부시 행정부로서는 이라크, 이란 등의 문제 때문에 북한까지 전선을 확대할 여력도 없거니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같은 공화당 쪽 현실주의자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키신저는 지난해 11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북한처럼 자원도 없고 상대적으로 인구도 적은 나라의 도전에 맞서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을 이루지 못하면 외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호소는 점점 더 공허해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라이스 장관의 국무부 연말기자 간담회 발언을 살펴보면 대북정책에 대한 상당한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이날 간담회의 압권은 ‘예술’ 발언이었다. “이건 과학이 아니고 예술이에요. 외교는 예술입니다.” 북핵 6자회담에서 ‘행동 대 행동’의 일대일식 주고받기 협상은 소모적임을 강조하기 위해 쓴 표현이었다. 즉 “좀더 광범한 조치들을 통해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협상을 희망한다”는 얘기였다.

    보폭 넓히는 크리스토퍼 힐

    베를린 회동의 주역인 힐 차관보는 지난해 미 의회가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 재조정을 촉구하며 국방수권법안에 끼워 통과시켰던 대북정책조정관의 자리에 사실상 내정된 상태다. 라이스 장관이 그를 부시 대통령에게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이후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도 대북 직접대화를 주장하면서 힐 차관보의 입지를 넓혀주고 있다. 민주당 출신의 하원 외교위원장 톰 랜토스 의원도 이미 힐 차관보의 대북정책조정관 내정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힐 차관보는 지난 12월 베이징 6자회담에서 북한 대표단에게 ‘벅찰 정도’의 협상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연초 워싱턴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미국 측의 제안은 김계관 부상 등 북한대표단이 평양에 돌아가서 상의하거나 훈령을 받지 않고서는 답을 줄 수 없을 정도로 벅찬 내용이었다”고 소개했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북한 측은 미국 측이 이런 정도의 제안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던 것 같다”면서 “북측은 마카오의 뱅코델타아시아(BDA)에 동결돼 있는 북한계좌 해제만을 되풀이해서 주장했고 북측의 답답한 태도 때문에 힐 차관보가 상당히 흥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이 제안한 내용에 대해선 “북한이 국제정세를 잘못 읽거나 핵보유 전략을 굳힌 것이 아니라면 북한으로서도 거부하기 힘든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보수적 국제주의자’ 네그로폰테

    미국 정보기관들을 총괄하는 ‘차르(황제)’로 불렸던 존 네그로폰테 국가정보국(DIA) 국장이 연초에 국무부 부장관으로 내정되자 여러 추측이 나돌았다. 라이스 장관이 지난 여름 로버트 졸릭 부장관이 월가로 떠난 뒤 부시 대통령에게 유엔대사 등을 거친 베테랑 외교관 출신 네그로폰테 국장을 부장관으로 임명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점이 주요 배경으로 소개됐지만, 정반대의 분석도 있다. 즉, 네그로폰테 국장은 이라크사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불리한 정보를 생산해왔을 뿐 아니라 미 국가안보국(NSA) 감청 등의 정보수집 강화를 지시해온 딕 체니 부통령의 지시에 반발했기 때문에 ‘제거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어찌 됐건 네그로폰테가 국무부 부장관에 임명되면 앞으로 라이스 장관은 이란 핵 문제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상에 주력하고, 부장관은 부시 대통령의 새 이라크 정책 수행, 북핵, 중국 문제 등을 책임질 전망이다.

    이념보다는 실질적 해법을 중시하는 보수적 국제주의자로 평가받는 정통 외교관 출신 네그로폰테의 북한관은 원론적이다. 그는

    1월11일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이 지난해 미사일과 지하 핵실험을 잇따라 실시한 이후 세계 안전에 심각한 위험으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증언의 초점은 알카에다 등 테러리스트 조직의 위협 등에 관한 것이었다. 네그로폰테는 1970년대 말 리처드 홀브루크 당시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밑에서 한국 업무를 담당한 경험이 있다. 대북정책에 대한 그의 임무는 라이스 장관이 구축해놓은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친한국 성향 국무부 실무 주역들

    캐서린 스티븐스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뒤 한국인과 결혼했다. 지난해 3월 북미 간 첫 금융제재와 관련한 뉴욕 접촉 때 국무부 대표로 참석했던 그는 최근 휴가를 부산에서 보냈다. 부산 미 문화원장을 지낸 추억 때문이다. 하지만 80년대 초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이후 문화원이 문을 닫고, 부산이 80년대 반미운동의 출발지처럼 묘사돼온 상황을 안타까워한다는 후문이다.

    모린 코맥 국무부 한국과 부과장도 주한 미 대사관 공보관과 광주 문화원장을 역임하며 자녀들을 한국에서 출산했다.

    한국계의 진출도 눈에 띈다. 성 킴(한국명 김성용) 국무부 한국과장은 주한 미 대사관 정무팀 출신으로 한국어가 유창하다. 역시 한국어가 유창한 유리 킴(한국명 김유리) 북한팀장도 한국계로 주한 미 대사관 정무팀 출신이다. 주한 미대사 출신의 힐 차관보 인맥인 셈이다.

    연초부터는 한국계 발비나 황 박사(전 헤리티지재단 연구원)가 힐 차관보의 특보로 가세했다. 조만간 조지타운대 교수로 돌아갈 것으로 알려진 백악관 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국장 빅터 차 박사는 지난 12월 베이징 6자회담 때 미국 측 차석대표를 맡았다.

    라이스 장관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사이 국무부를 떠난 측근도 있다. 지난해 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과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동시에 논의하는 ‘광범위한 새 대북 접근법’을 제안했던 필립 젤리코 장관 자문관은 연말에 버지니아 대학교수 자리로 떠났다. 스탠퍼드 교수 시절 라이스 장관과 독일통일 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을 정리한 책(‘독일통일과 유럽의 변환’)을 함께 썼던 젤리코 자문관의 이직 이유를 놓고 ‘두 사람 간 인식의 틈’이 생겼다는 얘기도 나돌지만, 워싱턴 내의 분석은 다르다. “늦기 전에 공직을 떠나야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워싱턴의 공공연한 비밀이 배경이라는 것. 그는 지난해 11월27일 “대학 복귀도 미룰 수 없고 (아이들 대학 학자금을 위해) 대학의 재정 도움도 필요하다”고 사임 이유를 밝혔다.

    국방부 변화

    게이츠 새 국방장관은 ‘전통적인 스코크로프트파’로 알려져 있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선임보좌관은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던 브렌트 스코크로프트처럼 게이츠는 전통과 동맹을 배려하는 성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스코크로프트 등 ‘아버지 부시’ 시절의 외교안보팀은 동맹을 고객(customer)처럼 배려했다”면서 “동맹관계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이들은 동맹을 지원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관련해서도 “럼즈펠드 장관이 공격적으로 밀어붙여 한미 관계에 상처를 남긴 것과 달리 게이츠 장관은 더욱 신중한 절충 방안을 찾으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럼즈펠드 장관은 노무현 행정부에 좌절감을 느낀 탓에 매우 전술적으로 한미 군사관계를 다뤘지만 게이츠는 좀더 전략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시 작전권 환수 문제와 관련해서도 럼즈펠드 장관은 매우 급하게 밀어붙였지만 게이츠는 좀더 신중하게 다룰 것이라고 분석했다.

    커트 캠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부소장도 “럼즈펠드 장관은 한국에 대해 많이 우려하며 더 이상 동맹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게이츠는 다를 것”이라며 “이런 점은 아무도 공식적으로 얘기하지 않지만 한미 관계를 다시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재 한국 담당인 리처드 롤리스 부차관은 건강 문제 때문에 새 장관 아래서 오래 머물려고 하지 않으리라는 게 워싱턴 전문가의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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