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8

2007.01.09

아내 골프 가르치다 부부싸움 할라

  • 입력2007-01-08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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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 골프 가르치다 부부싸움 할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버지에게서 골프를 배우는 일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요즘이야 우리 낭자들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우승이 하도 다반사라 뉴스거리가 못 되지만 1990년대 후반 박세리 혼자 고군분투하다 우승을 낚아채자 라디오는 속보로, 신문은 1면에 기사를 올렸다. 뒤이어 김미현이 뛰어들어 또 우승트로피를 치켜들고 최경주마저 미국프로골프(PGA)에서 우승컵을 품에 안자 우리나라 골프연습장 풍속도가 확 달라졌다. 부모들이 자식들을 줄줄이 끌고 온 것이다.

    서울 북악스카이 연습장 입구엔 이런 경고문이 붙어 있다. ‘당 연습장 소속 프로 외엔 이곳에서 골프 레슨을 삼가주십시오.’

    잦은 잔소리에 감정 격해지고 고성 오가기 일쑤

    바로 내 앞 타석의 비대한 40대 아버지는 경고문을 무시한 채 중학생 아들을 열나게 교육(?)시키고 있었다.

    “채를 던지듯이 팔로스루를 해야지 왜 잡아당겨?”



    “임팩트를 할 때 머리는 볼 뒤에 있어야지, 임마.”

    아들을 달달 볶던 아버지가 마침내 아들의 클럽을 빼앗아 들더니 타석에 섰다. 나는 연습을 멈추고 아버지의 시범을 보다가 그만 한숨을 토하고 말았다. 모든 걸 뜯어고쳐야 할 사람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였다.

    고향 친구 넷이서 골프 약속을 했는데 한 녀석이 고모님 상을 당해 빠지게 되었다. 셋이서 치겠구나 생각했는데 싱거운 친구가 부인을 데리고 나왔다. 나도 잘 아는 터라 반갑게 인사하고 넷이서 티오프를 했는데 골프 시작하고 세 번째 필드를 밟는다는 그 부인. 첫 티샷 쪼로(토핑)를 시작으로 온갖 낭패를 다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오르고 덩달아 남편인 친구의 얼굴도 달아올랐다.

    “그렇게 입이 닳도록 말했는데 고개는 와 치켜드노!”

    남편의 잔소리가 끝없이 이어지다가 본격적인 레슨이 시작되었다.

    “어드레스를 이렇게 하니 슬라이스가 안 나고 배겨!”

    어깨를 잡고 틀었다가 당겼다가 우리는 아랑곳없이 “다시 하나 쳐봐. 내 시킨 대로.”

    진행이 늦어지자 이 친구, 어느 홀에서는 자신은 공치기를 포기하고 부인한테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솔숲으로 처박힌 공을 찾으러 간 부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싶더니 친구 부인이 클럽을 던져버리고 클럽하우스로 잰걸음을 하는 것이었다. 찔뚝 없는 남편, 솔숲에서 나오며 “다신 골프 하지 마” 냅다 고함을 지른다.

    내가 달려가서 “민 여사, 왜 이래요? 저 친구 괜히 저래요. 우리 집사람보다 훨씬 잘 치는데요 뭐.”

    통사정해서 돌아오니 이놈의 친구 “왜 남의 마누라 허리를 안고 그래?” 야단이다.

    우리 대학 다닐 땐 골프가 뭔지도 몰랐는데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대학에서도 체육선택으로 골프를 배운다나. 골프에 빠진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들녀석이 ‘골프가 뭐기에?’ 하며 대학에서 골프를 배워, 군대 가서도 골프를 연마하고 제대한 뒤에도 연습장을 다니더니 젊음의 유연함 때문인지 이제 프로 같은 폼을 자랑한다.

    가끔씩 아들녀석과 라운드할 때가 있다. 제 밥벌이는 하는 터라 자기 그린피는 직접 내도록 했다. 그런데 아들녀석, 라운드할 때마다 꼭 내기를 하잔다. 아무리 스윙 폼이 좋고 거리가 더 난다 해도 내기에서는 연륜이 목소리를 내는 법이다. 홀마다 부자간에 돈을 주고받기 민망해서 라운드를 마치고 스코어 카드로 계산하는데, 내가 졌을 때는 ‘칼같이’ 받아가던 녀석이 자기가 졌을 땐 영 계산이 흐리멍덩하다.

    ‘아버지한테 골프 배우지 마라. 마누라에게 골프 가르치지 마라. 아들과 골프내기 하지 마라.’

    미국의 골프 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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