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7

2016.12.14

안보

“4차 때와 바뀐 게 없다” 韓美日 추가 독자제재했지만…

유엔 안보리 제재 후 줄줄이 발표…北은 ‘남진’ 도발 협박, 中은 독자제재 반대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6-12-09 17:4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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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대북제재 결의안 2321호를 채택한 직후 한미일 3국이 독자적인 대북제재를 잇달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우리 정부는 개인 36명과 단체 35개를 금융 제재 대상에 새로 추가했다. 개인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 핵심 인사 32명과 중국인 4명이고, 단체는 조선노동당과 국무위원회 등 북한 단체 34개와 중국 단체 1개다. 제재 대상 가운데 중국 단체 1개와 중국인 4명은 9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된 물자 거래를 지원한 것으로 드러난 단둥훙샹(鴻祥)실업발전, 그리고 해당 회사의 마샤오훙(馬曉紅) 대표를 비롯한 훙샹 관계자 4명이다.

    우리 정부가 중국 본토 기업과 중국인을 직접 제재 대상에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3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 채택 직후에 결정한 독자제재까지 더해 우리 정부의 독자 대북제재 대상은 모두 69개 단체, 개인 79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우리 국민과 외환·금융거래가 금지되고, 국내 자산 동결 조치의 대상이 되며, 국내 입국도 제한된다. 이는 물론 상징적인 조치다.

    제재 대상 가운데는 고려항공도 포함됐다. 노동자의 해외 송금 및 현금 운반, 금수물자 운송에 관여한 혐의 때문이다. 북한 고위층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봉화병원도 사치품 유입 등 이유로 제재 대상에 올렸다. 이 밖에 북한에 기항한 외국 선박의 국내 입항 불허 기간을 기존(3월 독자제재 당시) 180일에서 1년으로 늘렸다. 또 국내에 거주하는 핵·미사일 관련 외국인 전문가가 북한을 방문해 우리 국익을 위해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되면 국내 재입국을 금지하도록 했다. 그리고 북한의 제2 외화 수입원인 임가공 의류가 중국산으로 둔갑해 수입되지 않도록 국내 의류 관련 협회와 단체를 대상으로 계도활동을 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의 독자제재 역시 우리 정부의 독자제재와 궤를 같이한다. 미국은 고려항공을 비롯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관련 단체 16개와 개인 7명에 대한 독자제재를 단행했다. 미국의 독자제재 대상에 오르면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인 및 미국 기업과 거래가 금지된다. 미국 독자제재의 특징은 대량파괴무기와 간접적으로 관련된 단체까지 제재 대상에 올리고, 나아가 북한의 주요 외화 수입원인 해외 노동력과 금융, 광물, 에너지 등 전방위로 제재 대상을 확대한 점이다.

    특히 미 재무부가 성명을 통해 “해외 노동력 송출 회사의 수입이 북한 정부와 노동당으로 유입되고 해외 노동자가 버는 수입의 일부를 북한 군수산업부에서 사용하고 있다”며 북한 해외 노동력 문제를 구체적으로 꼬집은 대목은 특히 주목해야 한다. 일본 정부도 독자적인 대북제재 방안을 마련해 조만간 확정할 예정인데, 일본의 독자제재 대상에도 한국과 미국이 결정한 제재 대상 인물이나 단체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 안보리의 새 대북제재 결의안 이후 첫 이행 사례가 이집트 기업에서 나왔다. 북한에서 휴대전화 사업을 하는 이집트 통신회사 오라스콤이 북한 내 금융 자회사인 오라뱅크(Orabank)의 평양지점 폐쇄를 결정했다고 이집트 언론이 보도했다. 오라스콤은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제재에 따라 북한 내 모든 금융활동을 중단하고 오라뱅크 평양지점을 철수한다고 밝혔다. 2008년 4억 달러(약 4672억 원) 투자 조건으로 북한 이동통신사업권을 따낸 오라스콤은 북한 체신성과 합작으로 ‘고려링크’를 설립해 북한에서 휴대전화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 얻은 수익을 본국으로 가져오지 못하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업 철수 관측이 끊이지 않았다. 오라뱅크 평양지점 폐쇄 결정 이후 나기브 사위리스 오라스콤 회장도 내년 1월 1일 사임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사임 이유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역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조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라스콤은 “고려링크는 북한에서 계속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北 반발…김정은 ‘남진’ 언급

    유엔 안보리가 새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한 데 대해 북한 외무성은 “강력히 규탄하며 전면 배격한다”고 반발했다. 외무성은 “미국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유엔 안보리가 자기의 권능을 벗어나 우리 공화국의 자위권을 부정한 또 한 차례의 월권행위, 주권침해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 발전권을 전면 부정한 이번 제재 결의안 조작은 우리의 좀 더 강력한 자위적 대응 조치를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결의안 채택 이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김정은은 백령도와 연평도, 서울 등 수도권을 타격 목표로 설정한 북한군의 포병사격 훈련을 지도했다. 북한 매체들은 불을 내뿜는 사격 사진과 함께 ‘김정은 위원장이 12월 1일 강원 원산지역 해안에서 조선인민군 전선포병부대 포병대들의 집중 화력타격 훈련을 지도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김정은은 “정의의 전쟁 발발과 함께 서남전선 포병부대들의 터쳐(터뜨려) 올리는 승전의 포성은 남진하는 인민군 부대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남진(南進)’은 남침을 뜻하는 것으로, 김정은이 집권 이후 ‘남진’을 언급했다고 보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김정은은 또 “첫 타격에 남조선 것들의 대응 의지를 완전히 꺾어놓고, 그래도 단말마적으로 발악하는 놈들이 있다면 아우성칠 놈, 비명 지를 놈도 없이 모조리 쓸어버려야 한다”고 위협했다. 이에 우리 군은 북한의 위협을 강력 규탄하면서 “북한이 도발하면 단호하게 응징하겠다”고 경고했다.

    12월 4일 조선중앙통신은 구체적인 일정은 밝히지 않은 채 ‘김정은 위원장’이 부인 이설주와 함께 2016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술 경기대회를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이설주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3월 28일 김정은과 함께 평양 보통강변에 새로 건설된 미래상점을 방문한 이후 8개월여 만이다. 김정은은 대회 참관 뒤 “비행지휘 성원들과 전투비행사들은 훈련하고 또 훈련해 최후 공격 명령이 내려오면 일격에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침략의 본거지들을 가차 없이 초토화해버리고 남진하는 인민군 부대에게 진격의 대통로를 열어주라”고 말했다.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5주기, 24일 김정일의 모친 김정숙 출생일과 김정일 인민군 최고사령관 추대 25주년, 30일 김정은 인민군 최고사령관 추대 5주년 등 12월에는 각종 기념일이 있어 북한이 이를 앞두고 도발을 재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하규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12월 5일 “북한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와 한미일 독자제재에 대한 반발, 그리고 국내 정세의 어려운 상황과 미국 정권 교체기를 호기로 오판해 전술적·전략적 도발을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련 동향을 철저히 추적,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머스 밴달 주한미군 8군사령관도 12월 6일 “북한이 30일에서 60일 이내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中, 독자제재 반대…美, 中 기업 제재 경고

    중국 정부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찬성하면서도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제이(劉結一) 유엔주재 중국대사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대북제재 결의안 2321호가 만장일치로 통과된 뒤 “한반도 상황이 민감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긴장을 유발하는 행동이나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관련 당사국들이 이른 시일 내 대화와 협상 재개에 관심을 가지고 가능한 한 서둘러 6자회담을 재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미국, 일본, 북한, 중국, 러시아 6개국이 참여하는 6자회담은 2003년 구성돼 2008년 12월 회담이 중지됐고, 2009년 4월 북한이 일방적으로 6자회담을 탈퇴했다.

    중국 정부는 한국과 미국, 일본이 독자제재에 나서는 것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월 2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의 틀 외 독자제재를 하는 것을 일관되게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겅 대변인은 “독자제재를 핑계로 중국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면서 “각 당사국이 자극과 긴장 대립을 피하고 신중하게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 매체들 역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됐는데도 한미일이 독자제재를 추가하는 것은 문제’라며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 측의 태도에 미국 정부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중국 기업을 직접 제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12월 2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만일 중국 기업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이행하지 않고 북한의 거래금지 대상 기업을 돕는 것이 적발된다면 중국 측에 그 사실을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관련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북한의 값싼 석탄을 이용하는 중국 철강기업에 대한 제재를 검토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펼쳐지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1월 4차 핵실험 이후의 그것과 유사하다. 미국과 중국이 대북제재 방식과 관련해 장시간 논의를 거쳐 ‘역대 최강’이라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하고 곧바로 한미일 3국을 중심으로 각국이 독자제재를 진행한 점, 대북제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중국의 적극적인 동참을 압박하지만 중국은 안보리 외 각국의 독자제재에 반발한 점이 그렇다. 3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제재 조치로 북한이 치명타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졌다. 하지만 최소한 북한의 주요 외화 수입원인 임가공업 분야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해 중국 대북사업가들이 전한 소식을 필자는 ‘주간동아’ 지면을 통해 수차례 전한 바 있다.

    북한과 오랫동안 사업을 진행해온 세계 각국 대북사업가들은 처음엔 제재 결정에 놀라 납작 엎드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재가 형식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북제재는 말로 하는 것”이라는 비웃음 속에서 북한 노동자들은 “일감이 너무 몰린다”며 아우성치고 있다. 이처럼 제재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배경에는 대북 거래를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중국의 묵인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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