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7

2016.12.14

커버스토리

헌법 최종 수호자는 국민

국회·헌재 넘어 주권자로서 저항권 행사 가능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12-09 17: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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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가 탄핵을 부결한다면 이제는 촛불민심이 쓰나미처럼 국회로 몰려가 국회를 집어삼킬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12월 7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국민주권운동본부 서명운동’ 현장에서 한 발언이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저항권에 기초한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이지 국회의 권리가 아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발표한 시국선언문의 일부다. 비선(秘線)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의 실체가 차츰 드러나면서 국민적 분노도 커지고 있다. 반면,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 탄핵 의결이 갖가지 이유로 지연되자 저항권에 대한 논의가 확산하는 상황이다.





    “저항권은 주권자가 가진 헌법상 권리”

    저항권은 말 그대로 국민의 ‘저항할 권리’를 뜻한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권력이나 국가기관이 헌법질서를 유린할 때 이를 바로잡고자 주권자인 국민이 나설 수 있는 권리가 저항권”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연방공화국기본법(기본법)에는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있다. 기본법 제20조 1항 ‘독일연방공화국은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연방국가이다’, 2항 ‘모든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후략)’ 등을 거쳐 4항에 이르면 ‘모든 독일인은 이러한 질서의 제거를 감행하는 자에 대하여 다른 구제수단이 가능하지 아니한 경우,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는 선언이 나온다.  

    우리 헌법에는 이 같은 조항이 없다. 헌법 전문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부분을 일반적으로 저항권의 근거로 삼을 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치권 등에서 저항권을 언급하는 건 초헌법적 발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1980년 5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 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후 ‘내란목적살인’ 등 죄목으로 재판받을 당시 대법원도 ‘헌법 및 법률에 저항권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이 없는 우리나라의 현 단계에서는 저항권이론을 재판의 준거규범으로 채용, 적용하기를 주저 아니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80도306). 이때 대법원은 ‘4·19 의거’를 언급한 헌법 전문을 저항권의 근거로 보는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임항준 당시 대법원 판사는 이 판결문 소수의견을 통해 ‘헌법 전문을 법률적으로 평가하면 우리나라 헌법은 4·19 거사를 파괴되어가는 민주질서를 유지 또는 옹호하려는 국민의 저항권 행사로 보았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헌법이 인정한 것으로 보여지는 저항권을 사법적 판단에서는 부정할 수가 있을는지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같은 의견이다. 한 교수는 “헌법 전문뿐 아니라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선언한 국민주권주의 원칙을 통해서도 저항권은 당연히 보장된다”며 “이것이 학계 다수의 견해이고, 헌법재판소 또한 여러 차례 저항권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말했다.

    1987년 헌법 개정을 통해 탄생한 헌법재판소(헌재)는 97년 9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대한 위헌제청’ 사건 판결(97헌가4)에서 ‘저항권은 국가권력에 의하여 헌법의 기본원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행하여지고 그 침해가 헌법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서 다른 합법적인 구제수단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 국민이 자기의 권리,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실력으로 저항하는 권리’라고 밝혔다.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2013헌다1) 때도 ‘저항권은 공권력의 행사자가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거나 파괴하려는 경우 이를 회복하기 위하여 국민이 공권력에 대하여 폭력·비폭력, 적극적·소극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는 국민의 권리이자 헌법수호제도를 의미한다’고 했다.

    이 결정문을 통해 헌재는 저항권 발동의 구체적 기준도 제시했다. ‘저항권은 공권력의 행사에 대한 ‘실력적’ 저항이어서 그 본질상 질서교란의 위험이 수반되므로, 저항권의 행사에는 개별 헌법 조항에 대한 단순한 위반이 아닌,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전체적 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있거나 이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고, 이미 유효한 구제수단이 남아 있지 않아야 한다는 보충성의 요건이 적용된다. 또한 그 행사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 회복이라는 소극적인 목적에 그쳐야 하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저항과 혁명은 다르다

    대다수 헌법학자도 저항권 행사가 헌정 질서를 전복하는 혁명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주권자는 ‘다른 모든 헌법적 수단을 동원해도 국가권력에 의한 헌법침해를 막을 길이 없는 경우’에 헌법수호를 위해서만 제한적으로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수사와 재판 등을 통해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사실이 분명히 드러날지라도 대통령의 책임을 물으려면 헌법과 법률의 탄핵 관련 규정을 먼저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매주 진행되는 촛불집회는 우리 국민이 헌법 제21조에 규정된 ‘집회·결사의 자유’를 통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주권자의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정치권과 헌재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헌정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국민이 요구한’ 탄핵절차가 국회의 탄핵소추안 부결이나 헌재의 기각 결정으로 무산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분명한 것은 주권자가 이미 촛불집회 등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한 줌밖에 안 되는 국회의원, 헌재 재판관 등이 이를 묵살한다면 매우 엄중한 상황이 올 것”이라는 얘기다. 신 교수는 “국민이 주권자라는 전제가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하면 탄핵이라는 제도를 넘어 주권자의 지위를 확인하는 게 필요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상희 교수도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한 국가권력의 행사는 폭력이다. 현재 대통령은 국민주권 원칙을 어기고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폭력을 행사했으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주권자가 탄핵절차 개시를 요구했다. 그런데 국회라는 대의기관과 헌법재판소라는 국가기관이 이러한 국민의 뜻과 다른 판단을 내린다면 이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주권자가 보기에 국회나 헌재의 결정으로 현재의 헌정유린 상황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주권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헌법상 권리를 행사하게 될 것”이라는 게 한 교수의 의견이다. 이 과정에서 ‘실력적’ 저항이 수반될 경우 사후적으로 이에 대한 법적 판단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헌재는 1995년 12월 헌법소원 사건(95헌마221 등) 결정문에서 ‘만일 국민이 완전히 자유롭게 주권적인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상태에서 내란행위에 대하여 승인을 하였다면 그 내란행위는 국민 전체의 의사에 의하여 정당화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떤 행위를 내란행위로 볼 것인지, 이를 형사적으로 처벌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권한은 최종적으로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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