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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암 줄기세포를 제거하라!”

암 재발이나 전이에 깊이 관여 … 암 치료 연구 방향 선회 필요성 설득력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이젠, 암 줄기세포를 제거하라!”

“이젠, 암 줄기세포를 제거하라!”
첨단 현대의학도 암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로 군림해온 암은 난치병의 대명사로 여전히 악명을 떨친다. 세계는 지금도 암과의 지루한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의학의 암 치료법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몇 단계를 거쳐왔다. 1950년대에는 종양 부위를 직접 잘라내는 수술법의 틀이 갖춰졌고, 1960년대엔 방사선 치료법이 본격화됐다. 1970년대 암세포를 공격하는 신물질 개발로 힘을 얻은 항암화학요법(항암제 치료)은 이제 신약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흔히 ‘3대 암 치료법’으로 불리는 이들은 이후 각기 기술적 진전을 보이며 지금도 암 치료에 적용되고 있다.

그리고 1980년대엔 면역력을 강화해 암세포를 물리치는 항암면역요법이 등장했고, 1990년대엔 암 유발 유전자를 제거하고 암 제어 유전자는 활성화하는 유전자 치료가 선보였다. 하지만 이들 치료법은 실험실을 벗어나 임상에서 암환자에게 직접 적용하기엔 많은 한계를 지녔던 것이 사실이다.

암 줄기세포 개념 국내 처음 소개

암 치료법의 연구 방향을 선회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최근 고개를 들고 있다. 그 중심에 선 것이 ‘암 줄기세포(cancer stem cell)’ 연구. 연구의 시발점은 암 조직에도 자체 생성력을 가진 줄기세포가 존재한다는, 무척 생소한 사실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간이나 신장 등 인체를 구성하는 장기엔 각기 고유한 성체줄기세포가 있다. 이 세포들은 장기가 손상을 받을 때 장기를 재생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런데 암 조직에도 일반 장기처럼 암 조직을 유지하는 구실을 하는 암 줄기세포가 존재하며, 이것이 암 치료 후 줄어든 암세포를 재생하는 데 관여함으로써 암의 재발이나 전이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암 줄기세포 연구의 핵심이다. 백혈병 등 혈액암은 물론 유방암·뇌암 등 고형암의 조직에도 암 줄기세포가 존재한다고 한다.

따라서 암 조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 암세포만 타깃으로 해온 기존의 암 치료보다는 암 조직의 극히 일부만 차지하면서도 암의 발병과 유지, 재발에 핵심 구실을 하는 암 줄기세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이 연구의 논리다.

암 조직에도 줄기세포가 존재한다? 사실이라면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 암 줄기세포의 개념이 처음 소개된 것은 1월20일 가톨릭대 의대 의과학연구원 강당에서 열린 ‘암 줄기세포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다.

암 줄기세포와 관련한 국내 최초의 심포지엄인 이 행사는 세계적으로는 싱가포르(2005년)에 이어 두 번째. 매스컴의 주목을 받지 못했음에도 340여명의 청중이 몰렸다. 대다수가 의사와 생명과학 연구자들로, 암 연구의 최신 동향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이젠, 암 줄기세포를 제거하라!”

암 치료법은 부단히 발전해오고 있다. 방사선 치료 장면.

암 줄기세포 연구의 선구자로 꼽히는 미국의 마이클 클라크 교수(스탠퍼드대학), 카밀라 포스버그 교수(스탠퍼드대학), 세미드 마줌더 교수(MD앤더슨 암센터), 일본의 신이치 니시카와 박사(이화학연구소) 등 7명의 저명한 외국 학자가 초청된 이번 심포지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암 줄기세포의 특징이다.

이들에 따르면 암 조직 내에서 암 줄기세포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1%. 하지만 암 줄기세포는 정상 줄기세포의 특징인 자가재생(self-renewal·줄기세포가 그 성격을 그대로 간직한 미분화세포로 증식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세포분열과는 다르다) 능력을 지녀 자신과 또 다른 미분화 상태의 암 줄기세포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암 덩어리의 대부분을 이루는 일반 암세포도 만들어낸다.

일반 암세포가 빠른 속도로 분열하고 증식하는 것과는 달리, 암 줄기세포는 성체줄기세포처럼 평소엔 증식을 하지 않는 ‘휴면기’를 가지다가도 때로 배아줄기세포처럼 무한한 증식능력을 보이는 두 가지 특질을 동시에 지녔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 때문에 화학요법, 즉 항암제로 암 조직을 공격해도 암 줄기세포는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암 줄기세포 연구에 따르면 암의 발병은 암 줄기세포의 이 같은 기능에 의한 것이거나 정상적인 줄기세포 혹은 거기서 분화된 세포에 돌연변이가 생긴 결과로 추정되지만, 명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가설은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이나 폐암 치료제인 이레사 등으로 정상세포를 제외한 특정 암세포만 공격하는 ‘표적치료법’을 적용해도 해당 환자에게서 암이 재발하는 현상을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

암 줄기세포는 개념상의 것이 아니라 실체가 확인됐다고 한다. 가톨릭대 의대 병리학교실 이정용 주임교수는 “암 줄기세포가 암을 일으키는 작동 메커니즘은 가설로 남아 있지만, 암 줄기세포의 존재 자체는 클라크 교수 등에 의해 밝혀졌다”면서 “그러나 현미경 등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다만 암세포를 특수 처리한 뒤 동물에 주입해 실험하는 과정에서 일반 암세포는 한두 번 분열하고 죽어버리는 반면 암 줄기세포는 끊임없이 증식하면서 살아남는 것을 알 수 있어 간접적으로 암 줄기세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암의 발병 원인은 여태껏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검증된 가설 또한 없다. 따라서 암 줄기세포 연구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암 줄기세포의 자가재생과 일반 암세포로의 분화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암 줄기세포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연구야말로 새로운 암 치료 기법을 찾는 데 기초적인 연구다. 암 줄기세포가 암 발병에 주된 구실을 한다는 가설이 명확히 밝혀지기만 한다면, 일반 암세포의 제거에만 초점을 맞춰온 기존의 암 치료법 연구는 획기적인 전환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물론 여기엔 학문적 인과관계가 검증돼야 한다는 전제가 우선한다.

“이젠, 암 줄기세포를 제거하라!”

1월20일 가톨릭대에서 열린 암 줄기세포 심포지엄.

암 줄기세포 연구가 새로운 암 연구 모델로 떠오르고는 있지만, 실제 암 치료법 연구를 위해서는 적잖은 한계가 존재한다. 우선 암 조직에서 암 줄기세포를 분리, 추출해내는 작업부터가 순탄치 않다. 하지만 연구를 위해서는 다량의 암 줄기세포 확보가 필수적이다. 또한 암 줄기세포를 조절하는 유전자나 단백질 등이 무엇인지도 규명해야 하는데, 이 역시 지극히 어려운 과제다.

그래서인지 이번 심포지엄을 참관한 의학자들의 반응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조금은 비판적이다. 연세대 의대 병리학교실 조남훈 교수는 “어찌 됐건 이미 증식해버린 암 조직을 없애는 것이 암 치료의 궁극적 목적인데, 암 줄기세포 연구가 진전될 경우 암의 시초를 설명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제 암 치료에 적용하려면 수많은 시간과 비용, 노력이 필요하다”며 “현재 암 줄기세포의 존재 또한 모든 암이 아니라 일부 암 조직에서 발견된 것이므로 학문적 의미는 있다 하더라도 치료 측면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젠, 암 줄기세포를 제거하라!”

암 줄기세포 연구가 새로운 암 치료법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

국립암센터 혈액종양클리닉의 한 전문의도 “암 줄기세포 연구는 이제 시작단계여서 검증돼야 할 부분이 많다. 암 줄기세포의 존재는 암 정복을 위한 또 하나의 화두를 던졌다는 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외에 몇몇 학자 및 연구자들은 최근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파동을 의식한 듯 개인적 의견을 말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다.

그럼에도 암 줄기세포 연구는 현재 세계적으로 부단한 걸음마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은 수년 전부터 바이오 분야의 명문인 스탠퍼드대학을 중심으로 암 줄기세포에 대한 기초연구를 진행해오고 있고, 일본의 경우 가나자와대학이 2005년 ‘암 줄기세포 치료개발연구센터’를 세계 최초로 설립해 암 줄기세포 연구 및 관련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암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학자나 기관은 전무하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연구를 서둘러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암 줄기세포 심포지엄은 3월 말과 4월 초 미국 워싱턴에서도 열릴 예정이어서 암 줄기세포 분야에 대한 체계적 연구와 학술적 응용 방안이 올해 의학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를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암 줄기세포 연구는 획기적인 암 치료법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인류가 암을 정복하는 날은 과연 그 언제쯤일까.

인터뷰|가톨릭대 의대 이정용 교수

“암 재발 설명 유용한 개념 … 국내 연구 촉발 기대”


“이젠, 암 줄기세포를 제거하라!”
가톨릭대 의대 및 대학원은 첨단 의학지식 습득을 위해 해마다 그해 의학계의 화두가 될 만한 분야에 대한 국제 심포지엄을 열어왔다. ‘암 줄기세포 국제학술심포지엄’은 그 세 번째 행사. 이번 행사를 기획한 가톨릭대 의대 병리학교실 이정용(54·가톨릭대 의대 미세절제유전체학연구소장) 주임교수를 만났다.

-심포지엄을 기획한 계기는?

“암 줄기세포는 기존 암 치료법을 통해 암세포를 제거하더라도 암이 재발하거나 전이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다. 따라서 이젠 암 치료법 연구의 초점을 일반 암세포에 국한하지 않고 암 줄기세포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암 줄기세포 자체를 없애는 방향으로 암 치료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국내에 환기시키고자 했다.”

-암 줄기세포 연구는 언제 시작됐나.

“세계 의학계에 소개된 지는 3년 남짓하다. 국내에는 최근 들어 의과대 병리학 교과서에 몇 줄 언급된 것이 전부다.”

-암 줄기세포 연구에 따르자면 암 줄기세포를 없애지 않고는 암의 완치가 있을 수 없지 않나. 그렇다면 통상 현대의학에서 따지는 ‘5년 생존율’(현대의학에서는 암환자가 암 치료를 받은 뒤 통상 5년이 경과해도 생존하면 암이 완치된 것으로 간주한다)은 무의미한 것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5년이라는 기간 안에 암이 나았다는 결과는 기존의 암 연구에 의하든 암 줄기세포 연구에 의하든 같다. 암이 완치됐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암 조직 내의 일반 암세포는 물론 암 줄기세포까지 소멸한 것을 의미하므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주간동아 2006.02.21 523호 (p70~72)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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