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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샹양시장, 사람 빼고 다 가짜!

롤렉스·구찌 모조품부터 한국 영화 DVD 해적판까지 “짝퉁 없는 게 없다해”

  • 상하이=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中 샹양시장, 사람 빼고 다 가짜!

中 샹양시장, 사람 빼고 다 가짜!

모조품 운동화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중국의 명절인 춘제(春節·설·1월29일), 상하이(上海) 샹양(襄陽)시장은 하루 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춘제 연휴’를 맞아 중국인들과 상하이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앞다투어 쇼핑을 나왔기 때문이다. ‘없는 게 없다’는 샹양시장의 ‘특산물’은 모조품. 일명 ‘짝퉁’의 주요 타깃은 중국 중산층과 외국인이라고 한다.

빠르게 성장해온 중국의 ‘명품 시장’은 현재 세계 7위 규모다. 프라다, 구찌 등 명품브랜드 숍이 들어선 상하이의 번화가 난징시루(南京西路)의 ‘명품 거리’는 서울 청담동보다도 호사스럽다. 이 ‘명품 거리’에서 걸어서 20분 남짓 가면 ‘진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다른 세상’을 만난다.

진짜 같은 가짜 오메가 시계 5만~7만원

샹양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호객꾼이 몰려들어 명품 브랜드 브로셔를 보여주며 팔목을 잡아끈다. 한 호객꾼을 따라가보았다. 그는 “팔로우 미(따라오세요)”를 거듭 외치면서 다른 가게로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감시한다. 호객꾼이 취재진을 데리고 간 곳은 샹양시장 뒷골목의 허름한 주택가.

“컴온, 컴온!”(호객꾼)



가게에 들어서자 ‘눈부신’ 광경이 벌어진다. 롤렉스·오메가·라도·론진·구찌·카르티에 시계가 오렌지 빛 조명을 받아 반짝거린다. 시계 뒷면엔 ‘SWISS MADE’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으나, 이들은 모두 ‘가짜’다. 값을 물었다. 주인은 잠시 멈칫거리더니 전자계산기에 가격을 표시해서 보여준다.

‘2000’(2000위안·약 24만원).

카르티에 시계는 언뜻 보기에도 조악했다. 돋보기로 시계를 살펴보니 눈금이 엉성하게 프린팅된 게 고스란히 드러났다. 상인에게 그런 점을 지적하자 난처해하기는커녕 묘한 웃음을 짓는다. 주인이 신호를 보내자 종업원이 리모트컨트롤을 누른다. 윙 하고 미닫이문이 열리자 주인은 취재진을 ‘매장 속 매장’으로 안내했다.

켜켜이 쌓인 몽블랑 만년필 세트와 앞서 본 스위스 시계들이 손님을 맞는다. 상인의 표정엔 자신감이 넘친다. 서울에서 차고 간 오메가 시계와 똑같은 모델을 골랐는데, 뒷면의 문자 표시 등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었으나 비전문가의 눈으로는 진품과 모조품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매장 속 매장’은 ‘SA급(정교하게 만들어진 모조품을 가리키는 말) 창고’라고도 불린다. 오메가 시계의 값을 묻자 전자계산기에 ‘2000’이라고 찍어 보여준다. “앞서 본 시계와 어떻게 가격이 같을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 주인은 표정조차 변하지 않고, 카르티에는 200위안(약 2만4000원)만 내고 가져가란다.

상하이에서 일하는 무역상 사경준(33) 씨에 따르면 상인들이 처음 부른 가격의 20~ 30% 정도가 실제 매매가라고 한다. SA급 짝퉁 오메가 시계는 400~600위안, B급 가짜 카르티에 시계는 40~60위안에 판매되는 셈이다. 가이드와 상인이 짜고 한국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中 샹양시장, 사람 빼고 다 가짜!

① 중국산 ‘짝퉁’ 명품 지갑. ② 고급 브랜드의 모조품 티셔츠, 드레스셔츠는 한국 돈 5000~1만5000원이면 살 수 있다. ③ 미국 브랜드를 위조한 팬티. ④ ’짝퉁’ 만년필 세트는 선물용으로 인기다.

B급 몽블랑 만년필 세트를 20위안(약 2400원)을 주고 산 뒤 시계 상점을 빠져나왔다. 밖에서 기다리던 호객꾼이 취재진을 가방 가게로 이끈다. 구조는 시계 상점과 비슷했다. SA급 창고엔 루이비통, 구찌, 프라다, 샤넬 등의 가방과 지갑이 가득했다. 명품을 차려입은 이 가게 주인은 유창한 영어로 가방과 지갑이 모두 진품이라고 주장했다(물론 정교하게 위조된 가짜다).

“유럽에서 편법으로 들여온 진품들이다. 4분의 1 가격에 팔고 있다.”

남성용 발리 가방의 가격은 1500위안(약 18만원). 5분 남짓 흥정을 벌였더니 값은 800위안까지 떨어졌다. 중국어 연수차 상하이에 머물고 있는 윤수정(32) 씨는 “샹양시장에선 10분의 1 가격에도 물건을 살 수 있다”면서 “물건 값 깎는 재미로 짝퉁을 사는 유학생도 많다”고 전했다.

상인들 부르는 값에서 90%까지 에누리

샹양시장 좌판에선 한국 가수들의 최신 CD와 한국 영화 및 드라마 DVD가 헐값에 팔리고 있었다. 한국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와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등 ‘한류 상품’이 실시간으로 복제돼 거래된다. 장동건, 이영애 등이 표지모델로 나온 DVD는 복제상들의 주요 타깃이다. 한류가 중국에서 ‘디스카운트’되고 있는 것이다.

KOTRA 보고서(한류 국가의 한국 문화상품 지적재산권 피해 현황 및 대응 방안)에 따르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도 한다. 중국 업체가 만든 불법 복제품이 중국을 비롯해 대만, 홍콩,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정품보다 많이 팔리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 한국 TV 드라마의 DVD 및 비디오테이프 판권 가격이 떨어진 데는 복제품 창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연간 수백만 명의 외국인과 중국인이 샹양시장을 찾는다. ‘없는 게 없다’는 소문대로 팬티부터 양말, 벨트, 셔츠, 정장까지 유명 브랜드의 모조품이 활개친다. DKNY·조르지오 아르마니·폴로 드레스셔츠는 한국 돈 1만원이면 살 수 있다. 구찌나 페라가모의 남성 벨트는 5000원 선에서 거래된다. 캘빈클라인 팬티 10장을 사는 데도 1만원이면 충분하다.

샹양시장의 운동화 매장은 인종의 전시장이었다. 황인·백인·흑인종을 차례로 상대한 이 매장의 소년 종업원(17)은 영어와 일어뿐 아니라 한국어도 말할 수 있었다. 기초회화 수준이었지만, 한국 돈으로 가격을 일러줄 만큼 능숙했다.

“한국 사람들도 운동화 사러 많이 와요. 퓨마, 나이키 운동화를 각각 30켤레씩 사가기도 합니다. 신발 샤요(싸요), 샤요.”

HSBC에서 일하는 스위스인 게르트 뮬러 씨는 아베크롬비 후드 티셔츠를 고르고 있었다. 가격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구매를 포기한 그에게 샹양시장에 자주 오느냐고 묻자 “엑설런트(최고)”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샹양시장에서 팔리는 제품은 유명 브랜드의 정품을 만드는 OEM 공장에서 빼온 것”이라고 뮬러 씨는 말했다. 실제로 중국 시장에서 팔리는 ‘가짜’ 중엔 OEM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도 있다고 한다. 한국인 무역상 S 씨의 설명.

“명품 브랜드가 중국 공장에 100개의 핸드백을 주문하면 공장에선 120개를 만든다. 100개를 납품하고 남은 20개가 특SA급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것이다. 이들 특SA급은 한국으로 ‘수출돼’ 홍대 앞이나 인터넷쇼핑몰에서 ‘정품’으로 둔갑되어 고가에 팔리기도 한다. 모조품 벨트, 지갑, 운동화도 마찬가지다.”

中 샹양시장, 사람 빼고 다 가짜!

상하이 시는 샹양시장 일대를 재개발할 계획을 갖고 있다(왼쪽). 한국으로 수입되다 적발된 중국산 모조품.

중국의 모조품 제조 능력은 일반의 상상을 넘어선다. 신제품이 나오면 4~5일 만에 모조품이 나온다고 한다. 상인들은 “진품과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삼성전자의 애니콜을 모방한 ‘SAMSUMG’의 ‘애미콜(Amycal)’ ‘참眞이슬露’를 베낀 ‘한韓이슬露’, ‘롯디리아 햄버거’ 등을 소비자에게 판다.

중국의 짝퉁은 지역별로 ‘특산품’이 있다고 한다. OEM 공장이 밀집한 광둥성에선 휴대전화, MP3 플레이어, 컴퓨터가 생산된다. 샹양시장엔 패션과 관련한 모조품이 많고, 광저우 시장엔 위조된 전자제품이 많다. ‘세계 생활용품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저장성에선 가방, 화장품, 향수 등 가짜 잡화와 면(綿) 제품이 주로 제작된다.

국영상점에서도 짝퉁 매매 버젓이

모조품 매매는 국영상점에서도 이뤄진다. 롤렉스 시계가 300위안, 나이키 운동화가 100위안에 팔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의 대형 백화점에서도 짝퉁이 거래된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KOTRA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상하이무역관 관계자는 “중국은 세계의 모조품 공장”이라며 “전 세계 가짜 상품의 30%가량이 중국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중국의 짝퉁이 세계 경제를 유린하고 있는 것은 ‘니즈(needs)’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취재진도 샹양시장에서 취재 목적으로 드레스셔츠, 남성용 가방, 팬티, 벨트, 양말, 만년필 세트 등을 구입하는 데 12만원가량을 썼다). ‘짝퉁 시장’이 중국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된 지는 오래다.

중국 정부는 뒤늦게 모조품 근절에 나서고 있다. ‘눈가림’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SA급 창고를 따로 만들어야 할 만큼 단속이 엄격해졌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라”는 선진국들의 항의도 이어진다. 프라다, 샤넬 등은 ‘짝퉁 소송’을 제기해놓았는데, 지적재산권 소송에서 중국은 잇따라 패소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샹양시장은 올 7월께 문을 닫을 것으로 보인다. 짝퉁을 몰아내 도시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게 상하이 시의 방침이다. 샹양시장 상인들은 “모조품을 팔지 않겠다”면서 외곽으로의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사람 빼고 다 가짜’라는 ‘상하이의 명물’이 사라진다고 짝퉁 산업이 근절될 수 있을까.

샹양시장에선 진품과 모조품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명품 구입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이미지’를 구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샹양시장의 ‘SA급 짝퉁’이 이러한 허상을 조소하고 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중국산 ‘짝퉁 명품’은 아시아의 거리를 한동안 휘저을 것 같다.



주간동아 2006.02.21 523호 (p34~36)

상하이=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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