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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新동북공정 “고구려는 없다”

“생존 걸린 문제” … 국가전략 세워야

위기의식 못 느낀 정부 소극적 대응 … 자칫하다 동아시아 질서 개편 주변인 될라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생존 걸린 문제” … 국가전략 세워야

“생존 걸린 문제” …  국가전략 세워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과 국가전략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왼쪽).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 나도는 ‘고구려사 왜곡 괴문서’를 바라보는 국내 전문가들의 시각은 어떨까.

‘주간동아’가 접한 이들의 대다수는 ‘동북공정의 비공식적 부활’을 우려했다. 또한 중국 측이 2004년 8월, 고구려사 왜곡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우리 정부와 ‘5개 양해사항’에 대해 구두로 합의했음에도 이 같은 ‘물밑 작업’을 벌이는 ‘반칙행위’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책 강구를 촉구했다. 나아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역사논리로만 해석하기보다 거시적 안목에서 한민족의 생존이 걸린 정치적 문제로 파악할 것과 그에 대한 국가전략을 세울 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2003년 3월, ‘동아지중해 장보고호 뗏목 탐험대’ 대장으로 활동한 윤명철 동국대 교수(고구려사·동아시아해양사)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학술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를 잣대로 들이대야 한다는 견해를 펼쳤다. 동북공정 등 중국의 역사왜곡은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한 예로, 중국 측이 ‘괴문서’에서 CIA(미 중앙정보국)를 운위한 것도 인도를 급부상시키는 등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구사하는 여러 전략에 대한 대응책의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윤 교수의 설명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엑스포가 끝나면 동아시아 질서는 전면 개편될 것이다. 특히 만주지역을 놓고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 갈등의 발생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중국은 만주가 현재의 영토일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자국 영토라는 주장을 퍼뜨려 기정사실화함으로써 만주에 대한 권리를 내부적으로나 대외적으로 확인받으려고 하고 있다. 괴문서도 그와 같은 시도의 일부가 분명하다.”

“신의주 경제특구 무산도 한국 경계의 한 예”



윤 교수는 중국이 만주에 대한 한국의 관심을 경계하는 한 예로 2003년에 시도하다 중국의 방해로 무산된 북한의 신의주 경제특구를 든다. 평북 신의주는 고구려 때 유명한 대(對)중국 수출입항이었고, 조선조에도 청나라와의 무역인 중강개시(中江開市)가 열린 경제전략지구. 그런데 중국이 신의주 특구를 용납하면 남북 간 협력 강화 혹은 향후 등장할지 모를 통일한국의 힘이 만주로 뻗어나가는 교두보로 작용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

중국이 2004년 7월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에 원래의 변경군 대신 인민해방군을 전격 배치한 것과 2005년 러시아와 합동군사훈련을한 것도 북한에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인데, 이를 위해서도 고구려사에 대한 왜곡은 필수적이라는 것이 윤 교수의 지적이다.

윤 교수는 우리 역사학자들이 학술논리에 매몰돼 있다고도 비판한다.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대응작업이 동아시아의 미래 질서를 감안해 더욱 폭넓은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

“중국은 예전에 ‘일사양용(一史兩用·하나의 역사를 양면에서 이용한다는 뜻)’ 이론을 취해 고구려사가 중국 역사이기도 하고 한민족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동북공정에서는 그 논리가 바뀌다 못해 한 발짝 더 나아가 평양으로 이전한 뒤인 한강 이북의 고구려사마저도 자기네 역사라고 우긴다. 지금은 이런 주장이 주장으로 머물러 있지만, 추후 영토분쟁이나 국경문제 등으로 국가 간 충돌이 발생할 때는 하나의 근거로 이용될 수 있다. 중국은 이처럼 ‘탁월’하게 역사문제에 정치논리를 적용한다.”

윤 교수는 또 중국 측과 학술적으로 고구려의 정체성 논쟁을 벌이는 것은 독도논쟁처럼 소모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평한다. 이는 되레 주변국들에게 고구려가 마치 중국과 우리가 공유한 나라로 오해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은 어떠해야 할까.

윤 교수는 “고구려사 연구를 학문적으로 심화하는 한편으로 그것을 우리의 국가발전 전략과 연계하는 작업이 절실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학자뿐 아니라 정치·외교·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공동으로 참여해 거시적인 국가전략을 모색하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구려사 문제를 단순한 자존심의 차원이 아니라 한민족의 생존이 걸린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월 ‘괴문서’의 원문 텍스트를 읽어본 간도문제 전문가 박선영 포항공대 교수(중국근현대사)는 “중국의 역사 왜곡은 개혁·개방 과정에서 불거지는 소수민족 문제를 안정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동북지역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고 밝힌다.

동북공정에서도 명시했듯, 동북지역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전략 지역이므로 고구려사 왜곡은 외부 세력, 특히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한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 게다가 ‘CIA 개입설’을 퍼뜨리면 미국의 진출까지 차단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중국 측의 속내라는 것이다. ‘한국이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로 주장하는 배후에 CIA가 있으며, 이는 만주를 삼키려는 음모’라는 괴문서의 핵심 내용이 실제로는 터무니없는 ‘작문’이지만, 나름의 논리를 갖춘 데다 시민단체의 감시 기능조차 갖고 있지 못한 중국인에겐 충분히 먹혀들 만한 파급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볼 때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박 교수는 우리의 자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국(중국)과 소국(한국) 간 논쟁에서 그에 따른 경제적 손익을 따지면 결과는 뻔하지만,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이익’에만 집착하면 소국은 갈등 국면에서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것. 따라서 한중 간 갈등을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려면 역사공동위원회를 만들어 양국이 논의하되 우리가 좀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필요에 따라 수시로 역사 개찬작업”

“2005년 10월 대만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했는데, 중국 측은 학자들을 보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내가 두 달 전 북한과 중국이 1962년 비밀리에 체결한 조중변계협약(朝中邊界協約) 당시 두만강과 토문강이 분명히 다른 강임을 인정했다는 사실이 명시된 외교문서를 공개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중국 측은 학술회의 참석자들에 대한 정보까지 사전에 국가에 보고할 정도로 일사불란하다.”

박 교수는 “중국 역사기술의 역사는 길다. 필요에 따라 수시로 역사 편찬작업을 해왔고, 과거의 역사에서 자기네 입맛에 맞지 않는 부분은 끊임없이 개찬해 새로 역사화한다”며 “우리는 중국이 그런 작업을 왜 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이를 만일 모르고 지나치면 왜곡된 역사가 그대로 사실화된다”고 지적한다.

노영돈 인천대 교수(국제법)는 외교적 현안에 대한 우리 정부의 무사안일주의와 중국에 비해 한층 떨어지는 외교관료들의 업무 수행능력을 질타한다.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마치 임진왜란 직전이나 개화기 때와 같은 위기의식을 느낀다. ‘괴문서’라고는 하지만 이 또한 중국의 역량이다. 중국은 철저한 전략으로 맞서는데 우리는 어떤가. 국제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국가의 존립근거를 강고히 하기 위한 전략도 필요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한 한중 간 구두합의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구두합의의 실체가 과연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제법상 문서에 의한 합의는 조약으로서 법적 구속력을 가지므로 이를 위반하면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반면 구두합의는 조약이 아니므로 매우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처음엔 구두합의 내용에 동북공정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처럼 비쳤지만, 결국 그 부분이 빠진 것으로 밝혀지지 않았나. 정부가 이랬다저랬다 말 바꾸기를 하는 것은 국제법상 금반언(禁反言) 원칙(한번 주장해서 상대방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을 말을 바꿔 주장하는 것은 원칙 위배)에도 어긋난다. 결국 갑갑한 것은 우리 아닌가. 중국 측의 역사 왜곡 논리를 깨는 전문적이고도 조직적인 작업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주간동아 2006.02.21 523호 (p22~23)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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