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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C 바람 잘 날 없네!

미군 기지 이전·전략적 유연성 협상 책임론 이어 비밀문서 유출 파동 겹쳐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NSC 바람 잘 날 없네!

NSC 바람 잘 날 없네!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가 2월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터질 것이 터졌다.”

2월 초 정치권을 뒤흔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서유출 파동을 지켜보며 한 전직 안보부처 핵심 관계자가 한 말이다. 청와대 내부문서가 무더기로 공개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 때문에 떠들썩하게 공론화됐을 뿐,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알려진 논쟁이라는 설명이었다.

‘파동’의 시작은 2월1일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지난해 12월2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하면서부터. 최 의원은 “우리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은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했음에도 미국의 요구에 밀려 동의가 필요 없는 ‘공동성명’ 형태로 합의했다”고 주장하며, 그 핵심 책임자로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당시 NSC 사무차장)를 지목하고 나섰다.

최 의원은 이튿날에는 NSC 내부문서를 공개하며 “외교통상부 북미국이 2003년 10월 전략적 유연성을 전폭 지지하는 각서를 미국과 교환하면서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2월3일에는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이 대통령 국정상황실 문서를 공개하면서 “NSC와 이종석 차장은 2년여에 걸친 협상과정과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비판을 이어갔다.

이들 문서 가운데 12월29일 회의록을 제외한 NSC와 국정상황실 문서들은 모두 2005년 4월 협상과정이 적절했는지 점검하기 위해 청와대에서 열린 ‘5인 회의’의 공방과정에서 작성된 것이다. 당시 회의 구성원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 겸 NSC 상임위원장, 천호선 국정상황실장, 문재인 민정수석, 이종석 NSC 사무차장, 서주석 NSC 전략기획실장이었다.



최재천 의원, NSC 회의록 공개하며 파문 시작

사실 민정수석실과 국정상황실의 NSC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03년 겨울 민정수석실은 “용산기지 이전 협상과정에서 협상팀이 미국 측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고 NSC는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해 조사가 이뤄진 바 있다. 그 결과는 이듬해 1월 이른바 ‘부적절한 발언’ 파동으로 알려져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과 북미국 간부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2004년 5월에는 국정상황실이 주한미군 감축 공론화 문제와 관련해 NSC의 책임 문제를 제기하는 보고서를 제출했고 이후 강도 높은 논쟁이 이뤄졌지만, 김선일 사태와 3차 6자회담 등 산적한 현안에 밀려 뚜렷한 결론 없이 마무리됐다.

이번에 쟁점이 된 전략적 유연성 문제 관련 5인 회의는, 2005년 4월 국정상황실이 NSC 책임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면서 두 차례 열리게 된 것이었다. 이때의 ‘진상규명’ 작업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하나는 2003년 10월 외교부가 미국에 전달한 각서 내용이 ‘정책’적으로 과연 대통령의 지침에 부합했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에 대한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한 ‘인사’상의 책임 문제였다. 이에 맞춰 진상규명 과정도 두 가지 차원으로 나뉘어 진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책 문제는 앞서 설명한 5인 회의가 중심이 됐고, 인사 문제는 공직기강 차원에서 민정수석실이 진상을 규명하기로 한 형태였다. 그러나 민정수석실의 조사는 ‘5인 회의’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청와대가 “아무 문제가 없어 일단락됐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흐지부지된 것으로 보인다.

NSC 바람 잘 날 없네!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이 2월2일 전략적 유연성 관련 문건을 공개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문서들을 정리해보면, 매우 강도 높은 공방이 벌어졌던 5인 회의 역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2003년 10월의 외교부 각서가 결과적으로는 2005년 3월 노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연설에서 밝힌 전략적 유연성 관련 주요 지침을 대부분 충족한 것으로 보이므로 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다. 국정상황실은 이 같은 결론에 대해 크게 반발했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심판 역할을 맡았던 정동영 장관의 책임을 거론하는 견해가 있다. 당시 정 장관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까닭에 이 문제가 결국은 청와대 담을 넘어 문서유출 사태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특히 2003년 각서 교환의 주인공인 위성락 북미국장(현 주미공사) 등을 불러 직접 상황을 묻지 못한 것은 실책이라는 것. 일각에서는 “6월 방북과 대북 송전 제안을 앞두고 있던 정 장관으로서는 이종석 차장을 보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반면 5인 회의 자체가 애초부터 한계를 갖고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비판을 받은 당사자가 회의의 주체로 참여하는 멤버 구성상 안건이 논쟁과 공방으로 흐를 뿐 명확한 결론이 나올 수 없는 구조였다는 것. 이렇게 보면 회의 개최를 지시한 노 대통령이 애초부터 정책적인 부분만 다루려 했을 뿐 NSC나 외교부 등 당사자들에게 직접적인 인사상의 책임을 물을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한 정부 방침은 ‘수용한다, 그러나 동북아에서는 안 된다’는 방향으로 점차 정리됐고, 이는 1월19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장관급 전략 대화를 통해 공식 발표된다. 그사이 2005년 가을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방한 등 미국 측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조기 타결을 압박했다는 사실은 국방부 주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제 와서 떠들썩해진 것일 뿐, 정부 내에서의 논의나 조치는 정책적으로나 인사상으로나 사실상 이미 끝난 상황인 것이다.

청와대 유출 관련 자체 조사 … 성과는 미지수

최근 청와대는 문서유출 사태와 관련해 직원들을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12월29일 NSC 상임위원회 회의록. 5인 회의 당시의 NSC와 국정상황실 문건은 공식적으로 비밀문서가 아니지만, NSC 회의록은 3급 비밀로 청와대 내에서도 NSC를 제외한 다른 부서는 열람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같은 조사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간에도 NSC 문서유출 문제로 조사가 이뤄진 적이 있었지만 완벽하게 책임이 규명된 경우는 없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또한 유출자를 색출해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청와대에 득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있다. 유출자가 확인돼 외부에 알려질 경우 해당 내부자가 ‘실명으로’ 전략적 유연성 문제 등에 대해 정부 내부의 결정과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싸움은 끝났지만, 또 다른 싸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2003년과 2004년 한-미 간에 이뤄진 주요 사안의 협상과정이 과연 적절했는가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NSC 등 관련 당사자들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2006.02.21 523호 (p8~9)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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