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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국립중앙박물관 가이드 북

고고관

  • 기획·취재 김민경 / 자료 정리 최정주 인하대 강사, 국립 모바일사업 어린이 팀장(유물 부문) 박미정 경희대 문화예술 경영학과 석사(박물관 부문)

고고관

  • 전시관 1층 오른편의 고고관에는 구석기시대부터 발해까지의 선사 및 고대 유물 4500여 점이 전시된다. 우리 민족 문화의 독창적 시원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교과서에서 많이 본 빗살무늬토기와 농경무늬청동기, 신라의 금관과 말 탄 사람 토기, 그리고 해학적인 표정의 발해 유물인 용머리를 감상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면, 백제 금동대향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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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주먹도끼 구석기시대, 고고관 구석기실

한 주먹에 잡기 좋게 생긴 이 돌은 구석기시대의 다용도 칼이다. 손으로 쥐는 부분은 다치지 않도록 둥글게 하거나 홈을 파서 잡기 좋게 만들었고, 도끼로 쓰는 부분은 날카롭게 다듬어놓았다. 주먹도끼는 대개 이처럼 끝이 뾰족하고 아래는 둥근 모양이다. 사냥할 때 동물을 내리치거나 뼈를 깎고 나무를 자르는 등 그 쓰임새가 다양해서 구석기시대에 널리 사용된 돌 도구 중 하나다. 이 외에도 구멍을 낼 때 쓰는 뚜르개, 나무에 홈을 팔 때 쓰는 새기개, 화살대를 다듬을 때 쓰는 홈날과 같은 많은 돌 도구가 사용되었다.

18. 낚싯바늘 신석기시대, 고고관 신석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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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나 바닷가에 정착하게 된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수산물을 중요한 식량으로 삼았다. 따뜻해진 날씨 덕분에 해수면이 높아지고 물고기의 양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부산시 범방 조개더미 유적에서 발견된 이 낚싯바늘은 몸체와 바늘을 따로 만든 뒤 끈으로 묶어서 사용한 이음낚시의 부품이다. 바늘 끝은 사슴뿔이나 멧돼지 이빨·동물의 뼈로 만들고, 몸체는 돌을 갈아 만들어 물속에 가라앉게 했다. 낚싯바늘치고 크기가 큰 것은 대구나 다랑어같이 큰 물고기를 잡는 데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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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덧무늬토기 신석기시대, 고고관 신석기실



신석기시대에 썼던 그릇이다. 인류 최초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토기는 농사로 거둬들인 곡물을 보관하기 위한 저장 용기나 냄비와 같은 조리 용기로 쓰였다. 그중 덧무늬토기는 가장 이른 시기에 쓰였던 그릇으로, 겉면에 따로 진흙 띠를 덧붙이거나 겉면을 손가락으로 맞집어서 도드라진 모양을 냈다. 무늬를 덧댄 방식은 그릇이 단단하지 않아 끈으로 감아 쓰던 것에서 착안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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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빗살무늬토기 신석기시대, 고고관 신석기실

신석기시대에 한반도 전역에서 사용한 그릇이다. 빗같이 생긴 무늬새기개로 비스듬한 줄무늬를 촘촘히 새겨넣어서 빗살무늬토기라고 한다. 그릇의 모양은 요즘 그릇들과 달리 밑 부분이 뾰족하거나 둥글다. 바닥에 그냥 세워놓지 않고 땅바닥을 조금 파거나 토기 주위에 돌 같은 것을 받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릇의 겉면을 정확히 구획하여 점과 선을 새겨넣은 것에서 일상 용기를 아름답게 꾸미고자 했던 당시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21. 반달돌칼 청동기시대, 고고관 청동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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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처럼 생겨서 반달돌칼이라고 부르는 농경 도구다. 곡식의 이삭을 따는 데에 쓰였다. 가운데에 뚫려 있는 두 개의 구멍에 끈을 끼워 손잡이로 사용했다. 이삭을 따는 돌칼은 반달 모양뿐 아니라 세모 모양, 네모 모양도 발견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에 벼농사가 활발해지면서 수확량이 늘어난 이후에는 아예 볏단을 자를 수 있는 낫이 등장하여 수확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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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얼굴 모양 조가비 신석기시대, 고고관 신석기실사람의 눈과 입을 본떠 만든 듯한 얼굴 모양 조가비다. 탈처럼 생겼지만 크기가 아주 작은 것으로 보아 다른 용도로 쓰였으리라 여겨진다. 아이들의 장난감일 가능성도 있지만, 원시 신앙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주술용 액막이의 일종으로 보인다. 홍수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거나, 조가비라는 자연물의 영혼을 이어받아 그 채집의 양을 늘려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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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잔무늬거울 청동기시대, 고고관 청동기실

청동기시대 후기에 썼던 청동거울이다. 앞면은 광을 내서 거울로 쓰고, 뒷면에는 갖가지 무늬를 새겨 장식하고 꼭지를 달아 끈을 매달 수 있게 했다. 중앙에 꼭지가 하나 달린 중국식 거울과 달리, 한국식 거울은 두 개의 꼭지가 거울의 위쪽으로 살짝 비껴 자리하는 특징이 있다. 동심원과 사방으로 퍼지는 직선 모양의 잔무늬는 태양과 햇살을 표현한 것이다. 잔무늬거울은 일상 용구보다는 청동기시대의 제사장이 태양빛을 비추기 위한 의식용 도구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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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농경무늬 청동기 청동기시대, 고고관 청동기실

농사짓는 모습이 새겨진 청동기다. 벌거벗은 한 남자가 따비로 네모진 밭을 갈고 있고 맞은편의 남자는 항아리에 담아온 씨를 뿌리고 있다. 이는 입춘 날 옷을 벗은 남자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풍년을 기원했던 ‘입춘나경’의 의식과 같은 장면으로, 농경을 중요하게 여겼던 당시의 생활 모습을 고스란히 나타낸 것이다. 청동기를 뒤집으면 갈라진 나뭇가지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풍년의 기원을 하늘에 전해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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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팔주령 청동기시대, 고고관 청동기실, 국보 제143호아기들이 가지고 노는 딸랑이처럼 생긴 이 청동기는 제사장이 의식을 진행할 때 쓰던 청동방울이다. 여덟 개의 방울이 달려 있어서 팔주령이라고 하는데, 방울 안에 구슬이 들어 있어 흔들면 소리가 난다. 제사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소리를 통해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쓰인 듯하다. 늘 쌍으로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양손에 쥐고 흔들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독특한 모양의 팔주령은 오로지 한반도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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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요령식 동검 청동기시대, 고고관 청동기실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동검이다. 중국의 요령 지방을 중심으로 분포되어서 요령식 동검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악기인 비파를 닮아 비파형 동검이라고도 한다. 요령식 동검은 검 몸과 손잡이를 한꺼번에 만드는 중국의 동검과 달리 각각 따로 만들어 연결하는 독특한 제작 방식을 특징으로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대표적 유물인 요령식 동검은 요령 지방과 한반도 서북한 지방에서 고루 출토되어 고조선의 중심 위치를 가늠하게 해준다.

27. 고리자루 칼 백제, 고고관 백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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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자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쇠칼이다. 손잡이 끝에 둥근 고리가 달려 있어서 고리자루 칼이라고 한다. 이 칼은 전쟁터에서 실제로 쓰였던 무기라기보다 금관처럼 신분이나 지위를 드러내주는 장신구 구실을 했다. 그래서 둥근 고리와 손잡이를 금과 은으로 아름답게 꾸몄다. 칼의 무늬는 표면을 파고 그 홈에 가느다란 은실을 박아넣는 은 상감기법으로 만들었다. 둥근 고리 안은 용, 봉황, 나뭇잎 모양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여 신분의 차이를 나타내기도 했다.

28. 산수무늬 벽돌 백제, 고고관 도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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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외리 절터의 바닥에 깔려 있던 산수무늬 벽돌이다. 오늘날의 보도블록과 같은 것인데 한 폭의 산수화처럼 회화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얕은 부조 형식으로 산, 나무, 기암괴석, 흐르는 시냇물, 하늘가의 구름 등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오른쪽 아래에는 기와집 한 채가 자리하고 그곳을 향해 가는 사람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백제시대 사람들의 이상향을 엿보는 듯하다.

29. 오리 모양 토기 원삼국시대, 고고관 원삼국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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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나 제례용으로 쓰인 오리 모양 토기다. 고대인에게 새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졌다. 이런 이유로 고대의 무덤에서는 새 깃털이나 새 뼈, 혹은 새 모양의 토기가 자주 발견된다. 몸통은 속이 비어 있고 등과 꼬리 부분에 구멍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 액체를 담거나 따를 수 있는 장례식 용기인 듯하다. 진한, 변한 지역이 청둥오리의 서식지였는지 특히 오리 모양과 관련된 제기가 많이 출토되고 있다.

30. ‘호우’ 글씨가 새겨진 그릇 고구려, 고고관 고구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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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장례 1주년에 만든 청동 그릇 중 하나다. 사후 이듬해인 414년에 성대한 제사를 올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가마솥 비슷한 청동 그릇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 이 청동기는 열 번째 그릇이다. ‘호우’란 그 의미를 나타낸다. 특이한 것은 고구려의 청동 그릇이 신라 지역에서 발견된 것인데, 이는 고구려의 문화가 당시 신라와 가야, 백제 등에 전해졌던 시대 상황을 증거하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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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왕비 관 꾸미개 백제, 고고관 백제실, 국보 제155호

무령왕릉에서 나온 왕비의 관 꽂이이다. 백제에서는 왕뿐 아니라 왕비도 비단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양 옆에 관 꽂이를 꽂아 위엄을 나타냈다. 왕비의 머리맡에서 발견된 이 꾸미개는 얇은 금판을 오려 만든 것이다. 가운데 작은 꽃병과 아래위로 연꽃잎과 넝쿨무늬가 새겨져 있어 활짝 핀 꽃이 꽃병에 꽂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왕의 관 꽂이는 왕비의 것보다 좀더 화려한 불꽃 모양인데 꽃가지마다 둥근 달개가 달려 있다.

32. 금동대향로 백제, 고고관 백제실, 국보 제2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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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올릴 때 향을 피우던 금동대향로다. 백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불교와 도교 사상을 바탕으로 우주의 이치를 아름답게 표현한 걸작이다. 향을 피우는 그릇은 활짝 핀 연꽃 모양으로 불교적 이상을 나타냈고, 향로의 뚜껑은 신선과 상서로운 동물들이 가득한 도교의 이상세계, 박산을 나타냈다. 받침대 구실을 하는 용은 물 밑 세계와 음을 상징하고, 뚜껑 위의 봉황은 하늘 세계와 양을 상징하여 음양의 조화를 보여준다. 향을 피우면 뚜껑 위의 산 뒤쪽과 봉황의 가슴에 난 구멍 사이로 신성한 기운이 올라와 환상적으로 보일 것이다.

33. 갑옷과 투구 가야, 고고관 가야실

전사의 몸과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갑옷과 투구다. 이 장비들은 경상북도 고령 지산동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실제 전쟁터에서 착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덤의 껴묻거리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갑옷은 어깨가리개·판갑옷으로 이루어졌는데, 철판을 인체의 곡선에 맞게 가로 세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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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려 연결한 고도의 제작 기술이 엿보인다. 투구는 오늘날의 모자처럼 앞쪽으로 튀어나온 각진 모양인데 정수리 부분에 깃털 등을 꽂아 장식하기도 했다.

34. 황남대총 금관 신라, 고고관 신라실, 국보 제191호

경주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금관이다. 지금까지 출토된 6개의 신라 금관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금관은 왕족의 힘과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화려하면서도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둥근 관테에는 나뭇가지 모양의 세움 장식 세 개와 뒤쪽에 사슴뿔처럼 휘어진 장식 두 개가 달려 있는데 모두 금못을 박아 붙였다. 나무와 사슴뿔 모양은 하늘과 소통하는 신령한 상징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세움 장식마다 달려 있는 둥그런 달개와 곱은옥은 열매와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흔들릴 때마다 반짝여서 금관을 더욱 화려하게 보이도록 했다. 그러나 이런 금관은 일상용이 아니라 부장용으로 특별히 만든 것이다.

35. 귀걸이 신라, 고고관 신라실, 국보 제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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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금속공예 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귀걸이다. 고리의 표면에 수백 개의 금 알갱이를 열을 가해 붙여서 거북등처럼 면을 나누고 그 안을 나뭇잎 모양으로 꾸몄다. 아래의 샛장식은 금줄을 꼬아 속이 보이지 않도록 빽빽하게 연결하면서 나뭇잎 장식을 매달아 정교하게 완성했다. 이 귀걸이는 고리가 굵어서 무거워 보이지만 속은 텅 비어 있으며 착용할 때는 귓불에 끼우기보다 실을 묶어서 금관이나 비단모자 양옆에 매단 것으로 보인다.

36. 허리띠와 드리개 신라, 고고관 신라실, 국보 제192호

여러 가지 모양의 드리개를 매단 허리띠다. 허리띠에 드리개를 달아 장식했던 것은 북방 유목민족들이 부싯돌, 침통, 귀이개 등의 생활용구들을 허리띠에 달고 다니던 관습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관습이 한반도에 전해지면서 생활용구들은 주술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상징물들로 대체되었다. 약통, 물고기, 숫돌, 손칼 등의 드리개는 생명, 건강, 풍요, 다산, 액막이 등의 주술적 힘을 상징한다.

37. 감옥팔찌 신라, 고고관 신라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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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팔찌다. 무덤의 주인공이 왼팔에 착용하고 있던 것이다. 신라의 팔찌는 대체로 한 줄로 된 원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팔찌는 두 장의 넓고 길쭉한 금판을 바탕으로 하여 금 알갱이로 장식하고 청색과 남색의 옥을 끼워넣어 색색의 화려한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이는 서역의 팔찌와 비슷한 모양으로, 당시 국제 교류를 통해 수입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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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신발 신라, 고고관 신라실

식리총에서 출토된 금동 신발의 바닥 부분이다. 윗부분은 떨어져나가고 바닥만 남았다. 금동 신발은 신라 시대 대형 무덤에서 거의 예외 없이 출토된다. 이 신발은 신분이 높은 사람을 위한 부장품임을 나타내듯이 거북등과 같은 육각형 안에 갖가지 꽃과 동물들을 매우 화려하게 표현해놓았다.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하고 있는 가릉빈가, 사슴처럼 머리에 뿔이 난 기린, 날개 달린 물고기 등 상상 속의 상서로운 동물이 가득하다. 이러한 도안은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중국의 북위시대 문화가 고구려를 거쳐 신라로 들어와 수용된 것이다.

39. 금방울 신라, 고고관 신라실 전시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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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령총에서 나온 금방울이다. 경주 시내에 흩어져 있는 신라의 무덤들은 묻힌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출토된 유물의 이름을 따서 정하곤 한다. 금령총은 다른 무덤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아름다운 금방울이 출토된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 출토된 두 개의 방울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표면을 자잘한 금 알갱이로 장식하고 푸른색 유리를 박았다. 방울 안에는 조그만 구슬이 들어 있어서 흔들면 딸랑딸랑 소리가 난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방울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

40. 말 탄 사람 토기 신라, 고고관 신라실, 국보 제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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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서 출토된 말 탄 사람 토기다. 이렇게 사람이나 동물, 물건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토기를 상형 토기라고 한다. 이 작은 상형 토기들 덕분에 신라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데, 말 탄 사람 토기도 신라인의 옷차림에서 말갖춤까지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장례용 주전자로 만들어진 말 탄 사람 토기는 두 구가 발견되었는데 출토될 때 간소한 옷차림에 방울을 든 하인이 주인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는 장례식에서 방울을 흔들며 상여를 옮기듯이 하인이 주인을 저승길로 인도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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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토우가 붙은 항아리 신라, 고고관 신라실, 국보 제195호

목이 길고 통이 넓은 항아리다. 목 둘레에 여러 가지 모양의 토우가 붙어 있다. 토우는 흙으로 빚어 만든 인형인데 신라 사람들의 독특한 조형감각을 나타낸다. 정교하지는 않지만 대상의 특징을 잘 포착하여 오히려 생생한 느낌이 전해진다. 항아리에는 뱀·개구리·남근을 잡고 있는 사람 등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각각 생명력과 다산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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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짐승 얼굴 무늬 기와 통일신라, 고고관 통일신라실

짐승의 형상을 담은 기와다. 당시 사람들은 도깨비나 짐승 무늬 기와를 지붕에 얹어두면 집으로 들어오려는 악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고 여겼다. 기와를 지붕에 고정시키기 위해서 이마 쪽에 구멍을 뚫어 못을 박았으며 때로는 뒷면에 달려 있는 고리에 줄을 매어 고정시키기도 했다. 기와의 무늬는 짐승 무늬 외에도 연꽃무늬, 덩굴무늬, 새 모양 등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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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함화사년’이 새겨진 불상 발해, 고고관 발해실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발해에서 발원한 불상이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고 양옆에 가르침을 듣는 수행 승려가 있으며 그 옆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서 있는 모습이다. 불상에 ‘함화사년(咸和四年)’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그 밑에 불비상을 설명하는 글이 씌어 있다. 그 내용에 따르면, 834년에 발해 허왕부의 관리인 조문휴라는 사람의 어머니가 모든 불자들을 위해 이 불비상을 조성했다고 한다. 허왕부는 황제가 왕으로 봉한 부서의 이름으로, 발해가 독자적인 황제 체제를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44. 뼈 담는 그릇과 돌함 통일신라, 고고관 통일신라실, 국보 제 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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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의 뼈를 담아 보관하는 그릇이다.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통일신라시대에는 종교적 영향으로 장례에서 화장이 유행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화장한 뒤 남은 뼈를 추려서 그릇에 담고 이것을 다시 돌로 만든 함에 넣어 땅속에 묻었다. 이때 쓰인 뼈 담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쓰던 소박한 토기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으나 점차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무늬를 새긴 도장을 토기 겉면에 찍어서 장식하기도 하고, 유약을 입혀서 고운 색을 내기도 했다. 이 돌함은 화강암으로 만들었는데 뚜껑을 꽃잎 모양으로 각지게 표현해서 장식적인 효과를 주었다.



주간동아 2005.11.22 511호 (p23~40)

기획·취재 김민경 / 자료 정리 최정주 인하대 강사, 국립 모바일사업 어린이 팀장(유물 부문) 박미정 경희대 문화예술 경영학과 석사(박물관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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