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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국립중앙박물관 가이드 북

역사관 & 야외전시장

  • 기획·취재 김민경 / 자료 정리 최정주 인하대 강사, 국립 모바일사업 어린이 팀장(유물 부문) 박미정 경희대 문화예술 경영학과 석사(박물관 부문)

역사관 & 야외전시장

  • 전시관 1층 문에서 시작되는 1층 역사의 길에는 고달사 쌍사자석등과 경천사 10층 석탑이 있고, 왼쪽에 역사관이 있다. 경천사 10층 석탑의 아름다움과 기구한 역사를 이해하고, 야외전시장에서는 한국식 정원 속에서 보물 제2호인 보신각 종과 석등, 석비 등을 찾아본다. 역사관에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대동여지도를 비롯해 사료적 가치가 큰 문서 등 모두 2800여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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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천사 10층 석탑 고려, 전시실 1층 역사의 길, 국보 제86호

1348년 만들어진 고려 후기 대표적인 석탑이다. 기단부터 3층까지는 네 면이 튀어나와 있고 4층부터는 네모난 형태를 취하고 있는 매우 특이한 형태의 탑이다. 총 13m에 달하는 모습에서 위엄이 느껴지지만 탑 전체에 조각된 불상이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화강암이 아닌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조각하기가 좀더 쉬웠던 듯하다.

1층 탑신의 서면에는 영취산에서 부처님이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하는 영산회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한 것이겠다.



2. 전 흥복사 염거화상탑 통일신라, 야외 전시장, 국보 제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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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말기의 승려, 염거화상의 사리탑이다. 염거화상은 도의선사의 제자로, 설악산 억성사에 머물면서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선(禪)을 알리는 데 힘썼다. 탑은 아래위 각 부분이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였다. 기단에는 사자·향로·연꽃 등이 소박한 자태로 장식되어 있고, 탑신의 사천왕은 입체감과 사실적 표현이 여실하며, 지붕돌은 당시의 목조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 사리탑 중에서 가장 오래된 이 탑은 규모는 크지 않으나 단아한 기품과 깨끗한 솜씨가 잘 어우러져 있다. 이후 대부분의 사리탑이 이 양식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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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울 보신각종 조선, 야외 전시장, 보물 제2호

세조 14년인 1468년에 주조된 종이다. 제작 당시에는 신덕왕후정릉 안에 있는 정릉사에 있었으나 원각사, 숭례문 등으로 옮겨졌으며 임진왜란 이후 종루에 보관했다. 고종 32년인 1895년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게 되면서 보신각종이라고 불리었다. 높이 3.18m, 지름 2.28m, 무게 19.66t의 큰 규모이며 음통이 없고 용 두 마리로 표현된 용뉴 등 조선 초기의 종 형식을 따르고 있다. 광해군 때에는 새벽 4시에 33번(파루), 오후 10시에 28번(인정)을 울려 도성 문을 여닫는 등 하루의 시간을 알렸으며 1985년까지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칠 때 사용되다가 현재에 이르렀다.

4.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통일신라, 역사관 인쇄실, 국보 제1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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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목판으로 인쇄한 불교경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이 경전은 751년에 세워진 불국사의 석가탑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인쇄된 시기 역시 그즈음으로 추정하고 있다. 책의 크기는 너비 8cm, 전체 길이 약 620cm이며 한 행이 여덟에서 아홉 자의 다라니 경문을 두루마리 형식으로 제본해놓은 것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는 죄를 없애고 수명을 연장하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인쇄문화의 종주국임을 입증하는 귀중한 자료다.

5. 목판으로 찍은 초조(初雕)본 대보적경 고려, 역사관 인쇄실, 국보 제2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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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초 고려 현종 때에 거란족의 침입을 받자, 부처님의 공덕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대대적으로 경판 조판 사업을 벌인다. 이때 만든 경판을 처음 만들었다 해서 초조 대장경판이라고 하는데 대보적경은 그 경판본 중 하나다. 모두 120권의 방대한 분량인데 이 책은 제59권에 해당한다. 대보적경은 보살이 여러 가지 수행방법을 통해서 불법을 터득하고 깨달음을 얻어 마침내 부처가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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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북한산 진흥왕순수비 신라, 역사관 금석문실, 국보 제3호

6세기 중엽 신라 진흥왕대에 나라의 영토가 크게 확장된 이후 그 위세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이 비는 555년 무렵에 북한산 비봉에 세워진 것으로 삼국 간의 요충지였던 한강 유역까지 신라의 영토가 된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건립 후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가 19세기 초반에 금석학자인 김정희의 발견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비문에는 진흥왕이 신하를 데리고 이 지역을 방문한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까닭, 진흥왕의 치적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역사적 사실을 증거하는 귀중한 비석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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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대동여지도 조선, 역사관 지도실

고산자 김정호가 1861년에 제작한 우리나라의 전국지도다. 대동여지도는 그때까지 전해 내려오는 모든 지도와 지리지를 총망라한 것으로 산과 강, 행정구역, 도로망, 교통, 군사시설까지 자세하게 표시해놓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했다. 이는 오늘날의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우수한 것이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목판에 새겨 지도를 널리 보급할 수 있게 했으며,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책자 모양으로 만들어 사용하기에 편하게 하는 등 실용적인 지도의 확산에 큰 기여를 했다.

8. 이성계 호적 고려, 역사관 왕과국가실, 국보 제1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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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로 등극하기 2년 전인 1390년, 고려 공양왕 때 작성된 이성계 호적이다. 이성계의 고향인 함경도 영흥에서 작성되었다. 수록된 내용에는 태조의 당시 관직은 물론, 가족들 이름과 노비까지 전부 기록돼 있으며 훗날 태종 임금으로 등극한 이방원의 이름도 볼 수 있다. 이 호적은 조선 왕조 때에도 영흥 준원전이라는 곳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어서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보관 상태가 아주 좋다.

9. 진충귀에게 내린 조선 개국원종공신 녹권 조선, 역사관 왕과국가실, 보물 제11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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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4년(1395년)에 공신도감에서 당시 의주목사였던 진충귀에게 발급한 기록 문서다. 조선 개국에 공을 세운 진충귀를 개국원종공신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공신은 나라를 세우는 일을 돕거나 나라 안팎의 변란을 막고 왕실의 안정에 큰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내리는 칭호였다. 공신에게는 공신임을 증명하는 문서로서 교서 또는 녹권을 하사한다. 이 녹권에는 총 106명의 개국공신의 이름과 각 공신에게 전답 30결, 노비 3구를 하사한다는 임금의 명령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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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대한제국 황태자 책봉 금책 조선, 역사관 왕과국가실

왕세자였던 척을 황태자로 책봉한다는 내용의 금책이다. 황태자 척은 훗날 순종황제가 된다. 조선시대에 왕이 왕비나 세자, 세자빈을 책봉하는 임명장을 ‘간책(簡冊)’이라고 한다. 간책은 대나무를 비롯한 나무, 돌, 금속을 길쭉한 직육면체로 만들어 그 위에 글씨를 쓴 책 형식의 문서다. 왕실에서 만든 간책은 신분에 따라 만드는 재료가 달랐고 명칭도 달랐는데, 금으로 만든 금책에는 대개 황제나 황후의 임명장이나 말씀이 담겼다.

11. 고려 인종 시책 고려, 역사관 왕과국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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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인종 임금 능 안에 있었던 시책이다. 시책이란 죽은 왕이나 신하의 은덕을 칭송하며 시호를 적은 책이다.

고려 17대 왕인 인종은 성품이 어질고 너그러웠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예에 밝았다. 재위 중에 묘청의 난 등 어지러운 일이 많았으나 곧 이를 평정하고 태평성대를 이끌었다. 원래 시책은 주인공이 돌아가신 뒤에 만드는데 통상 상여가 산으로 떠나기 전에 완성한다. 묘 안에 있던 인종의 시책은 일제강점기에 도굴된 탓에 알려지게 되었다.



12. 손으로 쓴 화엄경(상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정원본 권 제4)고려, 역사관 전통사상실, 보물 제11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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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화엄경으로 불리는 대방광불화엄경을 옮겨 적은 사경이다. 모든 글씨는 손으로 쓴 것인데 은박가루를 접착제에 갠 은니로 한자 한자 써 내려갔다. 엄청난 집중력과 지극한 정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경 제작은 부처님의 공덕을 쌓고 간절한 소원을 빌기 위해 이루어졌다. 이 화엄경은 심오하고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사상이기도 하다.

13. 조선의 학자와 중국의 사신이 주고받은 시 (봉사조선창화시권 奉使朝鮮倡和詩卷) 조선, 역사관 대외교류실, 보물 제14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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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32년인 1450년에 명나라 사신인 예겸이 새 황제인 경제가 등극한 사실을 알리러 우리나라에 왔다. 예겸 선생은 인품이 훌륭한 학자였는데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그를 맞이하고 접대한 이들은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과 같은 집현전 학자였다. 학문을 사랑하는 마음이 서로 통한 이들은 시를 지으며 친분을 다졌는데 그때 오간 시를 엮은 것이 ‘봉사조선창화시권’이다. 이들은 의형제를 맺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이후에도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으레 시를 지으며 가까이 지내는 게 관례가 되었다.

14.명나라로 가는 바닷길 (항해조천도 航海朝天圖) 조선, 역사관 대외교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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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조의 책봉을 요청하기 위해 1624년, 중국 명나라에 파견된 이덕형 일행의 사신 행차길을 담은 그림이다. 당시 사신 행차에 동행했던 궁중화가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데 모두 25점이다. 사행길은 바닷길과 뭍길을 모두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뭍길만 이용했던 이전의 상황과 달라진 것이다. 이는 명의 세력이 약화되고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가 요동을 장악했던 당시의 국제 정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15. 부처의 큰 깨달음에 대한 가르침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諺解) 조선, 역사관 한글실, 보물 제9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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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언해한 불경이다. 한글은 많은 백성이 쉽고 편하게 문자를 쓰고 읽게 하기 위해 국가사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한글이 만들어진 뒤 한동안은 왕실에서 적극적으로 한글 보급 사업을 벌였다. 그중 하나가 한자로 된 책을 한글로 번역하는 언해였는데 이 작업은 개화기까지 계속 이어졌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는 당시 가장 많이 읽히던 불경을 언해한 것으로 부처와 보살의 대화를 통해 불교 수행의 기본 방향을 알려주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16. 태조 이성계 별급문서 조선, 역사관 문서실, 보물 제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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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가 그의 딸에게 집을 주는 내용을 담은 재산상속 문서다. 태조는 새로운 시대를 연 위대한 왕이었으나 그의 나이 70세가 되자 어린 딸의 장래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듯하다. 문서의 내용에는 완성된 집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빈 터에 목재와 돌 등을 구입해서 새롭게 집을 지어준다고 되어 있다. 조선 최초의 가옥 상속 문서인 이 별급문서는 당시 가옥, 토지 등 재산에 대한 상속이나 매매의 법제도가 엄격했던 것을 알려주는 귀한 사료다.



주간동아 2005.11.22 511호 (p9~22)

기획·취재 김민경 / 자료 정리 최정주 인하대 강사, 국립 모바일사업 어린이 팀장(유물 부문) 박미정 경희대 문화예술 경영학과 석사(박물관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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