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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틈새시장 ‘대박 코리아’

에쎄 담배·도시락 라면·초코파이 등 인기 상한가 … 농수산물 이어 꽃 수출 본격 채비

  •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러시아 틈새시장 ‘대박 코리아’

러시아 틈새시장 ‘대박 코리아’

러시아의 여성 흡연자들을 사로잡은 KT&G의 초슬림형 담배 에쎄.

10월6일 모스크바 르네상스 호텔 연회장. KT&G(옛 담배인삼공사) 곽영균 사장은 흥분된 목소리로 “에쎄 판매 50억 개비 달성을 위하여”라며 보드카 잔을 높이 들고 건배를 제의했다. 러시아인 딜러와 바이어들도 “다 드냐(원샷)”를 외치며 보드카 잔을 비웠다. KT&G가 2003년부터 러시아 시장에 내놓은 초슬림형 담배 에쎄의 10억 개비 판매 돌파 기념행사 자리였다. KT&G는 8월까지 러시아 시장에서 11억 개비의 에쎄를 팔았고 내년 목표는 50억 개비다.

휴대전화 등 가전과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 상품이 러시아를 휩쓸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러시아 시장이 LG와 현대-기아 등 대기업에만 ‘블루 오션(푸른 바다와 같은 미개척 신시장)’인 것은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로 3억 인구의 옛 소련권 시장을 파고들어 뜻밖의 ‘대박’을 터뜨린 상품들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에쎄. 그러나 담배 시장은 세계적으로도 대표적인 레드 오션(경쟁이 치열한 전통 시장)으로 꼽힌다. 금연 열풍에 각종 규제, 담배에 대한 이미지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 세계적인 담배 메이저들도 기존 시장을 지키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현지 상황 철저 분석 후 마케팅

러시아는 마지막 남은 담배의 황금시장이다. 담배 피우기가 점점 더 불편해지고, 심지어는 흡연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세계적인 흐름을 유일하게 비켜가는 ‘흡연 왕국’이기 때문. 러시아를 다녀간 애연가들은 ‘애연가의 천국’이라며 그리워할 정도다. 모스크바 공항에 내리자마자 어디서나 자유롭게 담배를 피운다. 대부분의 공공장소에서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심지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 여객기 안에서도 흡연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국제 관행에 따라 아에로플로트 등 러시아 주요 항공사들이 기내 금연을 선포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1억4450만 인구 중 절반인 약 7000만명이 흡연자고 매년 2900억 개비의 담배를 피워댄다. 현재 러시아의 담배 소비량은 중국·미국·일본에 이은 세계 4위지만 선진국은 담배 소비가 줄어드는 추세인 데 반해 러시아는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여성 흡연인구가 크게 느는 상황.

이 때문에 말보로와 필립모리스 등 메이저 메이커들은 일찌감치 러시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뒤늦게 뛰어든 KT&G는 ‘틈새시장’을 찾던 끝에 급증하는 여성 흡연자를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레귤러형 담배 대신 초슬림형 에쎄를 앞세우기로 한 것. 왠지 부드럽고 순해 보이면서 세련되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이자는 전략이었다. 한국은 휴대전화와 컴퓨터, TV 등 전자제품에서도 슬림형 제품이 강세다. 에쎄는 마케팅에서 이런 한국 제품 이미지와 연결시켰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러시아 틈새시장 ‘대박 코리아’

한국야쿠르트의 즉석 용기라면 ‘도시락’은 러시아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이다.

한국야쿠르트 현지법인인 ‘코야(Koya)’의 즉석 용기라면 ‘도시락’의 성공도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 초반 러시아에 처음 들어온 도시락은 올해 판매량이 2억4000만개에 이를 전망이다. 러시아 용기라면 시장에서 60%의 점유율을 지키고 있다.

도시락은 보따리장수들이 러시아 극동지방에 처음 들여오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만 부어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편리함은 바쁜 상인들에게 딱 맞았고 얼큰한 국물로 추위를 달래기에도 그만이었다.

극동지역을 다녀온 한국인들은 현지 키오스크(가판대)에서 도시락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사실을 안 한국야쿠르트는 러시아인의 입맛을 조사한 뒤 본격적으로 러시아 시장 공략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러시아에는 인스턴트식품이 별로 없었다. 도시락은 곧 극동지역에서부터 시베리아횡단열차(TSR)를 타고 우랄산맥을 넘어 모스크바 등 유럽 러시아까지 퍼졌다. 지금은 러시아의 맨 동쪽 사할린에서부터 서쪽 끝 칼리닌그라드까지 러시아 어디서나 도시락을 쉽게 볼 수 있다.

도시락은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망을 갖고 있는 러시아의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이다. 용기가 컵이 아닌 도시락 모양이라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먹기에도 편리하다.

물론 한국야쿠르트의 남다른 노력과 집념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성공이 가능했다. 한창 시장이 커가고 있던 1998년 러시아에 모라토리엄(채무지불 유예선언) 사태가 일어났다. 당장 손해가 컸지만 철수하지 않고 끝까지 러시아를 지켰다. 결국 1년 후 고유가로 러시아 경제가 살아나면서 위기는 기회가 됐다.

또 한번의 고비는 현지 식품업체들이 저가에 비슷한 제품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찾아왔다. 한국에서 운반하는 물류비용 때문에 경쟁이 벅차지자 현지공장 건설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세계적인 대기업들조차 러시아 현지투자는 꺼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국야쿠르트의 관계사인 삼영시스템은 숱한 어려움 속에서 9월 모스크바 근교에 3만평 규모의 현지 공장을 준공해 가동에 들어갔다.

러시아 꽃 시장 폭발적 성장

이 공장은 6종의 도시락과 봉지라면 등 모두 10종의 라면을 연간 3억5000만개 생산할 수 있다. 도시락은 내년에는 5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 뒤 러시아를 교두보로 삼아 앞으로 동유럽에까지 진출할 계획이다.

도시락뿐 아니라 한국 식품은 러시아에서 경쟁력 있는 품목으로 꼽힌다. 초코파이 역시 인기가 높다. 해마다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국제식품전시회에서는 한국의 배·사과 등 과일과 김·건어물 등 해산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한국이 러시아에 수출한 농산물은 1억7500만 달러. 한국으로서는 러시아가 4위의 수출 시장이다.

농수산물유통공사(사장 정귀래)는 9월 아예 모스크바에 현지사무소를 개설하고 농산물 수출 확대 지원에 나섰다. 윤석황 지사장이 소개하는 유망 품목 중 하나는 뜻밖에도 꽃이다.

러시아 틈새시장 ‘대박 코리아’

전북지역 30여 장미 농가로 구성된 ‘로즈피아’는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제12회 모스크바국제꽃전시회에 초청됐다.

“동토의 러시아에 무슨 꽃 수출이냐”고 반문하는 것은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러시아인만큼 꽃을 좋아하는 국민이 드물다. 연말연시와 여성의 날(3월8일) 등 주요 기념일과 축제 때마다 모스크바 거리가 온통 꽃으로 뒤덮일 정도다. 현재 러시아의 연간 꽃 시장 규모는 15억 달러지만 해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어 곧 일본 시장(60억 달러)과 비슷한 규모가 될 거라는 전망이다. 두 나라의 경제 규모를 따지면 놀라운 규모다.

더욱이 러시아는 온실 재배가 정착되지 않아 대부분의 꽃을 수입에 의존한다. 러시아는 꽃 수요가 가장 많은 여성의 날을 전후해서는 장미 한 송이가 150루블(5400원)이나 할 정도로 꽃값이 비싸다. 소매가격이 일본의 2배, 한국의 3배 이상이라 수출업체로서는 탐나는 시장이다.

현재 러시아 장미 시장은 중남미의 에콰도르가 장악하고 있는 상태. 정부 차원에서 꽃 수송용 전세화물기를 띄울 정도다. 이런 러시아에 한국 장미의 수출길을 연 것은 전북지역 30여 장미 농가로 구성된 ‘로즈피아’다. 로즈피아는 9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2회 모스크바국제꽃전시회에 아시아권에서는 유일하게 초청을 받아 현지 최대 꽃 유통업체인 스칼렛플로렛으로부터 독점공급 계약 제의를 받았다. 7월에도 러시아 극동지역 업체들과 10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맺었다.

“러시아 바이어들이 ‘한국은 자동차와 가전제품만 잘 만드는 줄 알았는데 꽃 품질도 좋다’며 놀라더군요.” 정화영 대표의 말이다. 정 대표는 “항공 운송에 유리한 작은 스프레이 품종을 내세워 품질로 경쟁하면 러시아 시장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자신했다.



주간동아 2005.11.22 511호 (p66~67)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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