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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방사성폐기물 처분장

19년 파행 방폐장, 해법을 찾았나

과거 부지 선정과 전혀 다른 지자체 유치 경쟁 … 지역 주민이 결정, 노련한 행정력, 파격 지원 ‘3박자 결실’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19년 파행 방폐장, 해법을 찾았나

19년 파행 방폐장, 해법을 찾았나
혁명적인 변화. 1989년 영덕·영일·울진 사태, 1990년 안면도 사태, 1995년 굴업도 사태, 2003년 부안 사태를 떠올려본다면 2005년의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선정 과정은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1986년 원자력위원회에서 방폐장을 짓자는 결정을 내린 뒤 19년간 파행을 거듭한 사업이 ‘혁명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순조롭게 펼쳐진 것이다.

방폐장이나 쓰레기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우리 동네엔 절대 들어서면 안 된다’는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심리를 가리켜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라고 한다. 그리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공직자가 ‘내 임기 중에는 골치 아픈 일은 다루고 싶지 않다’는 것을 가리켜 ‘님트(NIMT·Not In My Term)’ 현상이라고 한다. 19년간 방폐장 결정이 파행을 반복해온 것은 님비와 님트가 교묘히 엮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골치 아픈 님비의 사슬을 끊어낸 주인공이 주민들로부터 뭇매를 맞아가면서도 소신을 지킨 김종규 부안군수였다고 한다면, 님트의 악순환을 걷어낸 이는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 김 군수의 신념과 용기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장관의 노련한 행정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직을 걸고 방폐장 부지를 선정하겠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던 이 장관은 반대세력이 내놓은 주장을 모두 수용하면서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이루는 행정력을 선보였다.

님비 끊은 김종규 부안군수 … 님트 악순환 걷어낸 이희범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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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

영덕·영일·울진 사태에서 부안 사태를 겪으면서 드러난 방폐장 거부 세력의 주장은 대략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었다. 첫째, 국가가 방폐장 부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이를 수용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절대 다수의 지역 주민이 님비 현상을 보이는 만큼 이 주장은 방폐장 건설을 막는 최대의 장벽이었다.



2003년 부안 주민들은 김 군수가 방폐장 유치를 강력히 고집하자 임의로 주민투표(私的 주민투표)를 펼쳐 90%대의 반대표를 얻은 뒤 이를 근거로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인 고건 국무총리에게 절대다수의 주민이 방폐장 유치를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일이 있었던 만큼 주민투표를 통해
19년 파행 방폐장, 해법을 찾았나

김진태 대외협력과장, 조석 원전사업기획단장

방폐장 부지를 결정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난 곳에 뛰어드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것으로 여겨졌다.

부안 사태가 있은 뒤 이 장관은 바로 ‘원전사업기획단’이라는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 과거 산자부에서는 원전 문제를 담당해온 원자력산업과에서 방폐장 문제를 ‘곁다리’로 다뤘는데, 그는 방폐장 문제를 전담하는 국(局) 규모의 단(團)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부안 사태가 일어났을 때 외국에 나가 있던 공무원들을 불러모았다. 국내에 있었던 공무원들은 신선한 발상을 내놓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19년 파행 방폐장, 해법을 찾았나

2003년 부안에서 일어난 핵폐기장 반대 주민 시위.

그에 따라 워싱턴에서 연수를 하던 조석 씨가 불려와 단장이 되고, 샌프란시스코 무역관에 나가 있던 김진태 씨와 영국에서 상무관을 하던 정승일 씨가 불려와 대외협력과장과 방폐물과장을 맡게 되었다. 이들은 감정적인 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으므로 반핵단체 대표를 만나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다. 여기서 나온 결론이 이들이 주장하는 주민투표를 수용해보자는 것이었다.

때마침 행정자치부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결정사항을 주민이 직접 결정케 하는 ‘주민투표법’을 만들고 있었다. 1994년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선거로 뽑게 됐는데, 개정된 지방자치법에는 주민투표제를 도입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제13조 제2항). 주무부서인 행자부는 주민투표법 제정을 미룰 수 없었으므로 부안 사태가 진행 중이던 2003년 7월말 초안을 내놓았다. 이 법안은 여러 차례 수정 과정을 거쳐 2004년 1월29일 국회를 통과해 7월29일 발효되었다.

대통령을 직접선거로 뽑겠다는 국민 열의가 드높았던 1987년, 노태우 씨는 직선제를 수용하는 6·29선언을 내놓고 13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산자부는 이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로써 산자부는 반대 세력의 주요한 투쟁 명분을 약화시켰다. 주민과 반핵단체를 분리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둘째,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과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소를 분리하는 조치를 취했다. 지역 주민들이 반핵단체의 주장에 편승해 격렬히 반대한 데는,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두려움이 큰 작용을 했다. 사용후핵연료에서는 강한 방사선이 나온다. 하지만 4m 이상 깊이의 물속에 들어 있으면 강한 방사선을 내놓지 못한다. 현재 각 원전에서는 사용후핵연료를 수조(水槽)에 넣어 보관하고 있는데, 각 원전에 있는 사용후핵연료 수조는 2016년까지 여유가 있다.

원전 사업기획단 태스크포스팀 만들어 적극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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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롯카쇼무라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지었다.

새로 지을 방폐장에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소를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자 고전적인 반론이 등장했다. 사용후핵연료는 폐기해야 할 ‘쓰레기’가 아니다. 이를 재처리하면 다시 핵연료로 쓸 수 있는 ‘MOX(목스) 연료’를 만들 수 있다. 일본은 일찍이 비핵 3원칙을 선언했음에도,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이 있는 롯카쇼무라(六個所村)에 MOX 연료를 만드는 재처리공장을 함께 지었다. 일본의 핵정책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한국도 둘을 같이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실론자들은 “사용후핵연료 수조에 여유가 있는 만큼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을 지어 잘 운영하면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소는 그때 가서 다시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인 이해찬 총리가 가닥을 잡아주었다. 현실론을 적극 수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소는 방폐장 건설에서 제외될 뿐만 아니라 훗날 이를 짓더라도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이 있는 곳에는 짓지 않는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19년 파행 방폐장, 해법을 찾았나

동굴을 뚫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넣어두고 있는 스웨덴의 포스마크 처분장.

부담이 적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만 짓는다는 결정도 반핵논자들의 주장을 공허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아직 한국에서는 중준위 방사성폐기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중준위 방사성폐기물은 해체한 원자로나 원폭이나 수폭을 만드는 데 쓰였다가 해체된 장비 등을 가리키는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쓰레기가 나온 바 없다.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소 분리 조치

국내 1호 원전인 고리 1호기를 지을 때만 해도 원전 수명을 30년 정도로 예측했으나 기술 발전 덕분에 50년 이상 쓸 수 있게 되었다. 고리 원전1호기 해체도 20년은 더 지나야 하므로 올해 결정되는 방폐장에는 저준위 방사성폐기물만 들어오게 된다. 방폐장을 유치한 주민들로서는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협상술의 첫째 원칙은 쉬운 것부터 합의하고 어려운 문제는 뒤로 미루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풀어가다 보면 어느 틈엔가 미결(未決) 문제도 해결된다는 것이 협상학의 결론이다. 산자부는 협상할 수 있는 건을 정확히 추수해 난마같이 얽혀 있던 방폐장 문제를 풀 수 있는 가닥을 잡아갔다.

셋째로 펼친 것은 불신(不信)을 걷어내는 일이었다. 방폐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방폐장이 들어서는 지역에 대해서는 3000억원을 특별지원하고 모든 지자체가 탐내는 양성자가속기를 설치해주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반대파들은 “말로만 떠드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정권이 바뀌면 금방 뒤집어질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여기에 일부 주민들의 오해가 첨가되었다. 일부 주민들은 3000억원을 개개 주민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잘못 알아들었는데, 반핵단체가 ‘그 돈은 주민들에게 직접 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자 ‘정부에 속았다’며 시위에 나서는 등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이 장벽을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산자부는 법제화를 시도했다.



올해 초 산자부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방폐장 특별법)’을 만들었고, 3월31일 국회를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법은 제목에 아예 ‘중저준위’를 달고 있어,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소 건설은 배제돼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제8조에 유치지역 특별지원금 지원을 명시하고 8조와 관련된 시행령에서 3000억원을 지원한다는 문구를 넣어놓았다. 이 법이 제정되자 정부 지원을 믿을 수 없다고 한 반대파의 주장도 힘을 잃게 되었다.

여기에 몇 가지를 덧붙여 놓았다. 원전을 건설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자산이 21조원이고 연간 매출액이 5조1000억원대, 연간 수익이 8000억원대에 이르는 초대형 우량 기업이다. 특별법은 제17조에 방폐장을 유치한 곳에 한수원 본사를 이전한다고 밝혀놓았다. 한수원 본사가 옮겨가면 그곳 지자체는 연간 42억원 정도의 지방세를 거둘 수 있다. 특별법은 방폐장 건설 후 각 원전과 병원에서 나온 방사성폐기물이 들어오면 지자체에서는 반입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고도 명시했는데(15조), 이 수수료는 연간 85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양성자가속기 제공은 특별법에 포함돼 있지 않으나 정부는 반드시 제공한다고 약속했다. 방폐장을 짓는 데 대략 1조원, 양성자가속기 건설에 약 1280억원이 풀리면 방폐장 유치 지역은 특수를 노릴 수 있다. 이렇듯 특별법 등으로 규정한 지원 약속이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을 크게 불식시켰다.

넷째로 절차의 개선을 시도했다. 과거 반대론자들은 이른바 ‘꽃놀이패’ 전략으로 정부의 방폐장 건설 의지를 무너뜨렸다. 정부가 사전에 방폐장이 들어서도 될 곳을 찾기 위해 부지 조사를 하면 “왜 이곳에 방폐장을 지으려고 하느냐. 주민투표를 통해 먼저 동의를 받은 후 부지 조사를 하라”고 공격했다.

반대로 정부가 ‘지역주민이 먼저 방폐장을 유치하겠다고 결정하면 그 다음에 그곳에 방폐장을 지어도 되는지에 대해 조사를 하겠다’고 하면, 반대론자들은 “부지 조사도 해보지 않고 주민 의견을 묻느냐?”라며 반발했었다.

반대세력은 칼자루를 잡고 정부는 칼날을 잡고 있는 이 구도를 산자부는 아주 쉽게 깨버렸다. 3000억원 지원 등을 명문화한 특별법을 만든 후 방폐장 유치에 관심이 있는 지역은 ‘주민 동의와 부지 조사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할지 스스로 결정하라’고 한 것. 정부가 눈이 번쩍 띄는 조건을 내걸고 스스로 결정하라고 하자 하나 둘씩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고 득표율 올린 곳 선정 … 찬성 특표율 높이기 경쟁

방폐장 유치에 관심 있는 지자체에서는 전부 부지 조사를 먼저 해줄 것을 요구했다. 드디어 반핵단체들이 즐겨 사용해오던 ‘양날의 검’이 부러진 것이다. 그러나 산자부는 성급하게 나가지 않았다. 부안 사태가 커진 요인 중의 하나는 이곳에 성지를 갖고 있는 원불교 측의 저항도 한몫했다. 산자부는 이를 피할 수 있는 비책을 준비했다. 상수원이나 문화재 보호구역 등은 아무리 부지가 좋아도 선정에서 제외하겠다고 결정했다.

이로써 산자부는 적당한 부지를 갖고 있지 않는 지역은 자동탈락시킬 수 있는 효과를 얻었다. 또 부지 조사를 통해 적당한 지역을 먼저 선발함으로써 방폐장 유치가 결정된 후 지역 안에서 방폐장 유치 문제로 다투는 문제까지도 피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칼자루’를 쥐게 된 산자부는 또 하나의 절차를 마련했다.

2003년 방폐장 유치지역을 모집할 때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장을 신청 주체로 명시했었다. 이에 김종규 부안군수가 소신을 갖고 신청을 하자, 반핵단체의 개입으로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이때 어정쩡한 처지에 있던 부안군의회가 회의를 열어 다수결로 ‘방폐장 유치 거부’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김 군수는 궁지에 몰렸고 급기야 반핵단체는 사적 주민투표를 강행, 정부의 결정을 뒤집게 되었다.

산자부는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방폐장 유치 신청 절차에 ‘지방자치단체장은 반드시 지방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단서를 추가했다. 산자부로서는 오히려 신청 절차를 어렵게 한 것인데, 유치 쪽으로 틀어진 물길은 거침이 없었다. 4개 지방자치단체가 의회의 과반수 지지를 얻어 유치 신청을 낸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안군의회는 6대 6으로 의견이 맞서 끝내 신청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산자부는 ‘주민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이 찬성한 곳을 방폐장 유치 지역으로 결정한다. 과반수 이상 찬성한 지역이 여러 곳일 경우에는 최고 득표율을 올린 곳으로 결정한다’는 방침을 내놓자 지방자치단체 사이에서는 찬성 득표율을 높이기 위한 경쟁이 일어났다. 과거 방폐장 결정 과정은 거부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 무대였는 데 반해 이번 방폐장 결정은 유치 에너지가 과열돼 문제를 빚게 된 것이다. 방폐장 선정의 혁명적인 변화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가시화됐다.







주간동아 2005.11.08 509호 (p24~28)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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