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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불멸의 기록(28)|MLB 칼 립켄 주니어

2632경기 연속출장 ‘최고의 철인’

21살에 시작해 38살까지 18년 ‘개근상’ … 82~87년 동안은 한 이닝도 빠지지 않고 뛰기도

  •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2632경기 연속출장 ‘최고의 철인’

2632경기 연속출장 ‘최고의 철인’
칼 립켄 주니어는 메이저리그가 낳은 최고의 철인이다. 홈런왕, 타격왕, 다승왕이 우등상이라면 ‘연속출장 기록’은 개근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칼 립켄 주니어야말로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개근상 수상자에 적합한 인물이다.

1960년에 태어난 칼 립켄은 볼티모어 오리올스 감독을 지낸 아버지 칼 립켄 시니어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야구를 시작했다. 78년 2라운드(전체 48순위)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지명된 그는 원래 포지션은 투수이지만 마이너리그에서 내야수로 바꿨다. 당시 내야수로는 비교적 큰 키(193cm)였으므로 그는 대형 내야수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3년여 동안 마이너리그에서 기량을 닦은 뒤 1982년 5월30일 메이저리그에 첫발을 내딛었다. 82년 0.264의 타율과 28홈런 93타점으로 아메리칸리그 신인상을 받았고, 83년엔 0.318의 타율과 27홈런 102타점을 기록하며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어 MVP(최우수선수상)를 받으며 최고 스타 반열에 올랐다.

투수들도 부상 걱정해 몸 쪽 공 잘 안 던져

18년간 2632경기에 출장한 그에게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85년 왼쪽 발목 부상, 93년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 집단 난투극으로 오른쪽 무릎 부상을 당하는 등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고, 체력 저하로 유격수에서 3루수로 포지션을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성실과 불같은 투지로 이를 극복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상대팀 투수들조차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부상을 염려해 몸 쪽 공을 잘 던지지 않아 기록 경신을 거들었다는 것이다. 97년엔 슬럼프에 빠진 그가 연속출장을 위해 억지로 경기에 출전한다는 비판이 있었으나, 슬럼프를 극복하면서 팀의 중심 선수로 부활했다.

2632경기 연속출장 외에도 그의 기록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를 알 수 있다. 82년 6월5일부터 87년 9월14일까지 그는 한 이닝도 교체되지 않고 출장해 연속 이닝 출장 기록(8243이닝)을 세웠고, 역대 유격수 최다홈런(384개), 올스타전 16회 출전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안타, 득점, 2루타, 홈런, 타점 부문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 팀 최고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21시즌 동안 한 팀에서만 활약한 볼티모어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체력 부담이 큰 유격수임에도 3001경기에 출장해 3184안타, 431홈런을 기록한 강타자였고 골드글러브를 수상할 만큼 뛰어난 수비 실력을 갖춘 유격수였다. 통산 3000안타, 400홈런은 내야수로서는 최초의 기록이다. 그의 기록은 베리 본즈의 한 시즌 최다홈런 73개, 롤란 라이언의 5714탈삼진, 행크 에어런의 755홈런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기록’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루 게릭의 2130경기 연속출장 기록을 경신하던 95년 9월6일, 5회가 끝나고 열린 기념행사에서 볼티모어 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무려 20여분 동안이나 환호하며 대기록 작성을 축하해주었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선수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사상 처음으로 94년 월드시리즈가 취소되고, 95년 시즌도 늦게 개막하는 등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었다. 총 관중 수는 21%나 감소했고, TV 시청률도 크게 떨어져 광고 수입도 격감하는 등 갖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에게 매료되어 야구에 등을 돌리던 시기에 나온 그의 대기록은 팬들의 관심을 다시 메이저리그로 돌리는 계기가 됐다.

2001년 올스타전서 박찬호와 ‘홈런’ 인연

그 역시 야구선수이기 이전에 남들과 같은 인간이었기에 대기록 달성까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부상, 체력 저하, 슬럼프 등이 연속 경기 출장을 방해했지만, 그는 가장 큰 적은 ‘게으름과 식상함’이었다고 고백해 팬들에게서 더욱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한 팀에서 계속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대우를 받으며 새로운 팀으로 옮기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에도 코칭 스태프의 배려로 출전할 때는 스스로 부끄러웠고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98년 9월19일 “물러날 시간이다(I think the time is right)”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연속 경기 출장을 포기, 2632경기에서 대기록은 멈추게 된다. 스물한 살에 시작한 기록 도전이 서른여덟 살이 되어서 끝나게 된 것이다. 그는 기록 중단 이후에도 3시즌을 더 활약했고, 99년에는 타율 0.340에 18홈런을 기록하는 등 은퇴할 때까지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현역 마지막으로 활약한 2001시즌에는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올스타전에 출전했고, 박찬호의 ‘상당히 평범한’(의도적으로 치기 쉬운 볼을 던졌다는 게 정설이다) 직구를 받아쳐 홈런을 기록,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박찬호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다.

칼 립켄 주니어는 신인왕으로 시작해서 올스타전 MVP로 선수생활을 마친, 다시는 보기 힘든 ‘행복한 철인’이다.





주간동아 2005.07.12 493호 (p74~75)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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