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3

2005.07.12

독일 ‘부유세’ 도입 뜨거운 감자

총선 조세 관련 공약 여야 설전 … 녹색·사민당 승리해도 시행 가능성은 ‘희박’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hanmail.net

    입력2005-07-07 1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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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부유세’ 도입 뜨거운 감자
    조기 총선 국면에 들어선 독일의 각 정당은 요즘 연일 선거 공약으로 내걸 정책 다듬기에 바쁘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조세와 관련된 각 당의 정책이다. 구멍 난 국가 재정을 메우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조세 수입을 늘려야 한다는 데는 여야 간에 별 이견이 없지만, 어떤 방법을 택하느냐에서 각 당은 확연히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민련 당수 앙겔라 메르켈은 당의 총리 후보로 지명된 이튿날 “정권을 잡으면 세금 인하를 국민들에게 선사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때 그녀가 말한 세금이란 개인과 기업의 소득세 같은 직접세에 국한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기민련은 얼마 안 가서 부가가치세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기민련은 현재 16%인 부가가치세율을 20%로 올리겠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되면 한 해 조세 수입이 80억 유로 증가할 것이란 계산도 나왔다. 반면 좌파 성향인 녹색당과 사민당은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는 건드리지 않고 대신 부유세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조세 수입도 늘리고, 빈부 격차도 줄여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생각이다.

    조세 수입 늘리기 확연한 대조

    부유세 도입 논란의 포문을 연 곳은 녹색당이었다. 6월21일 열린 녹색당 최고회의에서는 정권을 잡은 지난 몇 년 동안 연립정부의 다른 한 축인 사민당에만 노동, 경제, 사회 문제를 맡긴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 있었다. 물론 녹색당의 주요 관심사는 여전히 환경 문제, 외국인 통합, 남녀 불평등 개선 등이지만 고실업 사회라는 현실을 고려해서 경제, 노동 분야의 각종 정책에 대해서도 당 나름대로의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져왔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이 고소득자와 기업에 대한 특별 과세였다. 녹색당 당수인 클라우디아 로트는 “기민련, 자민당이 계획하는 조세제도는 부자들을 더욱 배부르게 하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득을 떨어뜨려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는 정의롭지 못한 정책”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다음날인 6월22일 녹색당과 사민당은 부유세 도입 문제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사민당 역시 부자들로 하여금 공공복리를 위해 좀더 많은 세금을 내게 해야 한다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녹색당과 생각이 같다. 그러나 조세정책의 각론에서는 양당의 의견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사민당은 독일 국민들의 평균소득보다 수백 배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나 유명 예술가, 축구선수 등을 부유세 납부 대상으로 고려한 반면, 녹색당은 재산이 백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려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현재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을 부유세 과세 대상으로 할지, 아니면 현재의 소득과 무관하게 총 재산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부자들을 대상으로 특별 과세할지가 이날의 논쟁거리였다.



    사민당은 부유세 도입 문제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당내에 보수적인 분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녹색당은 재산세의 부활까지 포함하는 등 과격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유·무형 자산에 대한 과세는 매우 복잡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문제다. 우선 어떤 식으로든 과거에 세금을 낸 재산에 대해 또다시 세금을 물리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중과세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이나 주식 등의 재산은 수시로 가치가 변하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가 어려워 행정에 큰 부담을 준다. 게다가 ‘다양한 유형의 자산을 상이한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과세 기준의 동등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은 뒤로 독일에서는 재산세 부과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러나 녹색당은 ‘부의 재분배’ 원칙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고 있다.

    “슈마허가 경치 좋아 스위스에 사나”

    한편 사민당 역시 6월26일 최고의원 모임에서 5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부유세 도입을 이번 총선의 핵심 공약으로 내세울 것을 결의했다. 그러나 사민당이 내세우려는 부유세는 초고소득자의 소득에 부과되는 것이지, 재산에 대해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녹색당이 계획하는 법안과는 차이가 있다. 이날 오후에 있었던 뮌터페링 당수의 발표에 따르면 혼자 사는 사람일 경우 연봉 25만 유로(약 3억원), 가족이 있는 경우 부부 합산 연봉이 50만 유로(약 6억원)를 넘는 초고소득자에게 기존의 소득세에 3%의 세금을 더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법정 최고 소득세율이 42%인데, 위의 기준에 해당하는 약 6만명의 초고소득자는 연봉의 45%를 소득세와 부유세 명목으로 국가에 납부하게 된다. 단, 이렇게 거둬들인 부유세는 오직 교육과 연구 지원 등 ‘미래를 위한 투자’에만 사용될 것이라고 뮌터페링은 밝혔다.

    슈뢰더 총리 또한 6월27일 독일 국영방송인 ARD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면서 사민당과 보조를 맞췄다.

    “부부가 연 50만 유로 이상을 번다면 당연히 국가의 장래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기여해야 한다. 초고소득자가 추가로 내는 세금은 연구와 국가 발전, 그리고 교육의 목적으로만 사용될 것이다. 이 일을 위해 독일 평균 소득보다 100배는 더 버는 사람들이 추가로 세금을 더 내야 함은 국민으로서 당연한 의무다.”

    그러나 이러한 집권 여당의 ‘부유세 도입’ 총선 공약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선 사민당 내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 자문을 맡고 있는 베르트 뤼루프는 “여당의 부유세 도입 공약은 경제적 의미가 없는, 단지 상징적인 정책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뮌터페링이 발표한 그대로 부유세가 시행된다 해도 늘어나는 조세 수입은 10억 유로 정도로, 이것으로는 국가 재정이 겨우 0.6%만 확충되는 미미한 효과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 현재도 전체 인구의 10% 정도 되는 고납세자가 전체 조세 수입의 절반 이상을 감당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국가 재정의 의존도를 더 높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기사련은 “부유세는 경제적으로 볼 때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면서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자민당의 사무총장 디르크 니벨은 ‘오스나브뤼크 신보’와의 인터뷰에서 부유세 공약을 “대중 영합적인 선거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했다. 니벨은 정부와 여당이 최고 소득세율을 53%에서 42%로 낮춘 것이 바로 올해 초였음을 지적했다. 사실 슈뢰더 정부 들어서 세금 인하는 지속적으로 추진돼온 사항이었고, 연방 재무부 장관인 한스 아이헬은 올해 초만 해도 비판적인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득세 최고 세율의 인하를 강행했다. 당시 그가 세율 인하의 이유로 내세운 것은 ‘국제사회에서 독일 기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정부가 고세율로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사민당과 녹색당이 선거를 앞두고 태도를 180도로 바꿔서 부유세를 들먹이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선거 전술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것은 오스카 라퐁텐과 그레고어 귀지의 신좌파 연합에 좌파 성향의 유권자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고 니벨은 해석했다.

    야당의 대체적인 생각은 기업과 고소득자들이야말로 독일이 진정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을 외국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수 성향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필자 만프레드 쉐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축구황제 프란츠 베켄바워는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고, F1의 영웅 미하엘 슈마허는 스위스에 산다. 이들이 경치 때문에 그곳에 사는 줄 아는가?”

    사실 사민당과 녹색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 해도, 야당이 상원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부유세 같은 논란이 많은 정책이 시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많은 독일 국민들은 부자들에게 더 많은 조세 부담을 지우려는 정부 여당의 노력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가 부유세 도입에 찬성했고, 27%만이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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