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3

2005.07.12

경제 올인할 벤처 북한? 이라크?

자이툰 효과적 활용 미비 대북 쏠림 현상 … 대미 협상용 카드 아닌 실리 챙기기 시급

  • 이정훈 기자 hoon@donag.com

    입력2005-07-07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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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 겸 NSC 상임의장이 4시간 50분 동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제시했다는 20년에 걸친 대대적인 대북 경제지원 계획인 ‘북한판 마셜 플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정 장관이 미국을 막아서며 북한에 ‘팔을 벌려준’ 덕분일까. 이미 차관급 회담에 응해 비료를 받은 북한은 장관급 회담에도 적극 참여함으로써 최대 50만t의 쌀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정 장관에게는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기회를 주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진 자문기관이다. 이 회의의 상임의장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고, 핵심 포스트인 사무차장은 대북 전문가로 알려진 이종석 박사가 맡고 있다. 대북 문제를 주로 다루는, ‘정-이 체제’로 운영되는 NSC는 과연 국가 안보와 외교·통일에 대해 올바른 판단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가. 한 현역 군인의 지적이다.

    “한반도는 왜 분단됐는가. 일본의 식민 지배에 이어 미국과 소련이 분할 지배를 하다 전쟁이 일어났고, 중국이 적극적으로 참전함으로써 분단이 고착화됐다. 우리 경제의 초고속 성장과 북한 경제의 몰락도 4강 체제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통일에 대한 해법도 4강 체제 속에서 찾아야 하는데, 현 정부는 4강 문제를 다루는 외교 전문가가 아니라 남북한 문제에 올인하는 대북 전문가 중심으로 NSC를 구성했다. 그러니 현실과 동떨어진 안보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NSC 주변 4강 외면 남북한 문제에 집착”

    대북 전문가가 이끄는 NSC의 노선은 ‘자주(自主)’. 하지만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통일은 4강 체제를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려놓아야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게 하려면 4강 중에서도 가장 힘센 미국을 움직여야 한다”며 한미동맹 체제를 중요시한다. 동맹파는 자이툰 부대의 파병에 적극적이었으나, 자주파는 ‘당장은 한미동맹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생색 내기 파병을 주장했다. 자주파의 이러한 판단에 대한 한 관계자의 비판이다.



    “자이툰 부대와 독도가 없었다면 자주파는 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자이툰이 이라크에 가 있는 관계로 자주파가 주축을 이룬 노무현 정부는 미국에 어느 정도 큰소리칠 수 있었다. ‘우리가 북핵 문제를 다뤄볼 테니 미국은 빠져라’ 하면서 대북 마셜 플랜을 제시할 수 있었다. 또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덕분에 노 정부는 국민에게 일본에 맞서 싸우는 모습도 보여줄 수 있었다. 자이툰과 독도가 없었다면 노 정부의 자주(自主)는 ‘공염불’이 될 뻔했다.”

    결정권을 쥔 자주파가 생색 내기로 결정한 것이지만 동맹파는 자이툰 부대의 파병을 반겼다. 동맹파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 합참은 자이툰 부대 파병지로 저(低)개발 유전지대이자 저항세력이 적은 모술과 키르쿠크를 선정하고 이 지역을 소개하는 책까지 펴냈다. 오래전에 개발된 유전지대인 바스라는 영국군이 전투를 통해 장악했고, 수도인 바그다드는 미군의 영역이니, 한국군은 마지막 노른자위 땅인 모술과 키르쿠크로 들어가자고 했던 것.

    그러나 이 두 곳은 이라크인과 쿠르드족 간의 영유권 다툼이 잠재해 있어 ‘100%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맹파는 약간의 인명 손실을 겪더라도 모술과 키르쿠크로 가야 챙길 수 있는 파이가 크다고 판단했다. 이들이 생각한 첫 번째 실리는 석유였고, 두 번째는 실전 경험이었다. 자이툰 부대가 쌓을 실전 경험은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세 번째는 자이툰 부대를 따라 들어올 한국 기업들이 누릴 전쟁 특수였다.

    경제 올인할 벤처 북한? 이라크?

    김선일 씨 피살 사건은 NSC로 하여금 실리를 포기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파병을 결정케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로 구성된 자주파는 이 주장을 배척하고, 미군이 중대 병력만 주둔시켰던 쿠르드족 수도인 아르빌에 3700여명의 자이툰 부대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때 김선일 씨 피살 사건이 발생하면서(2004년 6월22일), NSC는 손쉽게 의지를 관철할 수 있었다. 자이툰 부대가 아르빌에 도착한 2004년 8월부터 NSC는 허가받지 않은 한국인의 이라크 입국을 금지했다.

    열매도 없는데 이라크 왜 갔나

    그러나 자이툰 부대가 성공적으로 아르빌에 안착하고, 아르빌의 특수도 괜찮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러 기업들이 아르빌 진출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때인 지난해 11월 다섯 명의 목회자가 선교를 목적으로 이라크를 무단 입국한 사실이 밝혀지자 제2의 김선일 씨 사건을 우려한 NSC는 테러대책실무회의를 열어 정부 허가 없이 이라크에 들어갔다 돌아온 사람은 재출국을 금지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그로 인해 ‘한국의 땅’으로 인식됐던 아르빌 지역에 한국 기업들이 들어가지 못하자 30여개 나라에서 온 기업들이 진출하기 시작했다. 자이툰 부대 영내 사업을 위해 진출해 있던 일부 한국 기업들이 영외로 나가 사업을 펼치게 되자, 아르빌 진출을 노리고 있던 기업들 사이에서 불만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서는 사업과 무관한 동맹파 사람들조차 동조하는 데 한 관계자는 이렇게 비판했다.

    “벤처사업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ne)’을 노리는 사업의 총칭이지, IT 산업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1700여명의 군인을 희생시켜 가면서도 이라크를 장악해 들어가는 것은 그것이 미국에는 사활이 걸린 벤처사업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가가 1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선 지금 적절한 유전지대를 확보하지 못하면 슈퍼 파워를 유지할 수가 없다. 과거 한국은 미국이 결과적으로 포기한 베트남에서 만만찮은 돈벌이를 했다. 그런데 왜 정부는 미국이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이라크에서의 전후(戰後) 특수 벤처사업을 펼치지 못하게 하는가.”

    쿠르드족의 꿈은 독립국가 건설인데, 이를 위해 쿠르드 자치정부는 국립대학 격인 살라딘 대학을 대규모로 증·개축하고, 종합운동장을 건설하며, 상하수도 체계를 갖추는 3대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자치정부는 3대 사업 중에서도 독립 시 특히 필요한 인재를 공급할 살라딘 대학 개축을 가장 시급한 사업으로 꼽고 있다. 지난해 말 아르빌이 예상외로 안전하다고 판단한 건설교통부는 3대 사업을 모두 가져오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가 NSC의 제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국내의 몇몇 기업은 상당한 준비를 한 다음이었다. 한편 쿠르드 자치정부는 1단계인 살라딘 대학 설계 사업 발주를 앞두고 ‘자이툰 부대가 요구하면 한국 기업에 사업권을 줄 수 있다’는 의미로 자이툰 부대의 눈치를 살폈는데, 자이툰 부대는 NSC의 지침 때문에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자치정부가 자이툰 부대의 눈치를 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기업들은 더더욱 애를 태웠다. 이런 가운데 4개국에서 온 다섯 기업이 살라딘 대학 설계 사업에 도전했는데, 막판에 평화TCM이라는 한국계 회사가 용케 도전장을 내밀어 노르웨이 기업과 함께 최종 결선에 오르게 되었다.

    평화TCM은 2003년 두 명의 직원을 희생시키면서 이라크에서 경험을 쌓은 오무전기가 국내외 기업들과 협력해서 만든 회사. 설계 사업을 따내면 10억 달러로 추산되는 살라딘 대학 건설 공사까지도 수주할 수 있으므로 평화TCM은 적극적으로 뛰어다녔다. 평화TCM은 다국적 기업이기 때문에 이라크에 출입이 가능했는데, 최근 이 기업의 주체가 오무전기란 사실이 알려지자 정부는 이 회사 관계자의 이라크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경제 올인할 벤처 북한? 이라크?

    울산항에서 남 측이 제공한 비료를 싣고 있는 북한 상선 백두산호.

    문제는 정부 방침 때문에 아르빌 진출이 좌절된 기업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때문에 이들은 “열매도 따먹지 못하게 하려면 뭐 하러 그 많은 돈을 들여 자이툰 부대를 아르빌에 파병했느냐”라며 NSC의 결정을 원망하고 있다.

    유엔은 이라크에서 500억 달러 규모의 공사를 발주하기로 한 미국과 별도로 이라크 재건을 돕기 위해 UNAMI(UN Assistant Mission for Iraq)라는 이름의 임시기구를 만들었다. 이 기구의 사무소는 바그다드와 바스라, 아르빌 세 곳에 건설되고 있다. 유엔 직원들은 가장 안전한 아르빌 근무를 선호해, 아르빌의 UNAMI 사무소는 큰 규모로 지어지고 있다.

    대기업 북한 투자 요청 시큰둥

    이 사무소는 7월 개소될 예정이다. 개소를 앞두고 유엔은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 사령부인 MNC-1에 이 사무소에 대한 경계 지원을 요청했다. MNC-1 사령부는 자이툰 부대에 이 일을 부탁했다. 자이툰 부대는 이를 합참에 알렸고, 합참은 다시 NSC에 보고했다. 그러자 NSC는 상임위원회를 열어 ‘유엔 사무소 경계는 자이툰 부대 파병 목적에 맞지 않는다’며 불가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MNC-1은 물론이고 MNC-1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미국 NSC도 불만을 표시했다. 이 무렵 4월27일 이종석 사무차장이 미국을 방문해 잭 클라우치 미국 NSC 부보좌관을 만났을 때, 잭 클라우치 부보좌관이 이 문제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이 차장은 “UNAMI 경계는 평화와 재건 지원이라는 자이툰 부대 파병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다.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에 있는 재외국민도 보호하지 않고 있는데 유엔 사무소를 보호한다면 이는 내외국인 차별에 해당한다”며 불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코앞에 닥치자 NSC는 다시 상임위원회를 열어 ‘OK’로 선회했다. 이때 NSC가 내건 명분은 ‘UNAMI는 이라크 평화·재건 활동을 주 임무로 하고 있어 이를 경계해주는 것은 국회가 동의한 자이툰 부대 주둔 임무에 해당한다’였다. 그러나 NSC가 태도를 바꾼 진짜 이유는 북한 때문이었다. 한 안보 문제 관계자의 얘기다.

    “6월10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북핵 문제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히고 양해를 얻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 측에 뭔가 선물을 줘야 했으므로 UNAMI 사무소 경계를 수용한 것이다. 한미정상회담 직전 자이툰 부대 주둔 연장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NSC는 자이툰 부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대북 접근을 위한 대미 협상용 카드로 이용했다.”

    NSC는 어떤 생각으로 북한에 비료와 쌀을 제공하며 대화 채널을 구축하려고 하는 것일까. 한 관계자는 무상 원조에 의한 북한 포섭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 미국이 잉여농산물을 한국에 무상 원조했는데 그로 인해 한국에서는 무상 원조를 받는 농산물은 더 이상 재배하지 않았다. 그 후 무상 원조가 중단됐을 때 무상 원조를 받던 농산물 생산지는 이미 무너진 뒤였다. 결국 우리는 돈을 주고 이 농산물을 사다 쓰는 처지가 되었다. 미국은 경쟁자를 없애고 한국 시장을 오랫동안 독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 처지에서 몇 년간의 무상 원조는 판촉비도 안 되는 투자였다.

    우리 정부는 이와 같은 방법을 북한에 적용하려고 한다. 우리가 제공하는 비료와 쌀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북한은 우리에게 꼼짝 못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결국 북한은 우리의 시장으로 편입되면서 통일의 물꼬가 터지는 것이다. 북한판 마셜 플랜은 이러한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NSC는 북한을 한국이 미래의 활로를 개척할 수 있는 중요한 벤처 무대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조차 북한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반면 이라크에서는 전쟁에 참전한 미국, 영국은 물론이고 교전권이 없는 일본까지 뛰어들어 법석을 피우고 있다. 현재까지 북한에서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지만, 이라크는 애초 석유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던 아르빌에서도 유징이 발견될 정도로 유전이 많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올인해야 할 벤처 무대는 북한인가, 이라크인가. 동맹파는 이라크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권력을 쥐고 있는 자주파 NSC는 북한을 선택했다. 국내 중소기업 중에는 개성공단 진출에 적극적인 기업이 있지만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은 북한에 투자해달라는 노무현 정부의 부탁을 완곡히 거절했다고 한다. 왜 대기업들은 동맹파와 같은 판단을 내리는 것일까.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는 머지않아 역사가 판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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