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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검찰 개혁’ 태풍전야

끈끈한 신뢰 원천 ‘해마루 결의’

천 장관 원칙과 소신 노 대통령과 닮은꼴 … 어려운 고비마다 ‘정치 흑기사’ 자처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끈끈한 신뢰 원천 ‘해마루 결의’

끈끈한 신뢰 원천 ‘해마루 결의’

법무법인 해마루 사무소와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오른쪽).

2003년 10월. 재신임정국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청와대에 천정배 의원이 직격탄을 날렸다.

“정보와 권력을 독점, 전횡을 일삼아온 핵심 실세들은 물러나야 한다.”

당에서 하고 싶은 말이었지만, 누구도 하지 못한 말이었다. 천 의원은 핵심 실세가 누구인지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광재 대통령 국정상황실장을 중심으로 한 386 인사를 겨냥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2000년 정동영 장관과 함께 김대중 정부 핵이었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등 정권 실세들의 전횡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을 때처럼 파장은 컸다. 천 의원 발언 후 이 실장은 청와대를 나왔다. 총선 출마가 명분이었지만 모양새는 사나웠다. 이를 전후해 일단의 기자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티타임’을 가졌다. 기자들의 궁금증은 단순했다. “천 의원의 조준사격이 서운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 양반은 그게 주특기 아니냐. 이것저것 사정 안 봐주고.”

당시 기자들은 노 대통령의 이 말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다른 뜻으로 해석한 기자들도 있었다. 천 의원이 이 발언 이후 청와대와 매우 불편한 관계로 돌아섰다는 것. 뒷말은 1년 후인 2004년 10월경 천 장관이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할 때까지 이어졌다. 당시 천 대표와 대통령 사이에 사인이 맞지 않자 “청와대와 천 대표의 앙금이 풀리지 않은 것 같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



이를 전후해 노 대통령이 주변에 ‘천 대표는 아직도 나를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 보는 모양이지’라는 말을 했다는 후문도 따라붙었다.

대통령의 이 멘트를 확인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천 장관의 원칙론 때문에 불편을 느낄 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원칙과 소신을 다른 말로 하면 고집과 맥이 통한다. 천 의원의 원칙도 고집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은 1990년대 초 천 장관을 만난 뒤 천 장관에 대한 본질적인 신뢰를 한번도 거둔 적이 없어 보인다. 6월29일 노 대통령이 그를 법무부 수장으로 발탁했을 때도 두 인사를 관통하는 신뢰의 깊이가 있기에 가능한 인사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민변에서 신뢰 첫걸음 … 한결같은 행보

두 사람이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정치적 동지이자 도원결의를 맺은 것은 해마루 시절이다. 해마루는 92년 천 장관이 만든 법무법인. 88년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서로 간의 기본적인 신뢰 관계를 쌓은 것도 큰 영향을 주었다. 노 대통령은 93년부터 98년까지 법무법인 해마루의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 인연을 계기로 천 장관은 2002년 노 대통령이 경선 참여를 선언하자 현역으로는 처음으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후 천 장관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흑기사를 자처했다. 2002년 6월과 9월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바닥을 길 때도 그는 한결같이 노무현 지키기에 나섰다. 당시 후단협(후보단일화협의회)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끈끈한 신뢰 원천 ‘해마루 결의’

2004년 6월 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가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 악수를 하고 있다.

“당시 노 후보를 둘러싼 인적 네트워크가 취약해 몇몇 사람만 와해시키면 후보를 교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가운데 천 장관을 대상으로 여러 사람이 설득 작업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여러 의원들이 마음을 돌려먹었지만 천 장관을 비롯한 몇몇 의원은 끝까지 노 후보를 지켰다. 이와 관련 천 장관의 후일담이다.

“경선을 통해 선출한 후보를 지지도가 낮다고 해 흔드는 것은 원칙에 맞지 않다. 나는 노 후보로 대선을 치른 뒤 선거에서 패배하면 정치를 그만둘 생각이었다.”

조영래 변호사·DJ와도 깊은 인연

노 대통령은 천 장관의 이런 원칙에 대한 소신과 집념을 누구보다 잘 안다. 때문에 누구보다 그를 신뢰한다. 노무현 정부 출범 뒤 한때 해마루가 인재 풀로 주목받은 것도 어려울 때 등돌리지 않은 천 장관의 이런 처신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임종인 의원(열린우리당)과 대통령민정비서관 전해철 변호사가 해마루 출신이다. 군 법무관 출신인 임 의원은 95년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통추의 주축이던 노 대통령을 도왔다.

해마루는 자유분방하다. 천 장관이 대표격이지만 그와 다른 정치적 길을 찾아나선 변호사도 많다. 13명인 해마루 소속 변호사들 중에는 열린우리당을 비판하면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변호사들도 포함돼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민노당 인권위원으로 활동했던 변호사들이다. 지난 총선에선 민노당을 지지하는 변호사 89명의 공동선언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천 장관은 이들의 정치적 선택을 문제 삼은 적이 없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천 장관의 정치적 동지라면, 자신의 정신세계를 재야와 인권 쪽으로 이끈 인물은 조영래 변호사다. 천 장관은 그의 저서 ‘꽁지머리를 묶은 인권변호사’에서 조 변호사를 이렇게 평가했다.

“조 변호사를 따라다니면 최소한 잘못 사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가 가는 곳에 진실이 있다.”

천정배와 조영래가 인연을 맺은 것은 81년. 당시 ‘김&장 법률사무소’에 들어간 천정배는 사법연수원생 신분으로 김&장에서 활동하던 조영래를 만났던 것.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은 82년 조영래가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85년 같이 남대문합동법률사무소를 개소하면서 본격적으로 ‘동료’가 됐다.

목포가 낳은 3대 천재로 회자되는 천 장관은 목포 출신 김대중 전 대통령을 통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천 장관은 지금도 김 전 대통령이 얘기해준 “무엇이 되려고 하기보다 무엇을 하려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라는 화두를 가슴에 안고 산다. 김 전 대통령을 보고 꿈을 키운 천 장관은 법무부 장관직에 오르는 것을 계기로 ‘잠룡(潛龍)’ 대열에 합류했고, 국민들은 그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5.07.12 493호 (p22~24)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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