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7

2005.01.04

탁구 ‘그랜드슬램’ 누가 넘보랴

1980~90년 올림픽·세계선수권서 맹활약 … 단식·복식·혼합복식·단체전 모두 우승 금자탑

  •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입력2004-12-31 12: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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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구 ‘그랜드슬램’ 누가 넘보랴

    현정화는 1993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스웨덴)에서 개인단식 정상에 올랐다.

    스포츠 세계에는 특정 종목에 강한 나라들이 많다. 브라질의 축구, 케냐의 마라톤, 쿠바의 야구, 한국의 양궁, 그리고 중국의 탁구…. 특정 종목에 강한 나라에서 그 종목의 ‘불멸의 기록’을 세우는 선수나 팀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브라질 축구의 펠레, 쿠바 복싱의 스테벤슨, 한국 양궁의 김수녕이 그렇다.

    그런데 중국이 전 세계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탁구에서 불멸의 기록을 세운 한국 선수가 있다. 19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현역 시절 피노키오로 불리며 한국 여자 탁구의 대명사로 활약한 현정화가 바로 그 주인공.

    중국 강세로 당분간 재현 힘들 듯

    현정화는 세계 최정상을 다투는 무대인 올림픽과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개인단식, 여자복식, 혼합복식, 단체전 우승을 모두 차지하는 이른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중국에 치이고 유럽세에 밀리는 탁구에서 한국 선수가 4종목에 걸쳐 고루 정상에 오르는 일은 당분간 재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현정화는 87년 인도 뉴델리에서 벌어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복식에서 양영자 선수와 함께 금메달을 차지했다. 당시 현-양 조는 결승전에서 중국의 다이리리와 리해분 조를 2대 0으로 이기고 정상에 올랐다. 이는 73년 유고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선배들이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 이후 두 번째로 세계정상을 차지한 쾌거였다.



    탁구 ‘그랜드슬램’ 누가 넘보랴

    자원봉사 활동에 나선 현정화.

    현정화, 양영자 조는 1년 뒤인 88년 서울올림픽 여자복식 결승전에서 중국의 자오즈민 첸징 조를 2대 1로 이겨 다시 한번 세계 정상임을 확인해주었다. 현-양 조가 먼저 한 세트를 따내고 두 번째 세트를 내줘서 박빙의 승부가 예상됐지만 마지막 3세트에서 싱겁게(21대 9) 이겼다. 현정화는 금메달을 안겨준 이 올림픽 경기를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기억한다. 현-양 조에 패한 자오즈민은 나중에 안재형과 결혼했다.

    현정화는 89년 독일 도르트문트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유남규와 혼합복식을 이뤄 금메달을 땄다. 유-현 조는 유남규가 왼손이고 현정화가 오른손인 데다, 유남규는 왼손 드라이브형, 현정화는 오른손 전진 속공형으로 궁합이 잘 맞았다. 예선 첫 경기부터 승승장구해서 결승전에서도 유고슬라비아 조를 2대 0으로 가볍게 이겼다. 현정화는 “유남규 선배와 워낙 호흡이 잘 맞아서 쉽게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탁구 ‘그랜드슬램’ 누가 넘보랴

    후배 선수를 지도하고 있는 현정화.

    현정화는 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는 북한과 단일팀을 이뤄 금메달을 땄다. 여자단체전 금메달은 73년 유고 대회 이후 18년 만의 쾌거였다. 당시 남북 단일팀은 중국과 치른 결승전 첫 경기에서 중국이 내세우는 세계 1인자 덩야핑에게 강한 유순복을 내세웠고, 유순복은 기대대로 덩야핑을 2대 0으로 제압했다. 두 번째 단식에 나선 현정화는 중국의 2인자 가오준을 2대 0으로 눌러 남북 단일 팀이 2대 0으로 앞서나갔다. 그러나 이분희와 현정화가 나선 여자복식에서 중국의 덩야핑, 치아홍조에 1대 2로 패하는 바람에 네 번째 단식으로 승부를 미뤄야 했다. 네 번째 단식에 나선 현정화는 천적 덩야핑을 만났다. 현정화 역시 덩야핑에게 1대 2로 패해 2대 2가 되어서 마지막 5차전 단식 경기에서 최종 승부를 가려야 했다. 남북 단일팀의 5차전은 1차전에서 덩야핑을 물리치는 등 좋은 컨디션을 보이던 유순복이 나섰고, 중국은 2차전에서 현정화에게 패한 가오준을 내세웠다. 유순복은 가오준에게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2대 0으로 이겨 남북한 동포에게 값진 우승컵을 바쳤다.

    탁월한 승부욕 지도자로 활약

    이로써 현정화는 여자복식, 혼합복식, 단체전에서 세계 정상에 올라 이제 개인단식에서 우승하면 대망의 그랜드슬램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현정화는 중국의 덩야핑에게 단체전을 제외하고도 개인전에서만 3전 전패를 하는 등 한 번도 이기지 못해 그녀와 맞대결하지 않고 이기는 것만이 세계 정상에 오르는 길이었다. 즉 덩야핑이 부상으로 출전하지 않거나, 출전하더라도 결승전에서 만나지 않고 그 전에 다른 선수가 덩야핑을 잡아주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93년 스웨덴의 예테보리에서 벌어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덩야핑이 중국에서 귀화한 싱가포르의 진중홍에게 예선에서 패해 탈락한 것이다. 현정화는 천적 덩야핑이 없는 세계무대에서 그야말로 ‘여왕’이었다. 현정화는 준결승전에서 셰이크핸드 전진속공형인 루마니아의 바디스크를 제압했고, 결승전에서는 중국에서 귀화한 왼손 셰이크핸드형인 대만의 첸징을 만나 3대 0 스트레이트로 이기고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현정화는 부산 대신초등학교 3학년 때 탁구부실을 우연히 지나다 코치의 권유로 라켓을 잡기 시작했다. 계성중학교 때까지는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부터 전국을 제패하기 시작해 99년 은퇴할 때까지 10여년 동안 한국여자 탁구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파워는 좀 부족하지만 승부욕이 대단한 선수로 평가된다. 현정화는 부산 출신답게 광어회를 좋아하고, 지도자로 변신한 뒤엔 자신처럼 승부욕과 정신력이 뛰어난 후배를 특히 아낀다고 한다. 한국 여자탁구의 ‘얼짱’으로 화장품 광고모델로도 활약했고, ‘여왕이기보다는 여자이고 싶다’는 수필집을 펴내는 등 재색을 겸비한 선수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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