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7

2005.01.04

포항공대와 연계 교육 … 영재들은 교수님과 특별 수업

  • 입력2004-12-31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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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제철고등학교 ● www.pocheol.hs.kr ● 054-279-4710



    12월10일 오후 4시 경북 포항시 포항공과대학교 일반물리학 실험실. 대학생 형, 누나들 사이로 교복 차림의 고등학생 4명이 눈에 들어왔다. ‘빛의 속도 측정기’를 이용해 실험하는 데 한창인 이들은 포항제철고등학교(이하 포철고)에서 선발된 ‘물리 영재’들. 이 대학 물리학과 유창모 교수 지도 아래 과학 영재를 위한 특별 프로그램 ‘HSP(Honors Student Program)’ 과정을 듣는 중이다.

    “과학에 재능 있는 학생들에게 지적 자극을 주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에요. 교내 경시대회를 통해 선발된 이 아이들은 매주 한 번씩 포항공대 전공 교수의 특별수업을 듣고, 수시로 대학원생들의 실험에 옵서버로 참여하지요. 직접 실험을 하기도 하고요. 일단 HSP 과정에 들어오면 고등학교 1, 2학년 2년 동안 포항공대와 연계한 다양한 과학 프로그램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김유숙 교사(물리학)가 설명하는 ‘HSP’는 자립형 사립고 포철고의 교육 방식을 선명히 보여주는 한 사례다. 입시 위주의 고등학교 교육이 간과하기 쉬운 ‘살아 있는 공부’를 실현하는 것, 포항공대 포스코 등 학교 인접 시설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학생들의 필요에 맞게 수준별 맞춤 학습을 제공하는 것. 바로 포철고가 자랑하는 교육 특징이다.



    포철고가 키우는 ‘영재’는 물리 분야에만 한정돼 있지 않다. 포철고의 교내 경시대회를 통해 선발된 ‘수학 영재’ 10명은 러시아 국립 노보시비르스크공대 수학교수 출신인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포노마레브씨에게서 매주 두 시간씩 독특한 수학 수업을 받는다. 포노마레브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러시아의 수학 전문학교에서 영재교육을 받은 뒤 교수가 된 인물로, 관련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40여편 게재했을 만큼 러시아 영재교육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교육자. 그의 강의실 벽에는 “‘분자가 분모보다 큰 분수’와 ‘분자가 분모보다 작은 분수’가 같은 분수를 찾아라” “사과 5개를 다섯 명에게 나누어라. 단 모든 사람에게 사과가 돌아가고 하나가 바구니에 남도록 해라” 같은 알쏭달쏭한 수수께끼 문제들이 잔뜩 붙어 있다. 학생들은 이 문제를 놓고 포노마레브씨와 함께 토론하며 상상력과 사고력을 총동원해 하나하나 답을 ‘만들어’나간다.

    ‘화학 영재’ 4명은 포항공대 화학과 최희철 교수의 연구실에서 ‘꼬마’ 조교로 활동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선발된 포철고의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대학 입시와 큰 연관성이 없는 ‘창의성 교육’을 받는 모습은 일견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포철고는 매해 졸업생 가운데 25% 정도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에 진학하고 전교생의 90% 이상이 4년제 대학에 합격하는 세칭 ‘명문고’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의 목표가 여전히 ‘일류대에 더 많은 학생들을 보내는 것’인 현실에서, ‘명문고’가 ‘창의성 교육’을 실험하며 입시 교육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에 대해 포철고 강석윤 교감은 “명문대 진학은 고등학교 교육에 따르는 결과일 뿐, 그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우리 학교는 포스코가 임직원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지은 학교에서 출발했습니다. 지금도 재학생의 70% 이상이 포스코 직원 자녀지요. 그러니 ‘내 아이를 키운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요. 개교 초기에는 ‘서울대에 몇 명 보냈나’가 최대 관심사였던 적도 있지만, 학교가 규모를 갖춰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인성과 창의성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최고의 시설에서 질 높은 교육을 받게 하는 것, 그것이 학교와 재단의 목표입니다.”

    강 교감의 자랑처럼 포철고의 교육 시설과 프로그램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포철중 포철공고와 포항공대까지, 인접한 학교들이 울타리 없이 자유롭게 교류하며 서로의 시설을 활용하고 연계 교육을 진행하는 덕분이다. 운동장에 마련돼 있는 골프 연습장에서 전교생이 체육시간을 이용해 골프를 배우고, 국내 최고 수준으로 건설된 체조장에서 러시아인 코치한테서 체조를 지도받기도 한다. 과학반 학생들을 위해 물리·화학·지구과학 등 다양한 실험실이 언제나 개방되며, 자체 오케스트라가 활동할 정도로 특기 적성 교육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HSP 등을 통해 국내 최고 수준인 포항공대 연구진이 진행하는 특별수업을 들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자유롭게 등록금을 책정할 수 있는 ‘자립형 사립고’임에도, 이처럼 다양한 혜택을 누리는 포철고 학생들이 일반 공립학교와 똑같은 액수의 등록금을 낸다는 점.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전액 포스코 교육재단이 지원하기 때문이다. 학교 운영비 가운데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 80%는 재단 지원금이다. 포철고 학생들은 누구나 막대한 액수의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포철고가 입시 교육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HSP가 2학년 때 마무리되는 것은 3학년 학생들이 수능 준비에 전념할 수 있게 돕기 위해서고, 서울에 비해 과외나 학원 등의 교육 기회가 적은 학교의 특성상 전교생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일 오후 10시까지 독서실의 정해진 좌석에서 자율학습을 한다.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논술, 심층면접 대비 강좌를 마련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을 정도로 입시를 대비하는 교육 시스템도 철저히 갖춰져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공부만 아는 ‘범생이’ 혹은 ‘입시 기계’가 되지 않도록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는 점, 그래서 지(智)와 덕(德)과 체(體)를 고루 갖춘 사회인을 배출하고 있는 점은 포철고를 진정한 ‘명문고’로 만들어주는 힘이 아닐까.



    포항공대와 연계 교육 … 영재들은 교수님과 특별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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