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7

2005.01.04

“여성이 이공계 진출 탁월한 선택”

인하대 생명화학공학부 최순자 교수 … “일본이 석권한 부품 소재 분야 도전장”

  • 김홍재/ 사이언스타임스 기자 ecos@sciencetimes.co.kr

    입력2004-12-30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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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이 이공계 진출 탁월한 선택”

    2002년 수상한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을 들어 보이는 최순자 교수.

    부자가 되고 싶어한 소녀라면 조금 엉뚱하죠? 사실 전 어린 시절부터 부자가 되기 위해, 책을 읽어도 의식적으로 부자와 관련된 책만 읽었습니다. 공대에 진학한 이유도 부자가 되기 위해서였죠.”

    인하대 생명화학공학부 최순자 교수(52)는 너무나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이 공대에 진학한 이유를 밝혔다. 그의 사연을 듣고 나니 잠시 숙연해진다.

    “초등학교 때 쌀밥을 먹은 기억이 없어요. 목재회사에 버려져 있는 나무를 줍고, 기찻길을 따라가며 조개탄 줍고, 연탄 타다 남은 거나 고철을 수집하고…. 하지만 가난 속에서도 항상 떳떳하게 행동했다고 자부합니다.”

    많이 배워야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성숙한 소녀는 현재 우리나라 산업을 윤택케 하는 유능한 과학자로, 학생들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교육자로 변신해 있다. 최근에는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 초대회장까지 맡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부자가 되고 싶어한 소녀 … 한국여성공학기술인協 초대회장



    “재미있는 일화 하나 들려줄까요? 초등학교 때 지능지수(IQ) 검사를 했더니 99가 나왔어요. 당시 IQ가 두 자릿수면 대학에 못 간다는 얘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중학교 때는 검사지를 나눠주는 동안 문제를 미리 보는 부정행위를 해 IQ 138을 받았죠.”

    이때부터 최 교수는 학교에서 영재로 불렸다는데,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실력이 뛰어나게 됐다고 한다. 진짜 IQ를 궁금해하자 최 교수는 자신도 한동안 궁금해했다면서 나중에 정식으로 검사한 결과 중간 정도가 나왔다고 한다. IQ가 정말 낮았는데 열심히 하다보니 높아진 것 같다는 해석이다.

    학창시절 과학과 수학을 좋아했던 최 교수는 사회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공대를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인하대 화공과에 진학했다. 이후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뿐 아니라 생활비까지 대면서 일찍 여읜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는 구실을 했다.

    “여성이 이공계 진출 탁월한 선택”

    최 교수는 노트북 PC 액정 표시장치와 프린터 토너 등의 대체기술 개발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멋진 여성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지만 대학에서 공부에 전념하지는 못했습니다. 졸업하던 해 우리 집을 위해 3년만 일하자고 결심했는데, 막상 기업에 들어가기가 어렵더군요. 원서를 안 받아줘서 이력서에 붙은 사진이 아까워 떼어내고 찢어버린 적이 많아요.”

    결국 최 교수는 당시 공대 졸업장에 따라오던 준교사 자격증을 활용해 교편생활을 시작했다. 부천공고에서 기술교사로 일하면서 당시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로 하여금 기능사 자격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매달렸다. 그러다 아이들과 친해졌고, 지금도 기능사로 활동하며 인사 오는 아이들을 보며 가슴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자랑이다.

    결심했던 3년이 지나자 최 교수는 정들었던 교편을 놓고 미국 유학 준비에 들어갔다. 착실하게 유학 비용도 준비해놓았고, 열심히 한 결과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입학허가도 받아 앞길이 뚫리는 듯했다. 그러나 갑자기 큰일이 터졌다.

    “오빠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어요. 모아둔 돈을 모두 병원비에 썼는데 결국 생명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학비도, 아무런 기약도 없이 비행기표만 들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국 LA의 한 슈퍼마켓에 힘들게 일자리를 구한 최 교수는 주말 동안 30시간씩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서던캘리포니아 대학(남가주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매사추세츠 주립대학에서 박사후(post doctor) 과정을 받을 때는 지도교수가 “하루에 25시간, 일주일에 8일 넘게는 일하지 말라”고 얘기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1985년 학위를 끝마칠 해에 당시 국내 소형 아파트 한 채 살 돈을 모았죠. 그 돈은 다른 일이 아니고 가족과 함께 한 달 동안 유럽여행을 하면서 모두 썼습니다. 앞으로는 정승처럼 돈을 쓰겠다고 다짐한 셈이죠.”

    “한 우물 파지 않고 시야 넓히면 막강한 경쟁력 확보”



    최 교수의 연구 주제는 고분자 재료 분야다. 고분자 화학물질을 섞어서 인간 생활에 유용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 그러나 이 분야가 오랫동안 발전해오면서 이제 화학물질을 합성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일은 한계에 부딪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는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 고분자를 섞어서 만든 필름을 개발했습니다. 아기 기저귀에 아주 유용한 물건이에요. 필름이 공기는 통하면서 물은 빠져나오지 않게 해 내부에 습기가 차지 않거든요. SK에서 상품화해 외국에 많이 수출하고 있습니다.”

    또 필기도구에 들어가는 나노(1nm는 10-9m) 크기의 형광잉크 입자를 개발한 뒤 상용화해 동남아시아와 남미에 수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활용 가능성이 상당한 미립자 소재를 개발해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수㎛(1㎛는 10-6m) 수준에서 원하는 크기대로 균일한 입자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원천 제조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 프린터 토너의 핵심 기술이에요. 현재 전 세계에 관련 특허가 미국과 일본만 2개씩 갖고 있는데, 특허를 출원해놓고 있습니다.”

    최 교수는 삼성과 LG 등 국내 프린터 제조사들은 해마다 수백억원이 넘는 돈을 이 같은 첨단소재 수입에 쓰고 있어 수입대체 효과가 상당하고, 궁극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전 세계 토너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또 개발한 소재를 LCD 기판에 들어가는 도전필름(ACF)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ACF의 미립자 소재는 시그널을 전달하는 구실을 하는데, 1kg에 약 7000만원일 정도로 고가로 현재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고 있다.

    “과학기술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바탕을 제공하며 연구결과가 바로 다양한 산업에 활용됩니다. 저는 일본이 석권하고 있는 부품 소재 분야에 계속 도전하려고 합니다.”

    산업과 시장 쪽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몇 년 전 인하대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는 최 교수는 이공계 출신이 경상대나 행정대학원에 갈 수는 있어도반대의 길은 어렵다고 설명한다. 이공계 출신이 자신의 전공에만 머무르지 않고 시야를 넓히면 막강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 특히 여성이 이공계에 진출하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 이공계 분야에서 여성은 경쟁력도 있고, 유리한 점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를 벗어나면서 여성에게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는 마이너리티 플랜이 시작되고 있거든요.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 수 있게 저한테 주어진 일을 100% 이상 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생 잘 가르치고 연구도 많이 하며, 시간을 쪼개 전국 대학의 여성 교수들에게 교수직에 안주하지 말고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인물이 되자고 강연하러 다니는 최순자 교수. 부자가 되고 싶어했던 소녀는 이미 꿈을 이룬 듯 보인다.



    최순자 교수 약력

    ●1975년 인하대 화학공학과 졸업, 부천공고 교사

    ●1982년 미국 남가주 대학 화공과 석사

    ●1985년 미국 남가주 대학 화공과 박사

    ●1987년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 박사후 과정

    ●1991년 인하대 화학공학과 교수

    ●2002년 인하대 경영대학원 MBA,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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