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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변호사 뭐가 부러워!”

호주 기술인력난 심화 숙련공 ‘귀하신 몸’ … 특수 분야 기술자 연봉 8000만원 웃돌아

  • 시드니/ 윤필립 통신원 phillipsyd@naver.com

“의사, 변호사 뭐가 부러워!”

“의사, 변호사 뭐가 부러워!”

호주의 철 구조물 용접 현장.

연봉 10만 달러 에어컨 전기기술자 구함’ ‘연봉 7만 달러 부엌 싱크대 설치기술자 구함’. 최근 호주 노동인력 시장 정보지에 실리고 있는 구인광고다. 여기에 제시된 금액은 미국달러가 아닌 호주달러로, 10만 호주달러는 우리나라 돈으로 약 8000만원이다.

10만 호주달러의 연봉은 호주 직장인의 평균 수입보다 거의 두 배나 되는 금액으로, 호주의 안정된 물가와 무상교육, 무료진료 등을 감안할 때 풍족한 가정경제를 보장해줄 수 있는 금액이다.

호주 노동인력 시장의 보수 책정은 여느 상품의 가격 형성과 마찬가지로 수요 공급의 원칙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인력시장 정보지에 실린 ‘구인광고’가 ‘구직광고’보다 더 많은 분야의 노동인력은 높은 연봉을 요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는다.

그러나 앞에 인용한 구인광고는 실상에 대해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있다. 먼저 이런 식의 구인광고가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화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아직 일반화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방증이다.

또한 정규직(permanent job)이 아닌 비정규직(casual job)의 연간소득을 연봉이라고 표현할 수 있느냐는 대목도 한국 독자에게는 혼동의 여지가 많다. 호주에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25% 정도를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용접이나 타일 기능인이 호주의 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하루 8시간×주 5일)만 일했을 경우, 세전 연간소득으로 10만 호주달러를 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경우 주 6일씩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사, 변호사 뭐가 부러워!”

공장에서 일하는 호주의 용접 기능공(왼쪽)과 고속 용접기.

노동인력 정보지 구인광고

아무튼 ‘10만 호주달러를 주겠다’는 구인광고가 버젓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호주에서 숙련 기능공의 수요가 크다는 것과 그들이 의사나 변호사 부럽지 않은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04년 10월, 전국직업교육연구센터와 호주 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기술직 숙련공의 연봉이 지난 1년 동안 12.5%나 상승하는 등 5년 연속 꾸준한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호주의 기술인력난이 심각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호주 노동시장의 주도권은 기능직 숙련공의 손으로 넘어간 지 오래고, 일부 숙련공의 몸값은 부르는 게 값이다. 극소수의 숙련 기술자에 한정되는 사례지만 특수분야 용접공의 연간소득은 10만 호주달러를 크게 웃돌고 있다.

10월19일, 호주에서 발행되는 ‘헤럴드 선’지는 “기능직 숙련공 연봉이 전통적인 고액연봉 직업인 의사나 변호사, 건축설계사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고 호주 노동시장의 실태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어 “호주의 기술인력 시장이 정상을 되찾으려면 2만1000명 정도의 새로운 기술인력이 보충되어야 한다”면서 “기술인력 부족사태가 나중에는 물가와 금리 등에 영향을 미쳐 가정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호주 상공회의소 피터 핸디 소장은 호주국영 ABC-TV와 한 인터뷰에서 “숙련공 부족으로 많은 기업들이 곤경에 처하고 있다. 정부 당국과 기능직교육기관의 빠른 대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호주 경제가 큰 어려움에 맞닥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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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 기술로 탄생한 호주 뉴사이스웨일스주 울런공 대학의 철 구조물.

이런 상황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고집스럽게 옹호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호주 경제를 탄탄하게 이끌어온 존 하워드 호주 총리와 보수집권당인 자유-국민연립당(이하 연립당)의 처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연립당과 노동당의 양당정치가 잘 정립되어 있는 호주 정치판도에서 무려 4기째 연속집권을 하고 있는 연립당은 10월9일 총선에서, 이라크전쟁이라는 대형 악재에도 ‘경제 우선 정책’을 내세워 승리했다.

“집권만 하면 경제를 망쳐놓는 노동당을 믿을 수 없다. 오직 연립당만이 호주 경제를 굳건히 할 수 있다”는 존 하워드 총리 특유의 네거티브 선거전략으로 예상 밖의 대승을 거둔 것.

이는 모든 외교통상 정책을 ‘국익 우선’에 초점을 맞추고, 국내외의 빗발치는 비난을 무릅쓰면서 이라크전쟁에 참전하는 등 호주 경제를 지키기 위해 애쓴 하워드 총리의 공을 인정한 호주 중산층의 지지 덕분이다.

또한 대부분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 국가들이 국가 경제의 어려움을 겪어왔던 지난 몇 년 동안 호주가 이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했던 것과 낮은 인플레이션 및 실업률도 한몫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마자 잘나가던 호주 경제에 빨간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11월29일 발표된 호주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기록적인 무역적자로 인해 호주의 순외채가 4000억 호주달러에 달했다’는 것.

물론 여기엔 호주달러의 강세와 오랜 가뭄으로 인한 농업 부문 수출 부진 탓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호주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하나, 기술직 인력시장의 수급불균형을 그에 못지않은 요인으로 꼽은 분석 결과도 나왔다.

한편 이미 10년 동안이나 총리직을 맡아온 존 하워드 총리가 제4기 임기 중에 사퇴하고, 차기 총리직을 승계할 것으로 예상되는 피터 코스텔로 재정경제 장관은 “최근 호주의 수출 실적 저조는 미국달러 80센트에 육박하는 호주달러의 강세 때문”이라면서 “노동시장의 수급 안정을 바탕으로 호주의 경상수지 적자가 빠른 기간 안에 해소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기능 견습공·기술 이민 증가

정확하고 구체적인 통계를 바탕으로 항상 예측 가능한 미래의 경제지표를 발표해온 호주 당국이 기술직 인력시장의 불안정한 전망을 미리 경고하지 않았던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그러나 11월 마지막 주에 전국직업교육연구소가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기능직 견습생으로 훈련받고 있는 사람의 수가 2002년 6월 이후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결국 정부 당국이 이 문제에 대해 뒷짐만 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 셈이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일었던 호주의 건축 붐을 타고 목공·배관 분야의 견습생 수가 60%나 늘어났고, 특히 전기·금속 분야 등의 견습생이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는 ‘오랜만에 접한 반가운 뉴스’로 받아들였고, 노조와 정부 당국은 ‘업계에서 기능공 양성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렇게 높은 보수에도 젊은층의 기능직 기피 현상이 여전히 높아서 기능직 인력시장의 장래는 그렇게 밝지 않다. 훈련을 받는 견습생의 수는 많이 늘어났지만, 막상 훈련과정을 수료하는 비율은 63%에 그치고 있는 것.

여기엔 용접, 기계, 배관 등의 업종이 ‘3D 업종’으로 취급받는 호주 현실과 한국 등에서 이민 온 기능인들에 비해 호주인들의 기술 습득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는 사정도 숨어 있다. 특히 한국인의 타고난 손재주는 백인들이 흉내조차 낼 수 없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호주에 살고 있는 한인동포들 중 많은 수가 용접이나 타일 기능공으로 일하고 있다. 해당 업계에서도 한국계 기능공의 평가는 아주 높다. 한국계가 기술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잔업이나 주말근무를 극도로 기피하는 백인 기능공들에 비해 훨씬 근면하기 때문이다.

시드니 소재 뉴월드주식회사에 근무하는 이재종 이사는 “수입의 많고 적음을 떠나, 언어와 문화적 장벽이 비교적 높지 않은 기능직에 종사하면서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계 기능공에 대한 만족도는 높다”면서 “호주는 지하자원 개발이 활발해서, 자원개발용 시설물을 만드는 관련 업계의 사업 전망과 노동시장의 미래는 아주 밝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5.01.04 467호 (p52~53)

시드니/ 윤필립 통신원 phillipsy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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