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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PEF 주사위 던져졌다

미래에셋 선공, 은행권도 잇따라 채비 … 외국 대자본에 맞설 ‘토종 대항마’ 구실 해낼까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국내 PEF 주사위 던져졌다

국내 PEF 주사위 던져졌다

금융감독원에 사모투자전문회사 등록 신청을 한 미래에셋과 우리은행 사옥.

2004년 12월15일, 미래에셋 계열 맵스자산운용 사무실은 조용한 흥분에 휩싸였다. 국내 금융사 중 최초로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사모투자전문회사(PEF) 등록 신청을 한 것이다. 금감원 측은 “연내 등록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혀, 미래에셋은 우리나라 금융사에 1호 PEF로 기록되게 됐다.

미래에셋 고위관계자는 “5개 시중 은행을 비롯 30여개 업체가 준비했지만 투자자를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뮤추얼펀드 시장을 선도했듯이 PEF 시장도 우리가 나서 개척하겠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또 “12월20일 기본 투자액 1000억원의 입금이 완료됐다. 조만간 1500억원으로까지 규모를 키울 수 있을 듯하다”고 밝혔다.

12월20일, 맵스자산운용에 이어 우리은행도 금감원에 PEF 등록을 신청했다. 규모는 2100억원. 금감원 박삼철 자산운용업무팀장은 “미래에셋과 함께 2005년 1월1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금융시장의 화두는 PEF가 될 것이다. PEF(Private Equite Fund)란 소수의 개인 및 법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아, 공개시장이 아닌 협상 방식에 의해 주식 및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다. 특정 기업에 대한 10% 이상의 지분 확보로 경영에 참여하거나 경영권을 획득한 뒤, 기업 가치를 높여 되팔아 수익을 극대화하는 바이아웃(Buy-Out) 방식을 채택한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리처드 기어가 하는 일을 떠올리면 된다. 기존의 사모 M&A(인수합병) 펀드나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 등과 유사하지만 차입이 허용되고 투자 대상에 제한이 없다는 점에서 운신의 폭이 넓다.

투자 기간 5~7년 위험도 높아



PEF의 구성원은 무한책임사원(GP)과 유한책임사원(LP)으로 이루어진다. GP는 펀드의 운용 주체가 돼 인수 대상 물색부터 실질적 M&A까지를 주도한다. 때문에 손실이 발생해 펀드 자산만으로 차입금을 갚지 못할 경우 무한 책임을 지게 된다. 반면 LP는 투입한 자금만큼의 책임만 진다.

우리나라에서는 12월6일, PEF 도입을 위한 간접투자자산운용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비로소 설립이 가능해졌다. 도입 취지는 국내 금융자본 육성. 무엇보다 뉴브릿지, 칼라일 등 외국계 PEF에 의한 ‘국부 유출’ 문제가 제기되면서 ‘토종 대항마’를 키워야 한다는 필요성이대두된 것이 직접적 계기다. 미국계 칼라일 그룹이 옛 한미은행에 투자해 6600여억원의 수익을 올린 것 등이 자극제가 됐다. 미국계 론스타도 SKC와 동양증권 사옥을 매각해 각 200억~25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국내 PEF 주사위 던져졌다

2000년 자금난으로 론스타에 팔린 서울 역삼동 아이타워(현 스타타워).

PEF는 투자 기간이 5~7년으로 길고, 위험도도 높다. 그러나 성공할 경우 수익률이 연 20~30%에 달할 정도로 강한 매력을 갖고 있다. 기업 처지에서도 M&A 예방을 위해 자발적 경영 개선 노력을 할 수 있고, PEF에 인수될 경우 적절한 변신을 통해 제 몸값을 찾는 등 상시 구조조정 시스템이 작동하는 효과가 있다. PEF는 주식시장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소형 우량주나 정부 지분 매각 기업, 워크아웃 졸업 기업 등을 중심으로 M&A 테마가 형성될 수 있다.

그러나 PEF 시장이 활성화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투자자 모집이 난제다. PEF는 비공개 방식으로 개인 혹은 기관 50인에 투자를 권유해 30인까지 투자자를 모을 수 있다. 개인은 최소 20억원, 법인은 50억원 이상 자금을 투입해야 동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30인은커녕 1인의 투자자도 유치 못해 금융사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형편이다.

신한금융그룹(이하 신한지주)은 12월20일 PEF 전담 자회사인 ‘신한프라이빗에쿼티’를 정식 출범시켰다. 납입자본금 100억원, 신한지주가 100% 출자한 회사다. 모 은행권 인사는 “이번에 영입된 동원증권 IB(투자은행) 부문 부사장 출신 이진용 대표이사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열심히 쫓아다니며 투자자 모으기에 골몰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산업은행, 국민은행, 기업은행, 하나은행 등 시중은행과 칸서스자산운용, KTB자산운용, 대우증권, 현대증권 등 비은행권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외국 자본과의 제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기업평가 변동욱 책임연구원은 “국내 금융사의 경우 PEF 실적이 전무한 데다, 기업 가치 제고를 이끌 전문가 풀도 일천한 상태다. 또 투자 기간이 길어, 빠른 자금 회수를 원하는 우리나라 투자가들의 특성상 초기 참여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특히 개인 투자자의 참여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한 위험부담을 지고 가려는 투자자가 쉽게 나서지도 않을 뿐더러, 당국이나 금융사 처지에서도 투자에 실패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이 걱정돼 이를 꺼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투자자 확보의 어려움은 은행이 PEF의 직접 주체로 나서는 명분이 되고 있다. 홍익대 전성인 교수(경제학)는 “은행이 PEF에 나설 경우 금융자본의 산업 지배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며, 예금 보험이라는 공적 안전망이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고 비판했다. 전 교수는 아울러 “초기 논의 단계에서는 ‘설마 은행이 직접 나서겠냐’고 하던 금융당국이 이제 와서 은행의 PEF 영업에 방해가 될 만한 법적 요소들을 앞장서 제거하고 있다”며 “벤처 붐이나 ‘바이코리아’ 때처럼 하나의 상품이 나타나면 너도나도 뛰어드는 패거리 금융문화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관계자 또한 “워크아웃 대상 등 은행이 지분을 갖고 있는 투자 유망기업이 여럿 되는 만큼, 타 금융사는 물론 자회사에도 그 ‘이익 가능성’을 빼앗기기 싫은 것 아니겠냐”고 했다.

시민단체선 거듭 문제제기

그러나 은행권의 태도는 다르다. 우리은행 이인영 사모펀드팀 부장은 “현 상황에서 은행의 높은 신뢰도와 외환위기 과정에서 축적된 M&A 및 기업회생 노하우를 앞세우지 않고는 투자자를 확보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또 투자자 확보가 쉽지 않은 만큼 일단은 자기 자본을 투여할 수밖에 없는데, 은행 외에 1000억원이 넘는 자본을 한꺼번에 투입할 수 있는 금융사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은행 PEF의 경우 자행(自行) 자금 1100억원, 메릴린치 자금 1000억원으로 구성돼 있다.

한편 참여연대 등 경제 관련 시민단체는 현행 PEF 관련 법이 재벌의 금융 지배 위험성을 가중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를 거듭 하고 있다. “재벌이 PEF에 LP(의결권 없는 유한책임사원)로 참가해 은행 지분을 갖게 될 경우에 대한 규제 강도가 지나치게 약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 측은 “기존 은행법 등을 통해 이미 충분한 감독 수단이 마련돼 있다. 법 개정 중 참여연대 측 주장도 대거 수용한 만큼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태도다.

어쨌거나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1월부터 우리은행과 맵스자산운용이 본격적 활동에 들어갈 것이며, 타 은행들도 2005년 상반기에는 PEF 등록을 마칠 것이다. 벌써부터 주식시장에선 우리금융지주, 대우인터내셔날, 대우조선해양, 대우일렉트로닉스, 대우종합기계, 대우건설, 대우증권, 대한통운, 동해펄프, 새한, 새한미디어, 충남방직, 하이닉스, 현대건설, LG카드 등이 PEF 투자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우리은행과 맵스자산운용 측도 “이미 투자할 회사의 선정을 마쳤다”고 밝히고 있다.

금융업의 최첨단이자 또한 가장 ‘밑바닥’ 사업이기도 한 PEF. 국내 PEF들이 ‘기업 사냥꾼’이란 오명에 시달려온 외국 대자본에 맞서 ‘착한 토종 대항마’로서의 구실을 다할 수 있을까. 한 금융권 핵심 인사는 “효용도, 성과도, 사회적 구실마저도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결국 실력”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5.01.04 467호 (p42~43)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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