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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수교 40주년 특집

‘한·일 FTA’ 藥인가 毒인가

‘파트너십 신호탄’ vs ‘제2의 한일합방’ 논란 … 韓 과잉반응, 日 무관심 속 ‘필요에 무게’

  •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경제학 박사 jung@kiep.go.kr

‘한·일 FTA’ 藥인가 毒인가

‘한·일 FTA’ 藥인가 毒인가

일본 도쿄 신주쿠 지역의 한국식품 전용 슈퍼마켓에서 2004년 수확한 쌀을 판매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부른다. 필자는 이 한 마디에 한·일 관계가 그대로 농축돼 있음을 때때로 느끼곤 한다. 필자가 일본 유학 시절에는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에 크게 놀랐고, 한국에 돌아온 다음엔 한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 또 한번 놀랐다. 이처럼 두 나라는 무관심과 편견 속에서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는 관계를 지속해왔다. 우리에게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먼 나라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2005년은 한·일 관계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띠는 해다. 역사적으로 보면 광복 60주년과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간 을사조약 100주년이 되는 해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한류 열풍 등 화해 분위기가 높아가는 가운데 두 나라 정부는 2005년을 ‘한·일 우정의 해’로 정하고 여러 가지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이처럼 한·일 관계는 식민 지배라는 과거사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으나 아직도 과거사의 굴레가 두 나라를 강하게 속박하고 있다. 최근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 특별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두 나라 정부, 국민 설득에 애먹을 듯

두 나라 관계가 복잡한 전개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향한 두 나라 정부의 공식협상 개시가 그것이다. 한·일 FTA에 관한 논의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서 FTA가 논의되기 시작한 이후, 두 나라 정부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FTA의 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해왔고, 2003년 12월에 제1차 협상이 개시돼 현재까지 여섯 차례의 교섭이 이뤄졌다. 두 나라 정부는 2005년 말까지 실질적인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한·일 FTA를 바라보는 한국 국민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가장 근본적으로 일본에 대한 감정적 앙금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으며, 나아가 한·일 FTA가 불러일으킬 경제적 영향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 FTA의 체결은 ‘제2의 한일합방’이라는 극단적인 견해도 표출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일본인들의 시각은 우리와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무관심이다. 특히 한·일 FTA 이해관계가 가장 깊은 일본의 경제인들조차 관심이 매우 낮다. 일본의 10분의 1의 경제 규모에 그치는 한국과 관세 철폐 등의 무역자유화를 실현한다 하더라도 실제적인 경제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한·일 FTA’ 藥인가 毒인가

한류로 생겨난 일본 잡지들.

‘한국 국민의 과잉반응 대 일본 국민의 무관심’이라는 현상은 과거의 한·일 관계를 되짚어볼 때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어느 문제에 대해서도 두 나라는 이러한 태도로 접근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나라 정부만이 힘겨운 교섭을 진행시키고 있다. 두 나라 정부 모두 한·일 FTA의 정당성을 명확히 하고, 자국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특히 한국 정부는 왜 일본과 FTA를 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왜곡된 한·일 관계 개선엔 도움 될 듯

두 나라 정부가 FTA 교섭을 갑자기 개시하게 된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단순히 한·일 관계의 개선만을 도모하기 위해 논의가 시작된 건 아니다. 세계무역 질서는 90년대 이후 사실상 지역주의로 선회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일 두 나라는 98년 대외경제 정책을 대폭적으로 수정해 FTA의 체결을 서둘렀다. 서로에게 FTA를 체결하기에 매력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경제적 발전 단계나 지리적·문화적 근접성 등 여러 면에서 가장 우선적인 상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한·일 FTA’ 藥인가 毒인가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005년 말까지 FTA 협상을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두 나라는 정치적 차원에서 FTA 교섭을 개시할 것을 결정하였고, 이것이 불러올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는 사실 면밀한 분석을 하지 않았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의 경우, 제조업에 나쁘게 작용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과 공포가 팽배하고, 일본의 경우 농업에 대한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문제가 있는데도 왜 한·일 FTA를 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국 국민들은 해답을 요구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필자는 한·일 FTA가 조속히 체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일 두 나라는 정부 차원에서 이미 협상을 시작했으며, 이를 뒤엎으면 외교상 많은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현실론 때문만이 아니다. 한·일 FTA는 우리에게 매우 필요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한·일 FTA가 두 나라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의 과잉반응과 일본의 무관심’이라는 두 나라 관계는 우리에게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이러한 두 나라 국민의 태도는 상대방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다.

한국인이 일본인을 만나면 언제나 과거사를 들춰내면서 자신의 이야기만 해댄다. 한국인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일본인들은 소름이 끼칠 정도라고 한다.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상대로 여기고 기피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 경제, 문화, 외교 등 한·일 관계의 다양한 측면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이익에 결코 보탬이 되지 않는다. 또한 일본의 이익에도 반함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일 FTA는 이와 같이 왜곡된 두 나라 관계를 바로잡는 데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 핵심은 ‘인적 교류의 확대’다. 인적 교류를 확대시키는 하나의 방법은 시장의 통합이다. 물품 무역뿐 아니라 서비스, 인적 자원의 교류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공동 시장을 형성해 인적 교류를 확대해갈 수 있다.

일본 시장 규모 크지만 진입 까다로워

한·일 FTA가 가져오는 두 번째 효과는 경제적인 것이다. 한·일 FT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산업별로 세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산업에서 어느 정도의 이익과 손실이 발생할지에 대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런 탓에 한·일 FTA가 불러올 경제적 파장을 많은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한·일 FTA’ 藥인가 毒인가

도요타의 생산라인.자동차 산업의 비교우위는 일본에 있다.

그러나 한·일 FTA는 단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정도로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된다. 오히려 우리 기업에 신선한 충격이 돼 활력소로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요즈음 기업 간 경쟁은 어느 산업 분야를 보더라도 국내 기업끼리의 경쟁을 넘어서고 있다. 국가의 보호 조치로 인위적인 장벽을 쌓는다 해도 언젠가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 협상에서 장벽이 허물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차피 글로벌 경쟁에 노출될 것이라면 먼저 스스로 장벽을 허물고 세계시장을 놓고 경쟁할 수 있는 체력을 다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일본 기업들은 우리나라 기업들에 많은 자극과 활력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외적 자극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우리 기업과 소비자에게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한·일 FTA를 논할 때 언제나 등장하는 테마 중 하나가 기술이전 혹은 자본투자다. 일본 기업들로부터 얼마나 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을까, 혹은 일본 기업이 한국에 얼마나 자본을 투자할까 등이 큰 관심거리다. 최근 일본 기업의 동향을 보면, 한국에 투자하려는 동기가 매우 낮게 나타나고 있으며 한국 기업과의 기술제휴 등에도 그다지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 얼마 전 일본과 투자협정을 체결했지만 투자증대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97년 경제위기 이후 외자유치에 많은 노력을 해왔다.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중국의 성장에 외자가 큰 구실을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최근에는 자본이 많은 일본조차 외자유치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 기업의 자본과 기술은 한국 기업에 매우 매력적이기 때문에 이 기회를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일 FTA’ 藥인가 毒인가

가수 보아가 일본에서 짧은 치마와 야구 모자 차림으로 소녀 이미지를 자아내며 노래하고 있다.

주변 국가들이 해외의 선진자본과 기술을 활용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일 FTA는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일본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지 않고 기술이전에도 별 관심이 없다고 탓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환경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그 하나의 수단이 한·일 FTA 체결이다.

또 하나 지나쳐서는 안 될 사항이 일본 시장의 활용이라는 문제다. 일본 시장은 단순히 계산해서 한국 시장보다 10배나 규모가 크다. 소비자들의 기호가 까다롭고, 독특한 유통 관행이 정착돼 있는 탓에 우리 기업들이 개척하기 무척 힘든 시장 중 하나다. 그러나 일단 진출에 성공하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시장이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히트곡을 내는 가수는 한국에서 히트곡을 내는 가수보다 단순계산해서 10배의 이익을 낼 수 있다.

‘한·일 FTA’ 藥인가 毒인가

2004년 7월1일 경제 4단체가 연 ‘한·일 FTA 대토론회’

문제는 ‘어떻게 진출할 것인가’다. 한·일 FTA를 통해 수입관세율이 약간 인하된다고 해서 일본 시장 진출이 급속히 늘어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더욱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일본 기업과의 신뢰관계를 형성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뢰관계만 잘 유지된다면 일본 기업과의 비즈니스는 상당히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으며, 한일 기업 간의 비즈니스 관행을 잘 형성해나가는 것이 일본 시장 진출의 핵심이라고 판단된다.

대일 무역적자 탓할 일만은 아니다

부품·소재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제조업의 기반이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대일 무역수지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러한 우려는 매우 당연하고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다만 진정으로 강력한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에 이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본의 부품·소재산업이 강한 이유는 이들 업종이 일본 시장에서 어마어마한 경쟁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업체들은 고객 기업에 자신들의 부품·소재 생산품의 우위를 보여주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러한 경쟁 환경이 이들 일본 기업을 강하게 육성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부품·소재산업의 경쟁력은 결코 국가의 보호정책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대일 무역적자의 증가에 대해서도 좀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무역적자의 많은 부분은 역시 부품·소재의 수입에 기인한다. 문제는 일본의 부품·소재를 사용하는 경우와 다른 대체재를 사용하는 경우의 비교다. 전자가 우리에게 더 많은 대(對)세계 무역수지 흑자를 가능하게 해준다면, 또 우리 제품의 경쟁력을 더 높여준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대일 종속의 심화가 아니라 합리적인 분업관계의 심화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사고다.





주간동아 2005.01.04 467호 (p32~35)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경제학 박사 jung@kie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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