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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l 희망 나누기 2005

“어릴 적 꿈 찾아 눈물 나게 기뻐요”

희망 일기 쓰는 성매매 피해 여성들 … 학교 진학·미용 기술 등 재활교육으로 제2 인생 설계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어릴 적 꿈 찾아 눈물 나게 기뻐요”

“어릴 적 꿈 찾아 눈물 나게 기뻐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국여성의 집’ 전경.

12월23일 서울 대학로의 한 지하 카페에서는 특별한 송년파티가 열렸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의 젊은 여성들이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게임을 벌이는 풍경은 여느 여고 동창생들의 송년파티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이들 26명은 모두 과거 성매매업에 종사했던 이들로 성매매 피해여성 입소 시설인 ‘한국여성의 집’(원장 민승호)에 함께 머무는 식구들이다.

이날 송년파티는 2004년 한 해 동안 재활을 위해 노력했던 스스로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자리였다. 두 명의 여성이 나서서 일주일 전부터 프로그램을 짰고, 사회복지사들은 개개인에게 줄 상을 마련했다. 독립상, 노력상, 자주상, 학습상, 자격증 취득상 등등으로 상금은 1만원짜리 도서상품권 한 장. 성매매 업소에서라면 팁 수준도 안 되는 적은 액수지만, 사회적응훈련비 명목으로 매달 나오는 3만원의 용돈이 수입의 전부인 이들에겐 매우 큰 상금인 셈이다.

이날 송년파티에서 최고상인 ‘종합상’을 받은 김유민씨(가명·25)는 현재 엄연한 대학 1년생이다. 7월 말 시설에 들어와 9월 한 사이버대학의 사회복지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의 꿈은 가출 청소년과 성매매 피해여성을 위해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 김씨는 어릴 적 동네 거지만 보면 돼지저금통을 뜯어서라도 돈을 가져다주곤 해 엄마에게 여러 번 혼쭐났을 정도로 정이 많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한 룸살롱 접대부 생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는 어릴 적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스스로 축하·격려 ‘한국여성의 집’ 특별한 송년파티

“업소에 있을 때는 꿈이란 게 고작 업주에게 진 빚을 줄이자는 것, 또 섬에 팔려가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다시 어릴 적 꿈을 찾았다는 게 가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행복합니다. 졸업 후에는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으로서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더 잘 이해하며 돌봐주고 싶어요.”



한국여성의 집에 들어온 성매매 피해여성들은 김씨처럼 재활교육을 받고 있다. 가장 많은 교육 프로그램은 미용, 피부관리, 네일아트, 풍선아트, 컴퓨터 등. 이밖에도 여성들이 원하는 교육이 있다면 외부 강사를 초빙해오거나 사설학원에 다니도록 한다.

이세영씨(가명·24)는 한국여성의 집에 들어온 여성들 중 ‘최단 기간 최다 자격증 취득자’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는 6월 말 들어와 한 달 만에 중학교 졸업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10월에는 국가자격증인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오전에 학원에 다녀와서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하루 종일 공부하거나 하루 14시간씩 가발과 씨름한 노력이 가져다준 성과다. 이씨는 “업주들 협박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시설에 들어왔는데, 하면 할수록 자꾸 욕심이 난다”며 웃었다. 이씨의 다음 계획은 2005년 4월 고등학교 졸업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것과 피부관리 수업과정을 수료하는 것. 또 실제 현장에서 쓰이는 미용기술을 익히는 미용연구반 과정도 마칠 계획이다.

“어릴 적 꿈 찾아 눈물 나게 기뻐요”

12월23일 열린 ‘한국여성의 집’ 송년파티.

“스무 살에 결혼해 딸을 낳고 스물세 살에 이혼한 다음 룸살롱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시댁에서 키우는 제 딸아이를 훗날 만났을 때 떳떳한 엄마이고 싶다는 게 가장 큰 바람이었는데, 업소에 있을 때는 이 바람이 가능해질 줄은 정말 상상조차 못했어요.”

희망의 빛을 찾아가고 있는 이들 재활 여성에게도 몇 가지 고민이 있다. 가장 큰 고민은 선불금 문제. 한국여성의 집 성매매 피해여성 26명 중 절반이 아직까지 선불금 문제를 완전히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성매매와 관련한 선불금은 무효로 인정되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법적 소송을 제기해놓고 있다.

선불금 족쇄 가장 큰 고민 … “아직 성매매 친구 안타까워”

4000만원의 선불금에 대해 업주와 재판 중인 박정연씨(가명·22)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빚이 불어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업주가 동남아 지역에 업소를 차려 6개월간 다녀왔는데, 그 사이 빚이 두 배로 불어난 것. 숙소비와 5부이자 등의 조건은 동남아로 떠나기 전에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결근비 100만원, 지각비 30만원 하는 식으로 터무니없는 액수를 뜯기기도 했다. 시설에 들어온 뒤 네일아트 기술을 배우고 있는 이영씨는 “아무리 많이 벌어도 숙소비에다 벌금, 이자까지 내고 나면 손에 쥐는 것은 한 달에 10만원에 불과했다”면서 “여성 긴급전화 1366을 통해 족쇄 같던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제야 살길을 찾았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업소를 나온 뒤 걸려오는 업주들의 끈질긴 협박전화와 보복에 대한 공포 또한 참기 어려운 부분. 5월 맨몸으로 서울 영등포 집창촌에서 빠져나온 조미영씨(가명·24)는 가족을 해치겠다는 협박전화에 불안해서 집안에서 형광등도 TV도 켜지 못한 채 한 달을 보내다 시설에 들어왔다. 조씨는 입소 후에도 한동안 굽이 30cm가 넘는 구두를 신고 날마다 12시간씩 서 있던 일, 강제로 지방분해 주사를 한 번에 40대씩 맞던 일, 살 빼야 한다며 밥을 굶기던 일 등이 떠올라 밤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나마 얼마 전부터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나아져 조씨는 이날 송년파티에서 새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의미의 ‘노력상’을 받았다.

카드빚 때문에 룸살롱 접대부 일을 시작했던 최수영씨(가명·22)는 “한국여성의 집에 들어와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은 돈의 소중함”이라고 말했다. 룸살롱 다닐 때 몇 백만원씩 쓰던 한 달 용돈이 시설에 들어온 뒤 단돈 3만원으로 대폭 삭감됐지만 전혀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그의 말.

“처음엔 그까짓 3만원,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설에서 숙식과 교육프로그램을 모두 지원해주고, 또 영화 관람 프로그램도 있으니까 돈 쓸 일이 없어요. 버스비 내고 가끔 편의점에서 맥주 사다가 애들이랑 파티하는 데 한 달에 3만원이면 충분해요. 3만원을 300만원처럼 쓰고 있다고 할까요.”

“어릴 적 꿈 찾아 눈물 나게 기뻐요”

‘한국여성의 집’ 이정미 사무국장은 “선불금 문제를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는 38개 시설에서 500여명의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재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30만명에 비하면 아주 적은 수다. 조미영씨는 “성매매를 허용해달라며 시위하는 여성들 대부분은 업주 강요 때문이거나 성형, 마약, 도박 등에 중독된 여성들일 것”이라며 “가정형편이 어려워 성매매를 시작했다는 동료들 중에서 정말 집에 돈을 부치는 동료를 본 적 없다”고 말했다. 업주에게 착취당하는 비용과 씀씀이가 커지기 때문에 돈을 모은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

김유민씨는 “6년 전 함께 룸살롱에 다니기 시작한 고교 동창이 아직도 성매매를 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부모님만 아니라면 나부터 얼굴 드러내놓고 ‘나 같은 애도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 어서 나오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는 것이 없어도, 배운 게 없어도,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것을 시설에 온 뒤 배우게 됐습니다. 이런 얘기를 예전의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성들에게 꼭 해주고 싶어요.”



주간동아 2005.01.04 467호 (p20~22)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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